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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Aug 12. 2020

1집 和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기사에게 아빠는 우리 집 앞을 한 번만 들려줄 수 있느냐 부탁했다. 버스기사 아저씨의 배려 덕분에 1월 1일 이후로 다시는 함께 돌아오지 못했던 우리 동네로 이제는 죽어버린 엄마와 함께 향했다. 


 우리 가족이 살았던 이촌동은 변화가 잘 없는 동네이다. 심지어 우리 가족이 처음 이사오던 날, 그러니까 내가 유치원생이던 시절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곳이다. 엄마가 좋아하던 일식집도, 나에게 심부름을 맡기던 세탁소도, 엄마랑 종종 가고는 했던 카페도, 마트도, 빵집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망자는 말이 없다. 버스 창문 너머로 그대로인 풍경도 말이 없다. 모두의 침묵을 나는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본다. 그러다가 이 상황에 '마지막 동네 산책'이라 촌스러운 이름을 붙였다. 말이 없는 풍경들이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지하터널에서 올라오니 우리 집이 보인다. 방에서 뜨개질을 하던 엄마가 떠오른다. 시간이 흔들린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보인다. 엄마와 졸업식에 찍었던 사진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시간이 무너진다. 엄마와 손을 잡고 걷던 길이 보인다.  엄마의 손의 촉감이 떠오른다. 엄마가 떠오른다. 살아있는, 생생한,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는, 엄마가 떠오른다. 


'마지막 동네 산책'은 어색하게 시작해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버스는 늘 우리 동네를 지나쳐 기억도 안나는 도로들을 거쳐 화장터로 향했다. 불 속에서 엄마는 순식간에 몸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삶이었던 엄마는 재가 되어 나왔다. 삽 같은 것으로 엄마를 유골함에 담았다. 내가 유골함을 들었다. 엄마를 일으키기도 어려워했던 나는 두 손에 엄마를 들 수 있게 되었다. 그 가벼움이 나는 견딜 수 없어 울었다. 


 한적한 2층 납골당에 엄마는 안치되었다. 또 조금 울다가 납골당을 나섰다. 그제야 문득, 세상에 봄이 왔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초록색 풀들 사이로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바보같이 아주 화창한 봄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날이 너무 따뜻했다. 이 세상엔 생명만이 가득하다는 듯이 햇살이 노란빛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이 봄을 만끽해야 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는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엄마가 울지 말라고, 자기 잘 가니까 걱정 말라고, 따뜻하게 민경이를 감싸주나 보다."


 멍하니 풍경을 보던 나에게 외숙모가 말을 걸었다. 서툴게 위로하는 그 말을 이유 없이 믿기로 했다. 조금 웃어 보였다. 세상과 다르게 나의 봄은 아직 먼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고작 나는 스물다섯이니까. 



텅 빈 너와

갇힌 내가

마주한 

어지러운 스무살 


높은 너와

낮은 내가

감당해야했던 긴 4월


아픈 봄이었지만

너와 함께한 

겨울이 있었기에

나는 늦게 피는 꽃을 

기다릴 수 있었어


난 너를 채워주고

넌 나를 해방시켜

우린 고작 지금 스물다섯


난 너를 안아주고

넌 나를 일으켜

예쁘게 피어날 5월


아픈 봄이었지만

너와 함께한 

겨울이 있었기에

나는 늦게 피는 꽃을 

기다릴 수 있었어


피어나


Je comprends pas 

Tu comprends pas non plus

Mais nous avons la vie en rose




카코포니 - 봄 MV

https://youtu.be/LqQDbpp9uUk


 뮤직비디오는 내 뮤직비디오 중에 가장 간단하게 찍었다. 정말 문독이와 둘이서만 했다.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나 다운 모습으로 찍고 싶었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기억을 담고 봄의 가사처럼 나는 피어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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