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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01. 2023

Prologue

바다의 날씨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발을 묶었던 태풍이 지나간 후 바다는 제 모습을 찾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이다.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바다 곁에 머문 지 어느덧 5년 가까이 되었다. 익숙해졌다면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게 바다는 여전히 새롭다. 빛에 따라 색색들이 다양한 바다 얼굴,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 그날그날 다른 짭조름한 내음까지 모두.


며칠간 내리는 비만 보다 맞이한 맑은 날이라 그런지 공기에 비타민을 탄 듯 숨을 들이쉬기만 해도 기운이 날 정도로 쾌청하니 좋았다. 바다는 투명하게 푸른빛을 띠었고 평소엔 흐리게만 보이던 저 먼 동네 산자락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비에 깨끗하게 청소된 하늘이 기분을 들뜨게 만들어서 내일도 이렇게 맑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맑을 거라고 확신해 버리는 나였다.


그 확신은 단 하루 만에 헛것이 되었다. 다음날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습관대로 창밖을 확인해 보니 어제의 하늘은 꿈속 얘기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잔뜩 흐린 하늘에 바다는 생기를 잃은 회색빛을 띠었고 오랜만에 날이 좋아서 한 빨래도 비에 다 젖어버리고 말았다.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냥 ‘내일도 날이 좋겠거니-’ 하며 바깥에 널어둔 탓이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확신이었다.


정말이지 바다의 날씨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하루만에 날씨가 달라진 것에서 알 수 있듯, 바다는 일기예보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만큼 변덕이 심하다. 더울 때 춥고 추울 때 더운듯한가 하면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고 구름도 잘 낀다. 또 한 날은 저 먼 산까지 또렷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가 다음날이면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구름이 끼고 비가 쏟아지기도 하는 등 좀체 확신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바다가 늘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렇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맑았던 게 거짓말인 듯 비가 쏟아지는 지금이지만 나는 내일의 바다가 궁금하다. 내일은 어떤 하늘이고, 바다는 어떤 빛을 띠며, 불어오는 바람 중에 맡아지는 냄새는 어떠할까? 변덕스럽기 때문에 내일이 어떨지 더욱 궁금해진다. 흘긋 본 일기예보엔 내일도 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 예보는 참고만 될 뿐 솔직히 바다의 날씨란 그날이 되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생 또한 그런 것 같다. 마냥 맑기만 할 것 같았던 인생이 어느 날 갑자기 잔뜩 흐려진다. 가끔 무섭게 태풍도 불고 성난 파도가 밀려오기도 한다. 나가기가 무서우리만큼 버겁고 힘겨운 날씨가 계속되다가 힘들어했던 게 다소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쨍하고 해가 비치는 날도 있다. 맑을 거면 맑기만 하고 흐릴 거면 흐리기만 할 것이지 도대체 인생이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다처럼 인생도 함부로 확신할 수 없기에 계속 궁금해하고 기대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최근 수국을 키우는 재미에 들렸다. 수국은 물을 많이 좋아하는 식물이라 너무 쨍하게 맑은 날이면 힘들어하는 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잎사귀가 더욱 커지고 싱그럽게 기운을 차리는 게 눈에 보인다. 바다가 아름다운 날은 단연 햇빛이 내리쬐는 맑은 날일 테지만, 초여름 꽃을 피우기 시작한 수국을 생각하면 비 내리는 날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글쎄, 그렇다면 무엇을 좋은 날씨라고 해야 할까. 또 무엇을 좋지 않은 날씨라고 해야 할까. 그건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신하는 한 가지. 그날그날 변하는 날씨에 휘둘려도, 분명한 삶의 아름다움은 거기 반응하는 나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파도 | Wave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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