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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02. 2023

죽기 살기로 살았더니

스물일곱, 환자가 되다

2021년 새해가 되고 열흘남짓 지난 때였다. 갑자기 극심한 어지러움이 시작됐다. 앉아있기만 해도 세상이 핑핑 돌아 구토감이 일었고 스마트폰 화면 전환에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 나는 제대로 걷지조차 못했다.


졸업 전시를 오픈하고 본가로 돌아온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 다 끝났다-’ 하고 긴장이 풀리자마자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것 외에도 심장이 제멋대로 두근거려 숨이 찼고 소화가 안되었으며 손발은 더더욱 얼음장 같아졌다. 식욕도 기운도 없이 얼굴이 하얗게 떠서 누워 지내기를 한 달. 꼬박 삼십여 일을 누워만 지냈다.


당시 동네 병원에 가 봐도 혈압이 낮은 것 빼고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나 많은 증상이 있는데 문제가 없다니,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이리저리 검색하며 찾아보니 내 증세가 자율신경 실조증, 즉 자율신경계 이상인 것을 알게 됐다.


2023년이 된 올해 나는 환자가 된 지 3년째로 접어들었다. 조금만 쉬면, 6개월이면, 아니 1년이면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긴 시간이 계속 흘러만 갔다. 몸이 좋아지는 듯하면 도돌이표처럼 다시 좋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기를 몇 번. 혹시 싶어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는 딱히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효과가 있는 것 같은 치료는 다 해보며 지내라고 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아마도 평생, 이 병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스물일곱의 난 환자가 되었다.








열 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하고, 많은 시간을 잔다 해도 피곤함은 풀리지 않는다. 피곤함이 없는 삶이란 대체 무엇일까? 일어난 지 3~4시간이 지나면 그나마 채워졌던 기력도 발밑으로 쭉쭉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식욕부진에 먹은 건 소화도 잘 안되어서 6개월 만에 절로 5~6kg가량이 빠졌다. 청각이 심하게 예민해져서 일반적인 생활 소음에도 몸이 버티질 못한다. 잠깐이라도 집중력을 요하거나 스트레스를 발생하는 상황이면 바로 몸져눕는 일도 다반사. 항상성을 잃어버린 몸은 나를 보호하지 못했다.


건강한 사람이 완충된 배터리라고 한다면 나는 반의 반으로 뚝 떨어진 저전력 배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방전이다.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지게 된 까닭은 험난한 대학 4년의 시간 때문이었다. 디자인 전공생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제대로 못 자고 못 먹는 날들이 부지기수라는 걸.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수히 많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살았다. 과제, 과제, 과제. 조과제, 개인과제, 돌아서면 또 조과제, 개인과제가 쏟아졌다. 새벽 아침 해가 뜰 때 눈을 붙이고 서너 시간 후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던 날들. 그사이에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기도 하고 소모임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생활을 했다. 하루를 이틀처럼 살았더랬다. 특히 내가 속한 과는 다들 열심도 능력도 대단해서 몸이 부서져라 과제하는 분위기가 심한 편이었다. 알게 모르게 과열된 경쟁을 하며 몸도 맘도 쉬지 못한 채 카페인을 들이붓고 내달리기만 하는 삶이었다.


결국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난, 늦게 대학에 입학한 만큼 절대 생각에도 없던 휴학을 하기로 했다. 그저 살기 위해서였다. 달리던 관성 때문에 멈추느라 고생하기도 했지만 휴학 1년은 어찌어찌 잘 흘러갔다. 그런데 3학년 2학기, 나름 쉬고 돌아온 학교 생활이었는데 이미 내 몸이 예전 같지 못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자율신경 실조증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던 것 같다. 그 상태 그대로 4학년이 됐고 졸업이 걸린 4학년은 전에 없던 긴장감으로 내내 버텼다.


4학년 생활은 이전과 비교도 못할 만큼 버거웠다. 개인적으로 졸업작품이 주는 압박감은 어마어마했고 남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의 매일 눈물을 달고 살았다. 긴장감 하나로 그 모든 스트레스와 버거운 것들을 버틴 부실한 몸이었다. 간신히,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갑자기 긴장이 사라지니 당연히 무너질만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전시를 오픈한 후에 너덜너덜 해진 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딱 죽기 직전에 대학 생활을 마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로부터 체력을 끌어다 살았고 지금 그 빚을 갚고 있는 처지. 딱 내 모습이다. 더 잘 살아보려고, 내가 맡은 일들을 어떻게든 더 잘 끝마치려고 죽기 살기로 살았던 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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