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시를 준비하며 깨달은 것들
작가가 되고자 도전한 첫 공모는 아시아프였다. 국내 신진작가들의 등용문이라고 불리는 아트페어 겸 전시. 순수 예술 분야로 처음 발을 딛는 내게는 큰 기회였다. 감사하게도 첫 도전에 바로 전시 기회가 주어져서 앞으로 신진작가로 활동할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그 첫 전시를 준비하며 깨달은 것들을 써본다.
1 / 작품이 주는 고통과 기쁨
작업을 하면서 마주하는 스트레스가 그대로 몸에 전달될 때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종이에 칼질을 한 번 하고 나면 어지럽고 힘이 들어 쓰러져야 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 같아 작업하는 중에 수백 번 또 고민을 했다. 그럴 때면 작업을 모두 내려놓고 쉬었는데, 쉬어가는 시간이 길어지면 해야 할 일을 제 시간 안에 이루지 못하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과 불안이 따라왔다.
계속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작업 -> 몸이 힘들어짐 -> 마음이 힘들어짐 -> 쉬면서 다시 믿음으로 정신을 차림 -> 작업 -> …) 하도 반복되니 점차 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거리를 둘 수 있었지만 이 과정을 계속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건 나이지 않은가. 사람이 단번에 강해질 수 없고 또 곧바로 자기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작품을 준비했다.
힘들다고 줄줄이 썼지만 그럼에도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 내가 한껏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일. 몰입할 때 느끼는 즐거움과 해방감, 수많은 고민과 어려움 끝에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그 어느 것도 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또 신작을 구상할 때면 마음이 설레고 두근거리는 게, 정말로 내 천직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나 힘들어하면서도 기쁨과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니! 스스로도 참 희한하고 신기했다.
2 / 작업 과정의 깨달음
이제 막 작가의 길에 들어섰으니 차차 내게 맞는 작업 방식을 알아가야 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등 주어진 환경 안에서 어떻게 작업하는 게 좋을지 시도했다. 그리고 첫 전시라는 목표에 다다르면서 자연스레 그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나는 갖고 있는 총알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체력과 건강 측면에서도 그랬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것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 정밀하게 예측하고 상상해서 필요한 순간에 하는 결정이 명중하도록 해야만 했다. 결국 작품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묵상하는 게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하고도 큰 과정이라는 걸 알았다.
작업 과정을 생각하니 고등학생 때 <Work of Art>라는 미국의 아티스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거기 특이했던 한 참가자가 있었는데, 작품 발표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눕기만 하고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작업하느라 바빴는데 말이다. 그 사람은 자기만의 임계점이 다가오자 그제야 남은 시간 빠르게 작품을 완성해 냈다. 그리고 우려와 달리 놀랍게도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의 작품 하는 방식이 내 성격과 너무 달라서 그 모습이 꽤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다.
한편 프랑스 영화의 누벨바그를 이끈 감독 장 뤽 고다르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잠시 모든 것을 중단했다. 그리고 생각하길, ‘작품에 대해 확실한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하루에 열몇 씬은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려 하지 말고, 마지막 순간에 닥쳐서 생각하자. 작품에 대해 확실한 주관만 서 있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그것은 즉흥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뿐이다. 전체적 구상은 있어야 하고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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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르 사 비> 장 뤽 고다르 감독 인터뷰: '영화에 관하여 고다르가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KINO 1997.05)
결국 중요한 것은 작품에 대한 확실한 생각이라는 말이다.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인내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예술가에겐 사냥꾼 같은 면모가 필요한 지 모른다. 목표물을 가장 멋지고 확실하게 해치울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솔직히 작품에 관해서 ‘생각’이라는 걸 할 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듯 보이는 스스로를 용납하기 힘들었다. 원래 내 성격은 목표물이 오기를 차분히 인내하며 기다리기보다는 처음부터 이것저것 해보면서 목표물에 다가가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젠 내 성격대로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생각만 하는 자체가 작품을 하는 일이라고 인식하니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여러모로 한계가 많은 나의 모든 상황이 결국 훈련이 되는 거라고 여기게 됐다.
마지막으로 재료 물성과 제작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서 오는 고민과 궁금증들은 먼저 활동하고 있는 다른 작가님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해결할 수 있었다. 그분들도 자기만의 재료와 표현법을 익히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이 있었다.
작품이란 것도 어찌 보면 사람처럼 점점 성장해 가는 것인데, 난 당연히 겪어가야 하는 일들을 두고 겪지 않을 방법은 없는지 눈을 흘기고 있었다. 작업은 그저 묵묵히 그 과정을 거쳐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3 / 작가라는 업의 특수성
전시가 오픈되기 전에 작품이 팔릴 것을 대비해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작품을 한다고만 생각했지 판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작품 판매를 준비하는 게 조금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판매 준비를 하면서 작가란 직업이 자영업자와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사업 아이템이 자신의 예술 작품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랄까.
여하튼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손수 해야 했다. 갤러리에 소속되어 도움을 받는다면 할 일이 줄어들겠지만 신진작가인 나는 작품뿐 아니라 홍보부터 운송, 작품을 사고자 하는 고객 응대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할 수 있어야 했다. 작품을 받아 보게 될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세상에 선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게 된 지점이기도 했다. 상품 그 이상의 예술 작품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제 갓 예술계로 발을 디딘 나로서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어리둥절했다. 물론, 작가는 좋은 작품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일 테다.
4 / 예술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작품에는 작가의 손길만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특히 현대미술은 더더욱 그러했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다른 이들의 수많은 도움이 있다는 걸, 본격적인 내 작품을 하면서 느꼈다. 매번 재료를 집까지 안전하게 배송해 주시는 택배 기사님이 감사했고 좋은 거래처가 생기거나 협업이 되거나 작품 제작과 관련해 어떤 도움을 받을 때면 더욱 감사가 넘쳤다.
도움의 손길은 작품을 제작할 때만이 아니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설치할 때 주변을 돌아보니 나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작가분들 모두 친구나 가족 등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현장에는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늦게까지 수고하고 있었다. 작품을 이렇게 전시할 수 있는 건 모두 누군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그 자리에서 문득 깨달았다.
작품은 작가로부터 탄생하지만 그 작품이 ‘진짜 작품’으로 보이기까지는 크고 작은 손길을 필요로 했다. 전시장 안에는 작품이 주인공이 되어 가장 빛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작품이란 작가의 피, 땀, 눈물을 바탕으로 하여 그 이상의 것들이 ‘함께 녹아 빛을 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가장 마지막으로 그 빛나는 작품을 봐줄 관람객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내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환자인 나를 기꺼이 도와주는 가족이 없었다면 애초에 작가가 되어 작품을 하는 일이란 불가능했다. 인생은 혼자인 것 같아도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 예술 또한 작가 혼자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각각의 자리에서 하는 최선이 모여 결국 예술을 예술답게 만들고 있었다.
아픈 지 일 년 반이 훨씬 넘어서 시작된 삶의 행진. 내가 감사를 기억하며 겸손하게 작업해야 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