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말이다. 코로나 모임 제한 조치가 조금 느슨해져서,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최근에 종종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엊그제 만난 것처럼 익숙한 친구들과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서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는데,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그때 너 엄청 빡쳐서 나한테 절교하자고 했잖아."
"그때 나 장염 걸렸는데 숙제하자고 우리집 와서 너 혼자 치킨 시켜 먹었잖아."
와 같은 10년 전, 15년 전 흑역사를 갖고 여태껏 놀려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늘 반성하게 되고 겸손해져서 참 감사하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다 보니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인사처럼 하게 되는데, 사실 요즘엔 딱히 특별할 일은 없고 심심하게 산다. 분주하고 욕심 많던 생활의 기름기가 조금 빠지고, 소박하게 꼭 해야할 일들만 하면서 - 예를 들면 회사에 다녀오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청소를 하고, 일기를 쓰면서.
퇴근하고 저녁에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고, 게임도 하고, 심심하지 않게 보내는 것도 정말 좋지만, 요즘에는 달고 짠 맛을 다 빼고, 기름지고 매운 자극도 다 빼고, 슴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일하는 시간에는 어떻게든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나머지 시간은 혼자서 에너지와 내공을 모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달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운동 시간 이외에 놀러 다니거나 연예 활동을 하는 선수들을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아마 비슷한 이유일 것 같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을 위한 거창한 무언가를 하거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심심하게 시간을 보낸다는 편이 더 맞는 말이겠다.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자극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우선 심심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심심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한 건설적인 루틴이 필요하고, 그 다음엔 그 지루한 루틴을 꾸준히 반복해나갈 수 있는 노잼 저항성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엊그제 한의원에서 만난 다섯살 꼬마는, 온 몸에 침을 꽂은 채로도 "아유 심심해 죽겠다" 라며 엄마를 2.5초마다 두번씩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마치 조광일의 랩을 듣는 것 같은 굉장한 에너지였는데, 아무리 조광일이라고 해도 24시간 내내 그런 박력있는 톤과 속도로 대화를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사회 초년생 때 일주일에 너댓 개씩 약속을 잡고 집에서는 잠만 자던 생활을 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부지런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평일 저녁에 약속이 두 개를 넘어가면 리듬이 다 깨지는 개복치가 되어버렸다. 주말엔 무조건 하루는 아무 것도 안하고 쉬어야 한다. 이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 좀 더 가깝다.
사회 생활의 희노애락을 어느 정도 겪어내면서 이제는 내 에너지 레벨을 적정한 수준으로 꾸준하게 관리하는 것이 공기만큼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조금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내려놨다. 음식으로 치면 약간 환자식에 가까운 슴슴함을 계속 견뎌야 한달까.
다행히 친구들과 이야길 나누다보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들 나이가 들어서 그런걸까. 아니면 우리가 예전에 비정상적으로 부지런했던 걸까. 아니면 결국엔 비슷한 사람들끼리 남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소중한 시간을 내서 나와준다는 점에서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