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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Jan 03. 2018

긴 머리 하늘거리는 코트를 입고 있던 엄마

하루는 노트북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데 우연히 얼추 이십 년은 된 듯 한 옛날 엄마 사진을 발견하였다. 사진 속 엄마는 정성스레 드라이한 긴 머리에 반짝이는 핸드백을 옆에 메고 하늘거리는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같이 살고 있던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는 졸업식 때문에 엄마가 독일에 왔을 때 친구네 가족과 시칠리아 섬으로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이다. 하루 종일 걸어서 지친 데다 감기 기운까지 있던 엄마가 걱정돼서 중심가를 한 바퀴 도는 2층 투어버스를 탔는데 가뜩이나 쌀쌀해진 날씨에 창문도 없이 오픈되어 있는 2층으로 드센 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옆에서 덜덜 떨고 있는 걸 본 엄마는 이내 하고 있던 스카프를 나한테 둘러줬다.

그때 앞에 앉아있던 친구가 뒤돌아 보다 찍어준 사진인데 사진 속 엄마는 스카프를 메어주던 손으로 나를 꽉 안고 있었고 난 익숙지 않은 엄마의 포옹에 쭈뼛대면서도 어느새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감기 기운이 더 심해져서 그만 몸살이 나버렸다.

얼마 전 인터넷에 누군가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은 짐을 정리하다가 찍은 사진을 올린 걸 본 적이 있다.

사진 아래엔 장난스럽게 '우리 할머니도 여자였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별 생각 없이 올린 사진일텐데도 이상하게 난 가슴 한 켠이 아릿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도 분명 예쁜 걸 보면 사고 싶어서 안달이 나던 때가 있었을 테고 또 아마도 뭔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꿈도 있었을 거다.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우리 가족을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엄마 자신을 위해 살았던 지난날 엄마의 싱그럽던 시간들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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