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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paris_여행 시작부터 파업인가요

루브르 박물관 입성하기 쉽지 않네

by sseozi

첫 일정은 바로바로 대망의 루브르 박물관이다.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신청해 둔 루브르 박물관 투어가 오전 8시 50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샤틀레 레알(Chatelet les Halles)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20240531_093307.jpg 샤틀레 레알역의 스타벅스, 빵 구성이 아예 다르다.


전철역 지하상가를 지나는 길에 테이크아웃 전문 스타벅스를 마주쳤다. 아는 곳이 나타난 게 어찌나 반갑던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과채 음료 하나 구입해서 신나게 루브르를 향해 걸어갔다.


날씨가 꽤 꾸물꾸물한 것이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지만 우산 쓰는 사람이 없었다. 파리지앵의 쿨함에 동화되어 나도 마치 비가 내리지 않는 것처럼 우산 없이 걸었다. 얼빠진 얼굴을 하면 소매치기의 대상이 될까 봐 최대한 별일 아닌 것 같은 표정을 하려 애썼다. 중간중간 구글 지도를 확인할 땐 건물 벽에 붙어 휴대폰을 살짝 꺼내서 보았다. 어우,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소매치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꾹 참았던, 한 걸음 한 걸음 긴장 속에 걸었던 첫 파리 거리의 추억이다.


20240531_095753.jpg 루브르 박물관 안마당. 사진에는 그 북적거림이 미처 다 담기지 않는다.

ㅁ자로 들어선 루브르박물관의 한 건물을 통과해 안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세상에나 유리 피라미드 광장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벙벙하게 사람들을 헤치며 집합 장소를 찾아 헤매는데, 가이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금세 나를 찾아냈다. 투어에 함께할 사람은 10명이 좀 넘었다. 나눠준 통신기에 이어폰을 꽂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입장 대기 줄로 이동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20240531_101637.jpg 루브르의 골댕이


루브르박물관이 오늘 파업 예정이란다. 네? 갓 파리에 왔는데 지하철도 파업이고 버스도 파업이고 루브르박물관까지 파업이라고요?! 이것은 마치 경복궁이 파업하는 것과 같은 상황 아닌가. 지극히 좁은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종종 있는 일이고, 현재 파업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내부 회의가 진행 중이며, 보통 10시에서 10시 반쯤 파업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다. 그때까지 입장 대기 줄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며, 결국 파업 결정이 나게 된다면 아쉽지만 투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말도 안 돼!


절망과 불안이 마구 몰려드는 와중에 꾸물꾸물하던 하늘에서 기어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비행기에서 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비 오는 파리에서의 한 장면이 유난히 마음에 남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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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왈 : 비가 오는 파리가 훨씬 낭만적이거든요.

남주 왈 : 네, 훨씬 아름답죠.

지연 왈 : 네, 제가 지금 그 아름다운 파리 한복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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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이 없다면 처량한 기분이 들었을 정도의 비가 내렸다. 하지만 나는 만반의 준비로 우산을 챙겨왔지, 후후.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면 다른 날 오면 되지. 아직 날짜는 많이 남아 있으니까.

여행 시작부터 산뜻한 기분을 잃지 않으려 긍정적인 말을 되뇌며 박물관 안마당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대기 인파 속에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인 유리 피라미드가 빼꼼 솟아 있었다. 유리 피라미드와 광장을 둘러싼 멋진 건물을 오래오래 눈에 담으며 불안을 가라앉혔다.


10시 30분쯤 되자 광장을 가득 메우던 단체 관광객 중에 관람을 포기하고 빠져나가는 무리가 생겼다. 우리의 가이드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박물관 청소 직원을 통해 내부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다. 회의가 좀 길어지는 것 같다며 11시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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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져서 인근의 다른 관광지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결국 파업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길디길던 입장 대기 줄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너무나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함께 투어할 뻔했던 동행들과 가이드와 인사를 나눴다.


각자 갈 길을 향해 흩어지는 군중 속으로 몇 발짝 걸어들어갔으려나. 갑자기 가이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파업이 취소되어 입장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부리나케 입장 대기줄을 향해 달렸고 오전 11시를 약간 넘긴 시간에 루브르 박물관 안으로 드디어 입성할 수 있었다.



20240531_111954.jpg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내부


오히려 길고 불확실한 기다림을 버티지 못하고 관람을 포기한 단체 관광객이 많아서 평소보다 덜 붐비게 되었다는 인생사 새옹지마의 결말. 세상에, 이보다 기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큰맘 먹고 멀디먼 길을 날아온 여행에서 내 맘 같지 않은 일이 많은 것 같아 불안했는데, 그 마음을 훌훌 날려버리고 투어에 집중할 시간이 왔다.


분명 와 봤지만, 처음인 듯 모든 게 새롭고 경이로운 곳, 이 얼마 만의 루브르 박물관인지. 내 인생에 이 순간이 다시 오다니. 설렘으로 부푸는 마음을 고이 품고 공들여 관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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