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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13. 2023

신진작가가 되다 2

첫 전시를 마친 후에 느낀 것들

2022 아시아프 1부 참여 작가로 선정되어,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한 주 동안 전시를 진행했다. 갖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시작된 작가로서의 발걸음. 이번에는 그 전시를 마친 후 느낀 것을 쓴다.








1 / 이토록 많은 작가, 이토록 많은 작품 사이에서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

내가 굳이 예술을 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은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로 차고 넘친다. 다양한 존재만큼 다양한 예술. 그 안에서 내 작품은 얼마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집에서 혼자 작업하느라 가족 외엔 작품을 직접 보일 일이 없던 터라, 사람들 앞에 작품을 내보이는 건 기대되면서도 떨리는 일이었다. 자신이 있는 듯 없는 듯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너무 궁금했다. 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할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상상 못 한 일들이 일어났다. 전시 오픈을 하자마자 가장 작은 작품이 하나 팔리더니 이후 전시 기간 동안 두 점이 더 팔린 것이다. 두 점은 전시 중인 작품이었고 나머지 한 점은 아직 한 번도 전시하지 않은, 포트폴리오 웹사이트에만 공개한 작품이었다. 얼떨떨했다. 총 세 점이 팔렸다. 내 작품을 전시하는 게 처음인데, 그 작품이 팔렸다는 게 너무 놀라웠고 여분의 작품까지 팔린 것도 신기했다. 이렇게 이름 없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선뜻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런 경우라면 어떤 경제적 가치보다도 순수하게 작품이 좋아서 구매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또 어느 날엔 전시 관련 봉사자 한 분이 내가 작가인 걸 알고는 다가와 인사를 건네주셨다. 관람객들로부터 작품에 대한 질문과 문의가 많다며,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다. 그 인사를 들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부풀었다.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그중에 내 작품을 궁금해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만든 작품이 어떤 형태로든 그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소중했고 감사했다.


전시가 끝나고서 그 어떤 때보다도 작품 하는 일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고생했던 모든 시간이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작품을 선보인다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일. 다듬어져야 할 게 많은 내게 이 첫 전시는 포기하지 않고 작업해야 할 이유를 선물해 주었다.








2 / 좋은 예술에 대해서

이미 여러 번 전시를 둘러본 터라,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을 감상하는 지인 각각의 반응을 살피게 됐다. 그건 또 그것대로 흥미로웠다. 작품을 보고 느끼는 생각이라던가 특별히 좋다고 느끼는 작품, 별로라고 느끼는 작품들이 사람마다 다 달랐던 것이다. 한 마디로 취향 차이였다. 기술적인 면이나 완성도를 볼 땐 나름 객관적인 눈으로 비슷한 평가를 내리는 듯했지만 주제, 색감,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 등은 사람마다 끌리는 것도, 느끼는 것도 다 달랐다. 쉽게 말하자면 같은 작품을 두고도 누구는 복잡해서 별로라고 하는 한편 다른 누구는 복잡해서 마음에 든다고 하는 식이었다고 할까.


그러고나니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추측할 수 있었다. 시각적 측면이든 의미적 측면이든 나와 결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면 내 작품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내 작품이 끌리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 모두를 만족할 만한 작품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묘하게 용기가 났다. 같은 음식을 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 작품 또한 마찬가지라는 소리니까.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입맛을 어떻게 다 맞출 수 있을까. 그러다가는 오히려 맛을 잃을 게 뻔하다.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일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는 나는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나의 빛, 나의 색, 나의 맛으로 독특하게 깊어지면 된다. 또 하나의 답을 제안할 수 있을 만큼.








3 / 예술가가 할 일

1년 반 이상 죽은 듯 소식 없이 지내다가 전시를 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사실 5년 전에 가족들 모두 부산으로 이사를 내려온 터라 웬만한 지인들과 친구들 모두 수도권에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쓸쓸하게 동네 친구 하나 없이 부산에서 투병하며 지내다가 그리웠던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너무나 반갑고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올 때마다 든 생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애환 없는 인생이 없다’였다. 공부를 하고 있든, 졸업을 준비하든, 취업을 준비하든, 직장에서 일하고 있든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애쓰며 살고 있었다. 고민도, 고생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오늘을 견디는 삶. 내 삶에 골몰해서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다시 보게 된 순간이었다.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아 보였다. 모두 각자 자기만큼의 삶을 지고 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더라도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찌 됐든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 테고 나는 나의 삶을 살게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살기 힘들다 해도 내 삶이기에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이 애환 가득한 세상과 인생 속에 작품을 하기로 한 사람이, 예술을 하겠다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뭘까.


위로라고 한다면 너무 식상할까. 하지만 맵고 짜고 쓴 하루에 잠시라도 힘과 쉼을 줄 수 있는 영혼의 양식이 위로가 아니라고 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위로라는 말과 함께 따라오는 가치들이 상투적이게 느껴져도, 그러나 그것들이 해내는 일은 결코 진부하지 않고 진부할 수도 없이 아름다운 것 아닌가.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22 아시아프 전시 전경


작가가 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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