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야고보상

특별한 의식, 새롭게 태어나다

by 북극곰

두 사람과 헤어진 뒤, 나는 글로리아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한걸음 내딛는 것도 힘겨웠다. 고개를 숙이고 성당을 향해 좁은 골목을 지나던 중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올라! 아란."


고개를 들자, 산티아고 길에서 종종 함께 웃으며 던 브라질청년 알렉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이제 막 산티아고에 도착한 듯 그의 커다란 배낭은 무겁게 늘어져 있었고 스페인 태양 아래 벌겋게 그을린 얼굴은 밀짚모자 아래에서 환히 드러났다.


"알렉스?"

"맞아. 나야.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기쁘네." 그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이야. 지금 막 도착한 거야?"


"응. 이제 막 도착했어. 원래는 더 일찍 도착했어야 했는데 내 무릎이 영 말을 안 들어서 좀 늦어졌지."


"그랬구나. 산티아고 입성을 축하해!!"

"고마워.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가워... "

"그런데.. "


알렉스는 잠시 뜸을 들이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란,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그 스페인 친구들은 어디 있어? 같이 산티아고를 끝낸 거 아니었어?"


애써 웃음 짓고 있어도 빨갛게 충혈된 눈은 속일 수 없었다. 그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두 사람과의 이별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혹시라도 내 이야기가 알렉스의 기쁨에 짐이 될까 그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키캐랑 크리스티앙 말하는 거지? 함께 산티아고에 도착했어. 그리고 그들은 오늘 아침 발렌시아로 떠났어."


알렉스는 한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그도 말을 아끼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화제를 돌렸다.


"나는 지금 성당 가는 길이야. 성당 앞에서 글로리아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알렉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좋아. 너랑 걷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다. 그렇지?"


그와 함께 걷기 시작하자, 길 위의 소음과 태양 아래의 피로가 조금은 멀어진 기분이었다. 알렉스는 걸으면서 지나온 여정과 만난 순례자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눈은 총명하게 빛났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생각났다.


"아란, 너도 그런 적 있어?"


알렉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이 말은 했었어야 했는데 하면서 후회했던 적 있어? 아니면 이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던 적은? 그런 후회말이야."


그의 질문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키캐와 크리스티앙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들과 나누지 못한 말들, 하지 못했던 고백과 떠난 뒤에야 밀려온 후회들이 뒤엉켜있었다.


'팔라스데이에서 그렇게 가지 말 걸, 산티아고를 같이 끝냈어야 했는데... 고맙다는 말, 수천 번은 더 말했어야 했는데.. '


속으로 아쉬움을 되뇌며 나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때 있지.”


알렉스는 내 대답을 곱씹듯 잠시 말없이 서 있었다. 눈물이 가득 차오른 내 얼굴을 보다 이내 천천히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안아줄까?"


그의 말에 나는 말없이 그에게 다가갔고 그의 품에 안기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산티아고의 좁은 골목 한가운데서 그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알렉스, 그들이 떠났어. 다들 나만 두고 떠나가는 것 같아. 나는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어."

"괜찮아 울어도 돼."


알렉스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며 묵묵히 내 슬픔을 받아주었다. 한참을 울다 보니 마음이 진정되면서 눈물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작게 웃어 보였다.


"미안해. 산티아고 입성을 나 때문에 다 망쳤네."


알렉스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너의 눈물이 내 마음을 더 깨끗하게 비워준 기분이야. 특별한 산티아고 완주 선물인데?"


그의 말에 마음이 한 가벼워졌다. 우리는 성당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성당의 첨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는 글로리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당 앞에 도착했을 때, 글로리아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글로리아! 우연히 알렉스를 만났지 뭐야. 우리 같이 야고보상 보러 가자."

"좋아." 글로리아가 대답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후 성야고보 상을 안는 순간은 내면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상징적인 의식이다. 나는 성야고보상을 세 번 안았다.

한 번은 키캐, 한 번은 크리스티앙,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그 세 번의 포옹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두 사람과 함께 나누었던 모든 이야기와 감정들이 서로 얽혀 하나가 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성 야고보 상을 품에 안으니 지나온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각기 다른 모습의 풍경과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음을 깨달았다고 마음속이 편안해지고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산티아고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지도 몰라."


그 말이 뇌리를 스쳤다.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이 길이 나에게 주는 가르침에 귀 기울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여정 속에서 용기를 갖고 진정한 나를 찾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걸었던 이 길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발판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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