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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paris_루브르 박물관 (1)

7년 만에 다시 만난, 감격의 루브르

by sseozi

기어코 여길 다시 오게 되다니, 홀로 여행하는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차분한 표정을 띄운 얼굴 밑에서, 무언가 보글거렸다. 심장에서도 무언가 보글거렸다.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았는데, 이미 마음이 감격과 감탄과 감개무량으로 들끓었다. 와 본 곳이지만, 눈길 닿는 곳곳마다 초면인 기분이다. 루브르, 우리는 언제쯤 친해질 수 있을까. 오늘이 지나면 널 안다고 말할 정도는 될 수 있을까.


단체 관광객이 많이 빠져나갔다고는 하나, 그래도 루브르는 루브르였다. 어딜 가도 인파로 북적였다. 박물관 규모도 방대하고 길도 복잡하다. 긴장 풀린 채로 마음 편히 다닐 여유가 없었다. 행여나 일행을 놓칠세라 가이드의 뒤를 새끼 오리처럼 종종거리며 따라갔다.


함무라비 법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들로 관람을 시작했다. 프랑스에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던 함무라비 법전 석상과 길가메시(추정) 석상을 보았다. 함무라비 법전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검고 매끈한 돌에 쐐기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는데, 3천 년도 더 된 유물이 광날 정도로 매끈해서 신기했다.



사자를 압도하는 영웅(길가메시로 추정)
날개가 달리고 사람의 머리를 한 황소의 조각상


5m가 넘는 거대한 석상은 건물에 조각한 것을 벽 채 뜯어온 형태였는데, 이걸 뜯어올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오리엔트의 유물들을 관람하다 보면, 창문 너머로 조각상이 늘어선 중정이 보였다. 유리 천장을 통해 은은한 자연광이 비치는 가운데, 짙은 초록의 관목 사이사이 역동적인 인물상이 서 있었다. 작품으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공간 자체를 조망하며 비워내는 절제가 두드러졌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우아했다. 파리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가장 좋았던 장소 중 하나다.





살면서 조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이 조각관을 본 후부터 조각과 나 사이엔 ‘오늘부터 1일’이라는 설렘이 들어섰다. 회화와는 다른 느낌으로 찰나를 잡아내는 그 묵직함이, 꼼짝도 하지 않는 물성에서 느껴지는 단호한 역동감이 정말 감명 깊었다. 와, 이게 조각이구나. 조각을 향한 경이는 이후 로댕 미술관에서 정점을 찍는다.


즉흥 연주자(Grape-picker Improvising on Comic Theme, Francisque Joseph Duret)


이동 중에 우연히 인생작을 마주쳤다. 수많은 작품을 계속 보다 보니 작가와 작품명을 일일이 기억할 엄두가 안 났는데, 이 조각은 꼭 기억하고 싶어서 작품명을 찍어왔다. 바로 프랑시스크 조제프 뒤레의 ‘즉흥 연주자(Grape-picker Improvising on Comic Theme, Francisque Joseph Duret)’다. 가이드도 설명 없이 지나치는 작품이었는데, 무심코 곁을 스쳐 지나다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서 멈칫한 것이다.

나의 루브르 최애

고상하고 위엄 넘치는 조각들 속에 시선을 사로잡는 나른한 똘끼라고 해야 할까. 후줄근한 트렁크만 걸친 차림에 치렁한 머리칼이 어딘가 예수님을 닮은 생김새인데 표정이나 제스처는 노홍철 느낌의 조각상이 나를 붙잡았다. 포도주를 양껏 마신 듯 풀린 눈과 헤 벌린 입, 당장이라도 말을 건넬 것 같은 자세. 어이가 없어 웃기면서도 왠지 이 조각상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기념품샵에 피규어가 있었다면 안 사고 못 배겼을 텐데. 나만 아저씨를 발견했나 보다. 당신을 나의 루브르 원픽으로 임명합니다, 땅땅땅.


델프트 도자기 화병. 이 독특하고 키 큰 도자기의 용도는 꽃꽂이.

하늘이 그려진 천장화
꽃다발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화려한 천장화
어느 방이든 넋 놓고 바라보게 되는 화려한 천장화와 몰딩 장식

프랑스 왕실의 보석이 전시되어 있는 곳
프랑스 왕실의 달걀 그릇. 내 눈엔 프랑스풍 소주잔




인기 초절정의 리자 언니 공연 실황,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모나리자 옆에 전시된 그림들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지다. 옆 그림에는 사람들이 관심없는 틈을 타 여유롭게 구경했다.

리자 언니 공연 실황





가운데 할머니는 거의 사진이라고 해도 될 정도


같은 주제가 예술 사조마다 닮은 꼴인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걸 보는 것도 즐거웠다. 엄마와 어린 아들을 그린 두 작품이 그 예다. 아기 예수에게 팔을 뻗은 성모 마리아 그림과 큐피트에게 팔을 뻗은 비너스 그림. 그림을 담은 액자들도 어마무시하게 정교하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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