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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10. 2023

다시, 내려놓음

마음이 들떠서 착각했던 나는 다시,

[욥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Job 1:21, NIV] and said:"Naked I came from my mother's womb, and naked I will depart.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s taken away; may the name of the LORD be praised."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 Thessalonians 5:18, NIV]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순조롭게 이런저런 작품 실험과 재료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박차를 가하게 됐더니 이때 또 문제가 생겼다.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본격적인 작품 제작은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고 요구되는 집중도가 완전히 달랐다. 이 말인즉 작품을 완성하는 데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올라갔다는 뜻이다. 내가 생각한 만큼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몸이 버티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작업이랄 것도 없이 오래도록 중지된 상태가 이어졌다.


온몸이 떨리고 힘이 빠져서 겨우 종이를 자르는 것 하나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 간단한 것조차 못하는 상황에 속이 타들어갔다. 안 되는 걸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해보고 싶은 마음에 계속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이 서럽고 한탄스러워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하다.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납득한 몸이라면 실제로 아무것도 못하는 게 당연한 건데. 그런 내 삶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생긴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인데. 감사함은 깡그리 잃어버린 채 아무것도 못하는 똑같은 상황을, 심지어 이미 납득한 상황을 다시 가혹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때 난 작품 한다고 들떠서 환자가 아닌 듯 착각하고 있었다.








몸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정말로 보이지 않는 마음이 힘없고 무거운 몸뚱어리에 갇혀서 답답해 미쳐 날뛰는 것 같았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며 울상인 내게 동생은 그만 인정하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그래, 정말 맞는 말이었다. 더 이상 내 몸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아니, 건강한 몸이어도 그것이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었다. 믿는 사람이라면, 신앙인이라면 그게 옳은 자세였다.


이미 그 모든 것을 인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내가 인정한 건 전부가 아닌 일부였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 인도하심은 감사합니다만 그래도 이 정도쯤은 하게 해 주셔야죠?’ 하면서 여전히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던 것이다.


내려놓음과 순종. 그 얼마나 해내길 바라던 말들인가. 그러나 내가 순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피상적이었다. 0 아니면 100 뿐인 진정한 순종의 세계에서 순종이란 전부였다. 전부를 내놓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모든 걸 잃어버리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그런 느낌’과는 상관없이 전부를 원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완전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내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순종, 그 바닥에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는 것도.


나보다 한참 먼저, 젊고 푸릇한 20대 모든 시간 동안 이 사실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동생이 안쓰러운 한편 대단해 보였다. 그런 동생의 말이었기에 나는 내 상황을 비교적 빠르게 인정할 수 있었다. 내 삶에 놀랍게 개입하시고 늘 좋은 것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며, 또다시 앞서가는 마음과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잠시 ‘빨간 신호를 받았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내 몸이 할 수 있는 만큼 하기. 할 수 없을 땐 멈추기. 느린 것을 조급해 말기. 기도하며 기다리기.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서 어떻게 해보려는 게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기. 신뢰하고 믿기. 이 순간에 온전히 순종하기. 내가 해야 하는 최선이란 그런 것이었다.


순종을 깨닫기 전에는 억울함이나 못마땅스러운 감정이 있었는데 바로 알게 된 후에는 놀랍게도 평안과 감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뭔가를 하지 못해도, 할 수 없어도 감사했다. 겨우 조건을 찾아내서 하는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진정한 감사가 샘솟았다. 하나님을 내 삶의 참 주인으로 인정하는 그 믿음에서 오는 평안이고 감사였다.


어떻게 욥은 자기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외에도 수많은 성경 인물들의 삶과 말씀이 머릿속을 스쳤고, 그 모든 것이 한 가지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제야 나는 삶을 통해서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편 이 순종의 마음 이후 나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얻었다. 작품 활동까지 전부 내려놓고서 다시 나아갈 때를 기다리는 중에, 답이 없어 거의 반년을 방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다른 작업을 끝맺게 된 것이다. 이때 이 작업을 끝내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작업 마무리 후엔 멈춘 작품 제작에도 진전이 생겼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건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더 많이 얻게 되는 놀라운 일이었다. 안 되는 것을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해보고자 발버둥 치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나를 향한 선한 이끄심을 기다리는 것. 나는 매일 그런 삶을 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려놓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결과.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나서 멈추었던 작품 제작에도 진전이 생겼다.


순종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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