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멍작가 Jan 17. 2018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낸 오래전 시트콤의 한 장면이다. 가장 웃음을 자아내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둘째 치더라도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흔하디 흔한 가족의 밥상 풍경이다.


신기하게도 우리 가족은 나만 빼고 모두 아침형 인간이다. 한국에 한 번씩 들어오면 주로 엄마 방에서 엄마와 같이 자곤 하는데 아침 6시가 되기 전부터 부엌에선 이미 그릇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방문 틈 사이로 들려오기 시작한다. 심지어 주말에도 7시만 되면 집안 여기저기에서 시끌벅적 말하는 게 침대에 누워있는 나한테도 선명하게 들린다. 어쩔 수 없이 잠이 반쯤 깬 채로 누워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때 어김없이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그러면 미처 듣지 못한 사람을 위해 이야기는 또 한 번 반복되고 금세 새로운 말들이 따라온다.

그리고는 화제가 (아주) 조금 바뀐다.

일일이 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대화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매일 아침이면 이렇게 시시하고 별거 아닌 이야기들을 신이 나서 얘기하고 또 그걸 서로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가족들. 새로울 것도 특별히 재미난 일도 없는 비슷한 하루를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이십 대 땐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왠지 불안했다. 마치 내 인생이 잘못되어가는 것 같아 끊임없이 뭔가 재미있고 신나는 걸 찾아 헤맸고 그러는 사이 지쳐버린 내 모습조차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남들이 볼 때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하다가도 더 화려하고 특별해 보이는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다 보면 이내 또 무기력해졌다.

세상일이란 게 참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원치 않았던 상처들에 아파하면서 웬만한 일엔 제법 무던해진 지금에서야 소소하게 여겨졌던 흔한 일상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나 보다.

너무 재미나게 행복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새롭고 다이내믹한 것만 쫓으며 아등바등 살거나 내 삶은 왜 이렇게 단조롭고 지루하기만 할까 자학하며 사는 것보단, 이렇게 특별한 일 없이 매일을 사소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한 요즈음이다.

이전 09화 예민함과 섬세함, 그 한 끗 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