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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혜빈 Jun 09. 2023

just DO

시도가 두려운 예술가에게

1 /

예술이 하고 싶다고, 예술을 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는데도 여전히 쓸모없음, 소용없음, 자격 없음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마음이 흔들렸다. 그럴 때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허공에 헛발질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불쑥 들곤 했다.


어느 날은 가까운 친척의 생사가 걸린 건강 문제를 이야기하며 무력함을 느꼈다. 내가 지금 예술한다며 실험하고 작업하고 작품에 열중하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력해지고 말지만 왜인지 예술을 한다는 건 특히 더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빈틈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이렇게 파고드는 이 허무한 생각 사이로 내 안의 누군가가(분명 나였는데 마치 다른 존재 같았다) 빠르게 반박했다. 그럼에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뿐이라고. 이것이야말로 네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끝까지 하라고.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또 예술에서 멀찍이 발을 빼고 고민만 하며 지켜봤을 텐데 확실하게 다짐했기 때문일까. 그 곧은 반박에 달라진 나를 증명하듯 속으로 분명하게 되뇌었다. 나는 계속할 거라고, 하고 말 거라고. 주눅 들지 않은 채 당당히 대답하고 나니 조금 용기가 솟는 것 같았다.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이런 흔들림도 잦아들지 않을까. 어서 단단해지고 싶다.








2 /

어떤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작품을 하면 될까. 탐색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면 막연함으로 인한 두려움이 커졌다. 결국 뭔가 잘못될 것 같고 망칠 것 같은 불안감에 간단한 코드를 짜거나 재료 실험을 할 때는 물론이고 그냥 취미로 피아노를 칠 때조차 자꾸 멈칫멈칫하는 나를 발견했다. 문제는 내가 두려워하는 그 잘못이라는 게 어이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헛된 불안이 자꾸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다.


이 문제를 곱씹으면서 더 깊은 내면에 숨겨진 원인을 알게 됐다. 바로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내게 남은 건 예술뿐이라, 이 마저도 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떡하나 싶었던 것이다. 결과물이 시원치 않아서 계속하기 힘들게 된다거나 끝내 모두 그만둬야 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시원하게 깨부술 줄 알고 짜릿하게 말아먹을 각오를 해야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게 내 상황이었다. 나는 원래 아무것도 못하는 몸 아닌가. 이렇게 겨우 작업을 하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말이다. 믿음은 어디로 사라졌냐고 자조하다가, 한편으론 많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다 보니 더욱 잃고 싶지 않은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으로 복잡한 심리가 이 문제 안에 얽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고 완벽하게 해낼 순 없는 법. 작품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수해도 괜찮고 망쳐도 괜찮다. 그렇다고 영영 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일단은 두려움 없이 다 쏟아내 봐야 한다. 일단은. 정말 그냥.








3 /

과정은 원래 지저분하고 그런 거지. 뭘 그렇게 예쁘게 정돈된 채로 하려고 그래? 일단은 어지르고 헤쳐놔야 새로 모양도 잡아보고 이것저것 바꿔볼 수 있는 거잖아? 선도 넘어야 하는 때가 분명히 있는 거라고. 네가 지금 하려는 건, 아주 나중에, 폭풍이 다 지나가고서 할 정리야. 그건 그때 가서. 지금은 걱정 말고, 다 내려놓고, 그냥 펼쳐. 즐기라고.








4 /

작업 중 이렇게 쭈글이가 될 때면 어떤 편지 한 장을 떠올리곤 한다. 바로 미니멀리즘 아티스트 솔 르윗이 친구 에바 헤세에게 보낸 편지다. 예술가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이야기로 유명한 이 편지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시도하기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주리라 생각한다.


Dear Eva, April 14 (1965)

It will be almost a month since you wrote to me and you have possibly forgotten your state of mind (I doubt it though). You seem the same as always, and being you, hate every minute of it. Don’t! Learn to say “Fuck You” to the world once in a while. You have every right to. Just stop thinking, worrying, looking over your shoulder, wondering, doubting, fearing, hurting, hoping for some easy way out, struggling, grasping, confusing, itching, scratching, mumbling, bumbling, grumbling, humbling, stumbling, numbling, rambling, gambling, tumbling, scumbling, scrambling, hitching, hatching, bitching, moaning, groaning, honing, boning, horse-shitting, hair-splitting, nit-picking, piss-trickling, nose sticking, ass-gouging, eyeball-poking, finger-pointing, alleyway-sneaking, long waiting, small stepping, evil-eyeing, back-scratching, searching, perching, besmirching, grinding, grinding, grinding away at yourself. Stop it and just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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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에바에게, 4월 14일 (1965)

네가 내게 편지를 쓴 지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 아마 넌 네 마음 상태를 잊어버렸겠지 (나는 그것조차 의심스럽지만). 너는 항상 똑같아 보여. 너 자신이 매 순간을 미워하게 하고 있어. 그러지 마! 가끔은 세상에 “엿 먹어”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해. 너는 그렇게 할 권리가 있어. 그만 생각하고, 걱정하고, 궁금해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상처받고, 뭔가 쉬운 길이 있기를 바라고, 힘겨워하고, 움켜쥐고, 혼란스러워하고, 가려워하고, 긁고, 더듬거리고, 버벅거리고, 웅성거리고, 걸고, 넘어지고, 지우고, 서두르고, 비틀고, 꾸미고, 불평하고, 신음하고, 끙끙대고, 갈고닦고, 발라내고, 허튼소리 하고, 따지고, 트집 잡고, 간섭하고, 남에게 몹쓸 짓하고, 남탓하고, 눈을 찌르고, 손가락질하고, 몰래 훔쳐보고, 오래 기다리고, 조금씩 하고, 악마의 눈을 가지고, 남의 등이나 긁어주고, 탐색하고, 폼 재고 앉아있고, 평판을 더럽히고, 너 자신을 갉아먹고, 갉고, 또 갉아먹지 말라고. 다 그만두고, 그냥 좀 해!








DO! 강조표현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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