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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코포니 Jun 03. 2020

Tell me

1집 和

 엄마가 계속해서 어려졌다. 혼자 걷지도 못하다가, 혼자 볼 일도 보지 못하게 되었고, 혼자 볼 일도 보지 못하다가 혼자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말도 어눌해졌고, 눈만 말똥말똥 병원 천장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그래,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머리카락은 항암치료로 다 빠져버린 지 오래였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엄마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아이 같았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는 나는 마치 엄마가 된 듯했다. 내가 엄마고, 엄마가 아이였다. 부족한 게 없나 둘러보고, 소변통을 갈고, 밥을 먹이고, 잠이 들면 안심하고, 갑자기 깨서 아프다고 울면 달래고 약을 주고. 내가 아이였을 때, 엄마도 나에게 이렇게 해주었겠지. 역으로 내가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아이가 된 엄마는 나에게 자주 '사랑해'라고 말해달라고 졸랐다. 그때마다 '사랑해'라고 답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 가장 받고 싶어 하던 것은 사랑이었나 보다.


 내가 아이이고, 엄마가 엄마이던 시절. 계절의 냄새가 좀 더 뚜렷하고, 놀이터에서 더 뛰어놀던 시절. 아이인 내가 가장 받고 싶어 하던 것도 사실 사랑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늘 바빴다. 병원으로 출근했고, 바느질로 무언가를 만들었고,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별로 관심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악착같이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상을 받고, 1등을 하면 관심받을 수 있었으니까.


 사춘기가 지나고부터는 엄마로부터 사랑을 요구하지도 않게 되었다. 때로는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가 정신 차려보니 엄마는 병들어 있었고, 엄마를 미워하고 사랑할 틈도 없이 엄마의 곁에는 나만 남았다. 사실 우리 둘은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 가까운 생활이 처음엔 어색했다. 같은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그다지 가깝지는 않았으니까.


 미국에 살던 이모가 엄마를 보러 잠시 한국에 왔다. 잠든 엄마 옆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에 대해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집에서 남다른 존재였다고 했다. 옷도 다르게 입고, 규칙대로 살지 않고, 공부는 관심이 없었지만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려서 이모는 항상 엄마가 멋져 보였다고 했다. 이모는 외할아버지가 무서워 언제나 외할아버지 말을 들었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나 가족에서 조금 동떨어진 존재였다고 했다. 


 엄마는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아빠랑 결혼할 즈음에도 여러 남자가 구애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빠가 술 먹고 결혼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진심을 느꼈는지, 아빠랑 결혼했다고 한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이모 앞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안타깝게도 둘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고 껍데기 가족만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살면서 엄마와 아빠가 같은 방을 쓴 적을 보지 못했고, 둘이 인간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엄마는 생각해보니 두 번째 가족에서도 동떨어진 존재였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엄마가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달라 했을 때 엄마가 야속했다. 어린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으니까. 그런데 엄마의 모든 삶을 이해했을 때, 엄마는 제대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원래 가족으로부터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고, 서로 이해할 수 없던 부부 관계에서도 전통적인 가족에서도 엄마는 이상한 사람이었으니까. 아무도 엄마를 사랑할 수 없었고, 엄마도 누군가를 사랑할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엄마는 사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을 텐데.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사랑을 외치다니,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사랑해'라고 말해달라는 그 모습에 내 어린 시절 모습이 겹치면서 울컥했다. 모든 것이 이해되면서 엄마를 용서했고, 엄마를 이제야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가 혼자 남아 기다려

아이가 혼자 다른 생각을

눈동자 속을 헤엄치는 기분은 어떨까

어떨까

사랑받고 싶어서 짓는 웃음 말고

사랑받아서 짓는 웃음은 어떨까

Tell me you love me tell me you love me

Tell me you love me tell me you love me

그리운 품을 가지는 기분은 어떨까

어떨까

너무 외로워서 내는 화 말고

지키고 싶어서 내는 화는 어떨까

Tell me you love me tell me you love me

Tell me you love me tell me you love me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 핸드폰을 들여보다가 엄마의 SNS를 들어가 보았다. 내가 생전에 친구 추가를 했을 때는 엄마가 받아주지 않아서 엄마가 뭘 올리는지 알 수가 없었던 터였다. 그닥 큰 생각 없이 엄마의 비공개 SNS에 들어갔다. 


 내가 상을 받은 내용들. 내가 프랑스에서 보낸 편지들. 나와 찍은 사진들. 나에 대한 자랑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나보다. 나에게 비공개로 해두었을 뿐. 엄마는 죽을 때까지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나 보다. 


 나는 수줍음 없이 나의 사랑을 공개로 두려고 한다. 

이 노래가 모두에게 사랑을 말할 작은 용기를 주었으면.





 Tell me의 뮤직비디오는 일본에서 일본 친구들과 촬영을 했다. 


  감독을 맡아준 사리는 인스타 DM으로 나에게 처음 연락을 했다. 도쿄에 살고 있고, 뮤직비디오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하게도 내가 며칠 뒤에 여행으로 도쿄에 방문할 예정이었어서 운명이라 생각했다. 도쿄에서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나는 사리의 이전 작업 물들을 보고, Tell me 노래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리를 만났고, 사리는 자신과 친구가 Tell me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와 이야기하던 도중 사리는 곧바로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말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다시 도쿄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사리에게 꼼꼼한 스토리보드와 함께 연락이 왔다. 나는 곧장 일본으로 갔다. 사리의 집에서 머물면서 이틀간 촬영을 진행했다. 장소와 스탭, 배우, 스타일리스트, 소품까지 모두 사리가 준비했다. 촬영을 하면서도, 촬영이 아닌 순간에도 너무 큰 친절을 받았다. 이토록 큰 환대를 베풀어준 사리와 사리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아름다운 노래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나 아름다운 영상이 나왔다. 


https://youtu.be/nlYlveJnk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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