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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Dec 13. 2017

여행의 낭만이 일상이 된다는 건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건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2년 전 처음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동과 환상이 너무나 컸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던 두근대는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순간마다 벅차오르던 감정들을 비워내기 시작하고 서서히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마치 연애 초기 그렇게 뜨겁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하게 되는 느낌과도 비슷할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회사에서 죽어라 일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난 바르셀로나에 오자마자 매일 밤 어학원에서 만난 풋풋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정신없이 첫 두세 달을 보냈다. 물론 밤늦게 집에 돌아와 혼자 방문을 열고 불을 켤 때나 겨우 친해졌던 친구들이 방학이 끝나고 하나둘씩 돌아갈 때면 왠지 모를 허탈함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오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지금 나는 누구나가 부러워할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거라고 몇 번씩 되뇌곤 했다.


그렇게 여행 중 느꼈던 설렘과 두근거림은 어느 순간 소소한 하루의 일상이 되었다. 가끔 조깅하러 나갈 때면 황홀하게 올려다보곤 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이제는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게 되고 길 모퉁이 악사의 기타 연주도, 땀을 흥건히 젖히며 추고 있는 플라멩코 댄서들을 바라보면서도 별 다른 감흥 없이 폰만 만지작거렸다.


다 좋다 너무 행복하다.

꿈에 그리던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데 당연하다.

하지만 정작 난 그렇지 못했다.


그때 난 여행에서 느꼈던 낭만과 바로 눈앞에 놓인 현실 중간 즈음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초겨울 차가운 냉기가 올라오는 오래된 아파트의 돌벽에 기대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과거를 향한 미련과 후회의 감정을 양손에 쥔 채 어느 것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나와 함께 바르셀로나 여행을 했던 친구는 영국에서 공부하다가 독일로 옮겨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그 날 새벽 나는 결정했다. 스페인에서 독일로 이사하기로.

2주 뒤 난 몇 박스 안 되는 단출한 짐들을 친구 집으로 부치고는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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