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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작가 Jan 31. 2018

지금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면

초등학생 시절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탐구생활과 독후감 그리고 밀린 일기를 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리고 개학 날 원래보다 세 배는 뚱뚱해진 탐구생활을 품에 꽉 안고 자랑스레 학교에 갔다. 하지만 내가 상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엔 충분히 괜찮았던 내 탐구생활은 아예 책 한 권을 추가로 제작한 친구나 수수깡으로 멋들어지게 집 한 채를 만들어온 친구들 뒤편으로 항상 밀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씩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난 왜 이거밖에 못 하냐고 스스로를 날 서게 비난하고 깎아내리곤 하는 건.

작업하다가 바람도 쐴 겸 종종 들리는 곳은 서점이다. 일반 서점뿐 아니라 우연히 발견한 새로 생긴 중고서점에도 자주 가는데 그곳에 가면 금방 손님이 팔고 간 책들을 한번 쓱 훑어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다른 사람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몰래 염탐하면서 내가 읽은 책들이랑 비교해보기도 하고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책들 중 다시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기도 한다.

솔직히 요즘 서점에 가면 예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책을 보게 된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들과 서점 중앙에 떡하니 진열되어 있는 베스트셀러들, 그리고 저마다 재능이 넘쳐나는 작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내 책이 이들과 같은 장소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괜한 걱정도 든다. 그러고 나서 여태껏 열심히 준비해 온 원고들을 다시 읽어보면 모두 마우스로 긁어서 delete 키라도 누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일 때도 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프랑스 그림작가인 벵자맹 쇼의 인터뷰 글이 담긴 책을 읽게 되었다.



제가 다른 창작자들 작품에서 감동받는 지점은 기계 같은 완벽성이 아니라 인간적인 빈틈이거든요.
우리가 똑같지 않은 이유도 그 빈틈과 서투름에 있고요. 그걸 소중히 여겨야 해요.
만약 모두가 완벽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림이 전부 완벽하게 지루할 겁니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맞다, 그렇다.

여태껏 전혀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일했던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연필과 붓을 쥐고 노력해온 사람들의 그림이나 글과 객관적으로 비교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솔직히 비슷하게 흉내 낼 실력도 못 된다. 그렇지만 분명 나에게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다른 이의 재능을 탐하고 부러워할 시간에 완벽하진 않더라도 나만의 색을 찾아 나가는 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고 애쓰고 있는 나에게 나조차 그 정도론 어림없다고 냉정하게 돌아선다면 솔직히 내가 너무 짠하고 안쓰럽지 않을까.


슬그머니 너덜해진 작업노트를 꺼내 마지막 장 모퉁이에다 '참 잘했어요' 도장 대신 이렇게 적어주었다.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반드시 꼭 뭔가 이뤄야 행복해지는 건 아니니깐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 이야기를 온전히 했다면,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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