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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05. 2023

내려놓음

자포자기가 아닌 믿음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Isaiah 45:7, NIV] I form the light and create darkness, I bring prosperity and create disaster; I, the LORD, do all these things.








피곤하고 자꾸만 자고 싶었다. 몸이 발병 초기처럼 곤두박질치니 가까스로 회복하면서 찾은 식욕은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팔목도 아프고 기운이 후달려서 뭘 할 수가 없는 지경이라 그나마 쥐똥같이 남아있던 의욕마저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우울감으로 딱히 하고픈 일 없이 그냥저냥 무의미한 같은 하루의 반복. 차라리 자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정말 평생 이런 상태라면 어떡하지. 불안과 두려움이 또 엄습했다. 마음 아픈 얘기지만 하나뿐인 내 동생은 이미 10년 가까이 병을 앓고 있었다. 가장 열심히 공부해야 할 고등학생 때 기면증과 수면장애가 생겼고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장 어디 내놔도 부족할 것 없는 동생임을 자부하는데 슬프고 안타깝게도 병으로 인해 동생의 20대는, 가장 빛날 청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크리스천인 나는 언젠가 이 모든 것을 고치실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실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좋은 것만 주지 않으셨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통 가운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무언가 빠진 기분이 들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삶을 견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서 읽고 또 들으며, 가족들과 대화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잊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나는 ‘좋은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놓치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100%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삶에서 말하곤 하는 ‘좋은 것’도 실은 진짜 좋은 걸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참 하나님의 성품을 진실되게 안다면, 무엇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다면, 내가 낫지 못해 평생 하루를 남들의 절반만 쓰고 산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이유- 즉 이를 통해 이루실 선한 무언가가 있다고 여길 수 있음을 깨달았다. 소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넉넉히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진리이고 선(善)이시니까. 좋으신 분이시니까. 나는 그 하나님을 믿었다.


신뢰였다. 단 하나의 신뢰가 나를 안심하게 했다.


한 걸음, 마음을 돌이켜 이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건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것. 사실 발병 이후부터 쭉 내가 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그나마 내 손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작은 미래까지 다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욕심. 나는 진짜 환자이고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아서 눈물이 났지만, 그러나 당장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다시 나아갈 날이 분명히 있으리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자포자기가 아닌 믿음이. 그런 마음으로, 환자인 나를 인정하고 미련하게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았다. 취업, 직장을 다니는 일,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일, 사회생활 모두를.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던 건 내게 늦었다고 다그치지 않고 뒤에서 언제나 든든하게 기도와 사랑으로 지원해 주는 가족 덕분이었다. 내게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감사한 가족이 있었다. 세상 흐름에 따라서 이리저리 휩쓸리고 불안하게 흔들릴 그때마다 나를 믿음이, 소망이, 사랑이 붙잡았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그 어떤 형태의 삶이 되더라도 그건 내가 짊어져야만 하는 삶이다. 고난이 닥쳤을 때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내가 살아야만 하는 삶’이라는 사실은 야속하리만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어쩌면 괴로운 사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사실이기도 하다. 나만이 살 수 있는 삶이니까.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의 삶이다. 그렇다면 남들과 같지 못한 것이 불행이 아니라 내게 분명하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불행이지 않을까.


내가 그리는 ‘삶을 받아들인다’의 형태는 받은 달란트를 그대로 땅에 묻어버린 사람처럼 어리석고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다. 또 생각 없이 순응하거나 정신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사는 실력을 키우고 주어진 삶 속에서 어떻게든 나를 발견해 알아가고 끝내 살아가는, 적극적인 모습이다. 한 마디로 삶에 대한 건강한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갖추는 것. 곧 삶을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끌어안는 것이다.


삶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끌어안는 건 비교적 어렵지 않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삶이란 때때로 아프고 두렵고 절망스럽고 힘든 일을 생각하고 느끼고 끌어안기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는 건 쉽지 않을 게 자명하다. 또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좋은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소망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좋은 것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어디 있는지 보였다. 나는 나의 믿음을 보여야 하는 순간에 서 있었다. 그러니, 그만큼 지금의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 삶을 힘껏 껴안을 것’. 이것이 내가 보여야 하는 반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조차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 또한 분명했는데, 그 분명한 게 놀라울 만큼 따뜻하고 환하게 느껴졌다.








잔물결 | Ripple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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