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Aug 31. 2020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몇해전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에서 이 책을 처음 봤다. 그 친구가 얼마나 재밌는지 봐볼까 하고는, 부산으로 내려가는 KTX에서 펼쳐들었다가 어느새 팔짱을 풀고,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던 이 책을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었다. 일단 표지가 씨티팝 스럽게 예쁘기도 했고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일주일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어떤 책을 읽지 고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소설이 생각나서 친구에게 급히 빌리게 되었다. 사실 자연으로 휴가를 떠나면서 이 책을 가져간 것은 미스였다. 이 책은 표지의 일러스트 처럼 대도시 서울에서, 특히 나의집 이태원에서 맥주든 위스키든간에 술을 마시면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읽어야 진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대강 퀴어 소설이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엉망진창인 연애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의 20대의 실수들과 상처와 숙취들이 모조리 떠오르는 그런 소설 이었다.

동성애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게 누구건 무슨 내용이건 이유 없이 패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다 똑같은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 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에 대한 질문은 정말 많이 공감됐다. 사랑을 하는 인간이 얼마나 멍청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연약해지고, 상처받기 쉽고 때론 더럽고, 추해지기 까지 하는지는 열렬히 사랑해 본 사람은 다들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아름답기만 한 관계는 세상에 없는 것 같다.

그가 나의 가장 뜨거운 조각들을 가져가버렸다는 사실을, 그로 말미암아 내 어떤 부분이 통째로 바뀌어버렸다는 것을 후에야,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남편과 한동안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와 트로이 시반의 Youth중 뭐가 더 낭만적인지에 대해 설전을 벌인일이 있다. 남편은 므라즈, 나는 트로이 시반 편이었다. 내 전부를 너에게 주겠다는데 어떻게 젊음만 너에게 주는 것이 더 낭만적이냐고 남편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젊음이라는, 나의 가장 아름다운 엑기스를 상대에게 주는 것이 훨씬 낫다고, 나의 멍청함과 구린 부분까지 합친 나 통째로 주는 것 보다 더 낭만적이라고 주장했다. 나의 가장 뜨거운 조각, 그게 바로 나의 Youth일 것이다. 그런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주게 되어 있다. 가장 뜨거운 순간에 말이다. 

주인공의 엄마가 병상에 누워서 주인공에게 하는 독백이 있다. 주인공이 유치원생일때, 그를 잃어버린 줄 알고 한참을 찾아다녔는데 멀리서 주인공을 발견했다. 주인공은 두발쯤 걷다 자꾸만 멈춰 서서 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를 일일이 들여다 보고 관찰하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는데 그 엄마는 화가 나는게 아니라 무서웠다고 했다. 주인공이 그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가 걷고 싶은 길을 그의 속도로 걷는게, 그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섭섭하고 무서웠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얼마전에 비슷한 얘기를 했다. 엄마는 내 또래의 엄마에 비해 우리들의 삶에 크게 간섭하지 않는 엄마였다. 무관심은 아니었지만 방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야할까. 엄마는 자기 생각에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간섭하기 시작하면, 자식은 아주 잘 해봐야 나 정도 되는 인간이 되는 거라고 했다. 더 멋지게, 더 크게 될 수도 있지만 (망하는 방향도 물론 있겠지만...) 개입하는 순간 한계가 생기는 거라고. 엄마가 정말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지 의심이 가지만 그렇다고 말해주니 좋았다.

그 여름, 나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돌았고, 사로잡혔다.

나는 이 문장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미쳐 돌아서 사로잡힌 젊은이들의 이야기. 사실 연애는, 특히 지지고 볶는 20대의 연애는 나랑은 이제 상관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어쩐지 한 여름에는 이런 이야기에 빠져도 괜찮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맛의 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