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리 친구, 희원이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서로 끝없이 속을 보여주고 우당탕탕 성장해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함께한, 이젠 20년지기가 된 소중한 친구다. 요동치는 사춘기를 매일매일 함께 보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의 앞 두 글자를 따 ‘이히’와 ‘써지’라고 부른다.
이히와 써지는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은 사이다.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이히와 국문학을 전공한 써지, 3층 집에 3대가 모여 사는 세 남매 중 둘째 이히와 평범한 아파트촌에서 부모님과 동생이랑 사는 써지, 심지어 우리는 친구도 안 겹친다.
가장 달랐던 건 성적이었나보다. 학창 시절 성적에 연연하며 흔들리던 나와 달리, 희원이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관계와 적성과 미래를 깊이 있게 고민하며 나아가는 아이라는 걸 느꼈다. 성적을 떠보려 새침하게 삐죽대는 여느 친구들과 달랐다. 성적으로 친구를 판단하던 난 이히의 가치관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히를 통해 타인에게 기꺼이 마음 쓰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이 친구와 함께하며 그 편견 없고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에도 물들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이히를 붙잡고 영어 공부하자며 유치한 설교를 해대긴 했으나, 이것은 나의 한계이자 나름 친구를 아끼는 열일곱 써지의 마음이었달까.
대학에 간 이후에도 연애 이야기로 뜨끈뜨끈하게 불태우며 더욱 끈끈해졌다. 아주 그냥 바닥까지 솔직하게, 연애의 기승전결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그 지리한 과정을 주구장창 함께 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로 꺅꺅대는 게 진짜 재밌는 건데, 이젠 둘 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느라 연애 얘기할 일이 없어서 아쉽네그려, 허허.
쭈글쭈글한 취준생 시절에도 서로가 있어 큰 힘이었다. 진정으로 나를 응원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쭈구리같은 모습마저 가감 없이 보이며 고통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반복되는 취업 실패에 부모님 뵐 낯이 없어 쪼그라들던 마음에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큰 존재였던 희원이가 프랑스로 유학 간다고 했을 때 ‘멋지다, 잘됐다.’ 하면서도 어찌나 아쉽던지. 유학 중 프랑스에서 만난 분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심지어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을 땐 친구의 경사에 기쁘면서도, 가장 친한 친구를 지구 반대편에 뺏기는 것만 같아 어찌나 마음이 휑하던지. 거기다 혼자 외국에서 아기를 낳고 몸고생 마음고생하는 이야기를 들을 땐 어찌나 마음이 꽉 막히던지.
지금은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한국 나이로 11살, 9살, 7살 세 아이를 키우며 의연하게 자리 잡은 자랑스러운 내 친구 희원이다. 그리고 그 희원이네 집으로 간다! 희원아, 기다려라, 낮에는 파리 여행, 밤에는 수다다! 프랑스어 따위는 잊어버려. 귀에 피나게 수다 떨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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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히네 집은 파리에서 전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좡빌르뽕(Joinville-le-Pont)이라는 동네에 있다. 구글 지도 로드맵으로만 눈팅하던 친구네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친구와 세 아이가 달려 나와 반겨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에 온통 신발이 가득한 것이- 친구네 다섯 가족의 복닥복닥함이 느껴져서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눈을 반짝이는 친구의 아이들과 함께 집을 구경했다. 한국과 달리 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어 발에 닿는 단단하고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얼른 짐을 풀고 다니(희원이의 첫 아이 단용이를 부르는 나만의 애칭), 리나, 시온이 세 아이에게 간식거리들을 선물했다. 싸우지 말라고 모두 세 통씩 샀다. 왁자지껄하게 서로의 밀린 근황을 나누며 이히표 프랑스 가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히와 형부는 나의 엉성한 여행 계획을 귀 기울여 들으며 성심성의껏 조언을 더해 주었다. 현재 지하철이 파업 중이며, 파리의 일부 구간은 파업 시위로 교통체증이 심하며, 휴대폰을 그렇게 손에 들고 다니면 안 되고, 화장실을 미리미리 챙기며 생리현상을 조절해야 한다는 등 생각도 못 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아직 여행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희원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마음.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다. 프랑스는 신기하게도 밤 9시가 넘어서야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백야인가, 너무나 신기한 것! 바깥이 밝으니 긴 비행의 피로와 들뜬 마음이 한데 엉켜 왠지 자는 시간 같지가 않았다. 블라인드나 커튼만으론 밝은 밤을 가리기 어려워 창문 바깥에 여닫이문처럼 생긴 덧창을 닫고 잠을 청한다고 한다.
나의 프랑스 침실은 다니와 리나의 방이다. 그 방엔 꼬마 소녀들의 벙커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벙커 침대의 1층은 각자의 책상과 수납공간이고 2층은 핑크색의 작은 텐트가 쳐 있는 침대다. 아이들 각자의 소중한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책상을 보니 두 아이가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며 꽁냥꽁냥대기도 하고 투닥투닥하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귀여운 녀석들.
한 침대에 나의 잠자리가 마련되었다. 핑크색 미니 텐트 안으로 들어가, 앉으면 닿을 듯 가까운 천장을 바라보며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웠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에서 다정한 친구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머리맡에 있는 창문 너머로 저 멀리 전철이 지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프랑스에서의 첫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