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에서 센강을 건너면 바로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내일 갈 예정이니 지나가며 눈찜콩만 하고,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 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다음 정거장인 생 미셸 노트르담(Saint-Michel Notre-Dame) 역에서 내려 강을 따라 한 블록 걸어가면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이 나온다.
짙은 초록의 외관에 빨간 문, 황금색 간판이 달렸다. 딱 동네서점 크기에 평범해 보이는 곳이지만 이곳은 아주 특별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작가들의 단골 서점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작가들에게 무료로 책을 빌려주며,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영미권 작가들의 문학 살롱 역할을 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은 유명한 만큼 방문객도 많아 항상 대기 줄이 길다. 대기 줄을 관리하고 서점 내부에 머무는 인원을 통제하는 직원이 따로 있을 정도. 나온 사람만큼만 들어갈 수 있다. 서점을 줄 서서 들어간다니 진풍경이다. 15분 정도 기다린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서점 내부는 생각보다 깊었다. 좁은 통로로 쭈욱 안으로 들어갔다가 U자 모양으로 돌아 나오는 형태였는데, 통로는 천장까지 책으로 꽉 차 있었고, 책장마다 온통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플러리쉬와 블러트 서점의 아기자기한 프랑스 버전 같달까.
눈이 가는 모든 곳이 상상 속의 유럽 서점 그 자체여서 너무 설레고 신이 났다. 하지만 서점에서 소리 지를 순 없으니, 눈을 커다랗게 뜨고 콧구멍은 벌렁벌렁, 들숨 날숨 들썩이며 소리 죽여 흥분했다. 완벽하게 꿈꿔온 서점 그 자체인데, 내부는 촬영 금지라 너무너무 아쉬웠다. 사진을 찍지 못하는 만큼 더욱 찬찬히, 차근차근 책장을 구경하며 앞사람 뒤를 따라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갔다.
프랑스어로 된 책은 까막눈이라 읽을 수가 없으니, 책등만 구경만 해야 하나 싶었는데,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다행히 영어 원서가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영어로 된 펭귄 클래식 세계 문학전집의 하드커버 책들이 모여있는 책장을 발견했을 때, ‘여기다!’ 싶었다. 여러 작품 중 고심해서 최근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폭풍의 언덕>의 원서,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을 골라 들었다. 영국 작가가 쓴 책이니 영어 원서로 읽기에 딱이겠지. 굿즈 코너 앞에 잔뜩 쌓여 있던,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의 역사가 담긴 책도 구입했다.
서점 안쪽 깊숙한 곳에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있었는데, 직원만 가는 공간인 줄 알고 지나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서재가 꾸며져 있는 곳이며, 그곳이 이 서점의 백미라고 한다. 거기다 내부 사진을 촬영한 사람들도 생각보다 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만 말을 잘 들었나 보다. 이래저래 너무 아쉽지만 이 곳의 룰을 따라야지. 그래, 역시 파리는 한 번 더 와야겠다. 그땐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서점 2층도 꼭 가고, ‘텀블위드’라고 하는 서점 숙박도 체험하고, 옆에 있는 셰익스피어앤컴퍼니 카페도 가야지. 파리, 다시 와야겠네.
서점을 나오는 쪽에 에코백이 한가득 걸려있었다. 이번 파리 여행의 주목적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오래오래 오늘을 떠올릴 수 있게 ‘에코백을 여러 개 사겠다.’며 얼마나 벼르고 별러 왔던가. 이 에코백을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100년도 더 된 그 시절 파리의 무드가 나와 함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