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나는 그를 떠나보내기로 한다. 15년 전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죽음이 슬픔을 남기겠으나 좋은 사람의 허망한 죽음은 더욱 큰 슬픔을 남긴다. 난 할아버지를 사랑할 뿐 아니라 좋아했다.
그가 생명 일반에 펼쳤던 사랑을 존경했다. 그는 손녀인 나만을 사랑하지 않았다. 길고양이, 비둘기, 강아지가 그를 좋아했다. 집 마당에는 나무며 꽃이며 각종 식물들이 푸릇하게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오랫동안 집 근처 보육원을 후원했다. 나도 할아버지와 자주 그곳을 놀러 갔다. 그는 가는 길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운동장에 들어서서 제일 큰 소리로 말하는 아이가 현식이야. 운동장이 떨어져라 인사를 할 거야.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가 나보다 그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닌가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물도 아이도 어른들도 할아버지를 따르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난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가 있다면 어떤 실패든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슨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더라도 받아주리라 믿었다. 사실 믿을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셨다. 신체가 약했던 탓일까, 그는 약해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몸이 약해도 등산을 하고 백세까지 살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나는 어렸고 그의 말을 믿었다. 대체로 그의 말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 오랫동안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그는 할아버지이자 아빠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할아버지가 아프고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그가 너무나 그리웠던 탓에 엄마를 따라 병원에 갔다. 말랐던 몸이 더 앙상해져 있었다. 어린이 잡지에서 보고 주먹밥도 만들어갔다. 주먹밥은 꺼내보지도 못했다. 그는 병약한 모습을 손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왜 애들을 데리고 오냐고 화를 냈다. 애들을 데리고 병원 근처에서 밥을 먹여 보내라고 했다.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그는 사망했다.
그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걸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난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증명이라도 해보겠다는 요량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가 없이 살 수 없다고 믿었다. 나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증명했다. 그가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이전의 따뜻한 세상이 아니다. 미안한 맘, 그리운 맘, 하지 못한 말에 대한 죄책감.. 참 많이도 눈물 흘리며 지냈다.
이렇게 서로 우리는 허공과 지상에서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데 만질 수도 볼 수도 말을 건넬 수도 없다. 그래서 그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실. 그 없이도 살만한 인생이 가능하다는 사실. 이 명징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직도 어렵다. 아직도 그의 얼굴, 걸음걸이 그리고 냄새까지 생각난다. 아직도 이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는데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냐고 묻고 싶다.
그러나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그가 남긴 유산을 받을 수 없다. 생명 일반에 여린 그의 연민과 사랑을 받아낼 수 없다. 나는 나에게서 그를 찾아낸다. 아이들을 보고 좋아하는 나와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돌보기를 좋아했던 할아버지를 연결한다. 그리고 허공을 날아 구름 속 어딘가 나를 돌보고 있을 그의 존재를 상상한다. 그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려 한다. 가슴 한편에서 숨 쉬고 있는 그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