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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이네 집, 좡빌르뽕Joinville-le-Pont

by sseozi
학교.jpg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nguyenthuyvy09


나의 파리 친구, 희원이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서로 끝없이 속을 보여주고 우당탕탕 성장해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함께한, 이젠 20년지기가 된 소중한 친구다. 요동치는 사춘기를 매일매일 함께 보냈다. 우리는 서로 이름의 앞 두 글자를 따 ‘이히’와 ‘써지’라고 부른다.


이히와 써지는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많은 사이다.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이히와 국문학을 전공한 써지, 3층 집에 3대가 모여 사는 세 남매 중 둘째 이히와 평범한 아파트촌에서 부모님과 동생이랑 사는 써지, 심지어 우리는 친구도 안 겹친다.


가장 달랐던 건 성적이었나보다. 학창 시절 성적에 연연하며 흔들리던 나와 달리, 희원이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관계와 적성과 미래를 깊이 있게 고민하며 나아가는 아이라는 걸 느꼈다. 성적을 떠보려 새침하게 삐죽대는 여느 친구들과 달랐다. 성적으로 친구를 판단하던 난 이히의 가치관에 큰 감명을 받았다.


이히를 통해 타인에게 기꺼이 마음 쓰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다. 이 친구와 함께하며 그 편견 없고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에도 물들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이히를 붙잡고 영어 공부하자며 유치한 설교를 해대긴 했으나, 이것은 나의 한계이자 나름 친구를 아끼는 열일곱 써지의 마음이었달까.


대학에 간 이후에도 연애 이야기로 뜨끈뜨끈하게 불태우며 더욱 끈끈해졌다. 아주 그냥 바닥까지 솔직하게, 연애의 기승전결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그 지리한 과정을 주구장창 함께 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로 꺅꺅대는 게 진짜 재밌는 건데, 이젠 둘 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느라 연애 얘기할 일이 없어서 아쉽네그려, 허허.


쭈글쭈글한 취준생 시절에도 서로가 있어 큰 힘이었다. 진정으로 나를 응원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쭈구리같은 모습마저 가감 없이 보이며 고통을 토로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반복되는 취업 실패에 부모님 뵐 낯이 없어 쪼그라들던 마음에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큰 존재였던 희원이가 프랑스로 유학 간다고 했을 때 ‘멋지다, 잘됐다.’ 하면서도 어찌나 아쉽던지. 유학 중 프랑스에서 만난 분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심지어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을 땐 친구의 경사에 기쁘면서도, 가장 친한 친구를 지구 반대편에 뺏기는 것만 같아 어찌나 마음이 휑하던지. 거기다 혼자 외국에서 아기를 낳고 몸고생 마음고생하는 이야기를 들을 땐 어찌나 마음이 꽉 막히던지.


지금은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한국 나이로 11살, 9살, 7살 세 아이를 키우며 의연하게 자리 잡은 자랑스러운 내 친구 희원이다. 그리고 그 희원이네 집으로 간다! 희원아, 기다려라, 낮에는 파리 여행, 밤에는 수다다! 프랑스어 따위는 잊어버려. 귀에 피나게 수다 떨어보자.

* * * * *


20240605_202903.jpg 친구네 동네길, 좡빌르뽕(Joinville-le-Pont)


이히네 집은 파리에서 전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좡빌르뽕(Joinville-le-Pont)이라는 동네에 있다. 구글 지도 로드맵으로만 눈팅하던 친구네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친구와 세 아이가 달려 나와 반겨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에 온통 신발이 가득한 것이- 친구네 다섯 가족의 복닥복닥함이 느껴져서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눈을 반짝이는 친구의 아이들과 함께 집을 구경했다. 한국과 달리 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어 발에 닿는 단단하고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얼른 짐을 풀고 다니(희원이의 첫 아이 단용이를 부르는 나만의 애칭), 리나, 시온이 세 아이에게 간식거리들을 선물했다. 싸우지 말라고 모두 세 통씩 샀다. 왁자지껄하게 서로의 밀린 근황을 나누며 이히표 프랑스 가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히와 형부는 나의 엉성한 여행 계획을 귀 기울여 들으며 성심성의껏 조언을 더해 주었다. 현재 지하철이 파업 중이며, 파리의 일부 구간은 파업 시위로 교통체증이 심하며, 휴대폰을 그렇게 손에 들고 다니면 안 되고, 화장실을 미리미리 챙기며 생리현상을 조절해야 한다는 등 생각도 못 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아직 여행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희원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은 마음.


어느덧 잘 시간이 되었다. 프랑스는 신기하게도 밤 9시가 넘어서야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백야인가, 너무나 신기한 것! 바깥이 밝으니 긴 비행의 피로와 들뜬 마음이 한데 엉켜 왠지 자는 시간 같지가 않았다. 블라인드나 커튼만으론 밝은 밤을 가리기 어려워 창문 바깥에 여닫이문처럼 생긴 덧창을 닫고 잠을 청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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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랑스 침실은 다니와 리나의 방이다. 그 방엔 꼬마 소녀들의 벙커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벙커 침대의 1층은 각자의 책상과 수납공간이고 2층은 핑크색의 작은 텐트가 쳐 있는 침대다. 아이들 각자의 소중한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책상을 보니 두 아이가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며 꽁냥꽁냥대기도 하고 투닥투닥하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귀여운 녀석들.


한 침대에 나의 잠자리가 마련되었다. 핑크색 미니 텐트 안으로 들어가, 앉으면 닿을 듯 가까운 천장을 바라보며 포근한 이불 속에 누웠다.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에서 다정한 친구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머리맡에 있는 창문 너머로 저 멀리 전철이 지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프랑스에서의 첫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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