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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04. 2023

다시 몸이 곤두박질쳤다

이번에는 마음도 같이

발병 6개월 뒤, 바랐던 대로 차차 몸이 회복되어 꽤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차를 타는 것도, 하루 이틀 정도는 친구와 함께 돌아다니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라던가 자기소개서 등 취업을 준비하면 내 몸은 언제나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몸으로 취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과연 일을 할 수는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엄마는 내가 일을 하게 되면 출근하다 심장이 멈출 것 같다며 걱정스러운 듯 조금 무서운 농담을 했다. 뭐, 설마 그러기야 할까. 점점 괜찮아지고 있는데 조금만 더 쉬면 건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나였다.


갖고 있는 인생 계획에 따르면 이제부터 슬슬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때였다. 곧 나을 걸 생각해서도 완전히 손을 놓고 쉬기만 할 수는 없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보면 점점 불안해졌다. 올 한 해의 주된 목적이 아무리 건강 회복과 쉼이라 하더라도 머릿속에 자꾸만 회복과 쉼은 소득으로 치지 않는 계산이 돌아갔고 그 외 다른 소득 없이 맞이하게 될 내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주변 친구들과 대학동기들 대부분 일을 하고 있으니 슬며시 조바심도 난 참이었다. 취업 준비를 하면 할수록 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커져갔고 말이다.


그런데 아픈 지 딱 10개월이 되었을 때, 마침 지원한 회사에서 서류 탈락을 하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괜찮아진 몸도 처음 아팠던 때처럼 심히 나빠졌다. 다시 걷지도 못한 채 누워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서류 탈락보다도 건강이 다시 나빠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시간 동안 조심스레, 가까스로 회복했던 몸이 ‘한순간에’ 곤두박질쳤다. 이렇게나 한순간에. 너무도 덧없이 무너져버렸다.


장난도 빈 말도 아닌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니 마음도 바닥을 쳤다. 더 이상 이전처럼 희망을 가지고서 누워있던 내가 아니었다. 겁이 났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양상이라면 일이든, 공부든, 작업이든 뭔가를 할 수 있기는 한가? 정말로 나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이제 난 어떡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 미래는 깜깜해져 갈 뿐이었다.








모든 삶의 의욕을 잃었다. 20대 젊은 나이에 1인분의 인간 구실도 못하게 된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사는 게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몸의 배신이, 거기서 받은 배신감이 너무도 컸다.


있었던 희망이 눈앞에서 사그라드는 기분이란 말로 다 표현 못하는 일이었고 인생이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힘들고 벅찬 학교 생활을 한 게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그중에 어째서 나만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열심히 살았던 과거가 후회스럽진 않았지만 무엇을 향한 것인지 모를 억울함과 분노가 몰려왔다.


마음이 어두운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져 한없이 헤매었다. 내가 처한 상황으로 인한 감정을 한껏 느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고난과 고통을 곱씹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고난이란 것이 삶에 자양분이 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고난당한 사람에겐 그저 사후적인 이야기일 뿐이었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오롯이 견뎌내는 일이란 외롭고 힘든 것. 맘대로 되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피하고픈 게 당연했다. 너무도 괴로우니까.


도대체 고난은, 고통은 왜 있는가. 이를 깊이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내가 겪은 경험에 한정될 뿐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고통이라는 측면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앞에 위로라고 꺼내는 모든 말들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만다는 걸 나는 그제야 절감했다.








얼마 후 다른 지역 대학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좋다고 소개받은 한방 병원에서 약을 지어먹고 있었는데 몸이 널을 뛰니 더 정밀하게 진단받을 필요가 있었다. 혹시 다른 병은 아닌지, 병을 낫게 할 뾰족한 수가 있는지 등 모든 의문을 해소할 기회였다. 그러나 검사 결과 자율신경실조증 환자라는 확증만 받을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그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평생 환자라는 사실이 절망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이 병의 환자가 맞다고 못 박듯이 확인받으니 속이 시원한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그래, 병명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으니 그나마도 다행인 거겠지.


아. 그러나 마음이 베인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 이제 내 삶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사실이 무정하리만큼 분명하고 날카로워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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