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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Jan 10. 2018

예민함과 섬세함, 그 한 끗 차

가끔 난 참 예민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어김없이 술을 마시며 쉬이 잠들지 못해서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한다.


예민한 사람은 살도 잘 안 찐다는데 그 와중에 또 난 밥은 참 잘 먹는다.

놀라운 건 정작 나 자신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언제 그걸 깨닫게 되었냐면 학교를 막 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그러고 보면 난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나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고 쉽게 내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물론 내가 대단한 평화주의자 이거나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넘쳐나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단지 싸우고 나서 이내 불편해져 버린 그 후의 시간들이 내가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결국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만다.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이 말을 들었을 때 기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예민하다는 건 뾰족한 칼날처럼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다가가거나 어울리기 힘든 성격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민하다’와 ‘섬세하다’는 사실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른다고.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나 자신도 견딜 만큼의 불편함을 지닌 예민함은 어찌 보면 섬세함과 같은 범주에 둘 수도 있지 않을까?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타인의 사소한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 혹은 주변에서 쉽게 놓치기 쉬운 작은 것들에 더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며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나도 한 번씩 늦은 밤 잠이 안와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불현듯 중간에 막힌 채 풀리지 않고 있던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황급히 핸드폰에 메모해 놓기도 한다. 너무 지나쳐서 주위 사람들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면 행여나 내 이 예민한 모습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숨기려고만 할 게 아니라 예민함이 가지고 있는 이런 섬세한 면면도 인정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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