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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14. 2023

내가 바라는 예술

충격적인 전시가 내게 던진 화두

만삭인 임산부와 그의 남편으로 보이는 부부가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임산부 뒤쪽으로 커다란 화물차가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들더니, 임산부를 칠 뻔한 순간에 멈추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고 말았다. 깨고 나서도 내 심장은 한참을 빠르게 뛰었다.








이 꿈을 꾸기 바로 하루 전, 인사동 갤러리에서 단체전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에 즉흥적으로 어떤 미술관에 들렀다. 오랜만에 미술 전시를 보는 데다 예정에 없던 미술관 방문이라 한껏 기대를 안고서 말이다. 수집한 작품들을 보여주는 상설 전시였고 사전 정보 없이 바로 입장했다.


그런데 전시를 보며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예상과 다르게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공간 안에 더럽거나, 잔인하거나, 성적이거나, 어딘가 사람을 소름 끼치게 만드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부류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관람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런 충격적인 작품들도 다양한 예술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시장 안에서 친구와 같이 전시를 둘러보는 임산부(태아를 안심시키듯 손을 부른 배에 얹고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었다)를 마주쳤을 때 내 마음은 조금, 아니 꽤나 심란해졌다. 어린아이의 관람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여길 정도의 전시였기 때문이다. 그 임산부도 분명 곧 태어날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주기 위해 친구와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했을 텐데 아마 나처럼 모르고 들어왔을 게 뻔해 보였다. 나는 불쾌한 충격의 연속인 작품들 속을 헤매는 임산부의 마음은 괜찮은지 걱정되었다.


사실 그 전시에는 미술 교과서에 실린 작품과 현대 예술가로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작가들의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유명세를 떠나 전시된 대다수 작품들에는 비슷하게 흐르는 분위기가 있었다. 얼마나 괴이해질 수 있는가?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가? 얼마나 더러워질 수 있는가?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 즉 인간의 괴이함, 비참함, 더러움, 추악함이 면면에 흐르고 있던 것이다. 그것들을 고발했다기엔 이미 그 자체가 되어버린 꼴이었고, 예술로 승화했다기엔 그저 욕망의 피칠갑 같았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더러워진 기분을 씻을 수 없었다. 어딘지 모르게 맞은 것 같아서 멍들고 상처 입은 느낌이었다. 다음 날 내가 깜짝 놀라 깬 꿈은 이 모든 상황이 비유적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내 기분은 옛 궁의 숲길을 한참 동안 걷고 나서야 비로소 회복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시 티켓을 끊던 그때 나는 곧 만나게 될 작품들로부터 뭘 기대했던 걸까? 이 전시는 내게 다시 큰 질문을 던져주었다. 예술이 뭐냐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특히나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이 뭔지 파고드는 질문을 말이다.


‘인간 마음의 어둠 속으로 빛을 보내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말했던 음악가 슈만의 말처럼, 나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영혼을 밝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을 치욕스럽게, 화나게, 비참하게, 더럽게 만드는 일, 즉 영혼을 어둡게 만드는 일은 빠르고 단순하다. 대체로 쉽다. 쉬운데 반해 그 좋지 않은 경험과 충격의 잔상은 강렬하고 오래간다.


반대로 인간을 아름답고 건강하고 즐겁고 생기 있게 고양시키는 일, 영혼을 밝히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그 방법은 복합적이고 복잡해서, 한 마디로 어렵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하며, 간혹 시시해 보일 때가 있어 그 경험과 감정을 오래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식물을 어느 시점이든 꺾고 짓밟기는 쉽지만 때에 맞게 물과 양분을 주어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게 하기는 어려운 것과 같이. 하지만 어렵더라도 우리는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 선(善)이라는 걸, 그것을 향해 가야 한다는 걸 본능처럼 알고 있다.


왜, 그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는 곧 태어날 아이에게 예술의 경험을 주고 싶었을까? 그리고 왜, 그녀는, 나는, 예술에 자연스럽게 기대를 걸었을까? 도대체 예술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다시 이 질문들은 예술이 가야 할 수많은 길 중 분명한 하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


확실히 말하지만 예술이 단순히 선과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진흙탕 세상에서 진흙을 가지고 표현한다 하더라도 그저 진흙으로 끝나지 않을 것. 진흙 속에 있지만 진흙과 같아지지 말 것.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그러나 예술은 끝끝내 쉽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고, 쉽지 않은 일들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예술은 그렇다.








옛 궁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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