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이었던가. 청룡영화상에서 전여빈 배우의 수상 소감이 내 심금을 울렸다. 남에게 너그러운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내게는 그 너그러움이 참 박하다는 말. 그렇기에 나 자신에게도 남들에게 너그러운만큼만 너그러워지자는 그 말이 마음에 가득 담겼다.
최근 나 좀 위로 받고 싶었나?
원래도 좋아했던 배우였던 그녀가 던진 자그마한 위로가 내 마음에 그렇게 깊은 파동을 남길 줄이야.
생각해보면 나는 나에게 참 박했다. 조금 실수한 것으로도 스스로를 나무라고 혐오했다. 그러나, 친한 친구나 지인의 무너짐은 온 힘을 다해 받아냈다. 타인에게 그런 거대한 위로를 전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를 격려하는 일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남에게 하는 만큼만 나를 응원해 주면 좋았을텐데. 내 마음의 초점은 언제나 ‘타인’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나 스스로를 위로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남을 위로한다고. 참 우스웠다.
그럼 나는 진짜 그들을 격려할 줄 알았을까? 사실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누군가를 받쳐주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런 스스로가 끔찍하기도 했지만,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를 너그럽게 볼 줄 모르니 남의 고통에도 온전한 위로를 건네기 어려웠던 것이다.
요새 나의 목표가 하나 있다면, 누군가의 시련에 온전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나를 마주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격려하는 순간 다른 사람의 시련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너그럽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상대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항상 혼란스러웠다. ‘자존감을 높여라.’, ‘나 자신을 사랑해라.’, ‘스스로를 마주하라.’ 유튜브만 틀어도 썸네일을 가득 채운 문구들. 명확한 답은 없이 자존감을 높이라는 표면적인 문구만을 외치는 영상에 분노가 치솟기도 했었다. “대체 어떻게 나를 사랑하라는거야!”라며 말이다. 그러나 결국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었으며, 그 첫 번째가 나를 너그럽게 바라봐 주는 것이었다. 못난 나도, 부족한 나도 그럴 수 있다고 가끔은 안아줄줄 아는 사람이 진정 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비교만이 가득한 사회에서 내게 너그러운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남들이 잘하지 못할 때, 실수할 때 따뜻한 마음으로 건네는 위로의 방향을 내게로 조금만 돌리면 될 일이다.
못해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 괜찮으니 앞으로는 더 잘하면 된다고 그게 뭐가 그리 대수냐며 스스로를 좀더 안아주기로 하자. 남들에게 너그러운 만큼만, 나 자신에게도 너그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