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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혼의작가 Sep 26. 2021

이직의 경험 (5) - 생존 중국어 익히기

맨땅에 헤딩하며 배운다.

 내가 한국인이었지만 중국 직원들이 한국어를 사용하기에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여기는 중국이니까 당연하다. 각 부서에서는 한국인의 통역일 지원해 줄 수 있는 조선족 들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족 직원의 경우 한국어를 구사하기는 하지만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의사 전달이 쉽지 않다. 그리고 항상 통역을 통해서만 업무 진행을 해야 한다면 주도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



 중국어를 배워야 했다. 영업부 내에서 필요한 것들은 일단 영어로 이야기 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중국어들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활동은 자연스럽게 가능하기는 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생존이 아닌 교감과 교류였다. 회사에 조선족 직원 및 영업팀의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업무 관련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1:1로 학원에서 중국어 과외를 받았다. 2009년도여서 중국 물가가 그리 높지 않았고, 중국의 소도시여서 과외비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중국에 살면서 그러한 점은 장점이었다. 내가 만약 한국보다 물가가 높은 해외 지역에 거주했다면 환경적응 및 생활비에 대한 걱정도 무척 해야 했을텐데 중국에서 그런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중국어를 빨리 배우고 싶었다. 그래야 더욱 소통하고 빨리 적응도 할 수 있을테니까. 주말에 이발을 하러 가야했다. 한국 직원들의 경우 보통 조선족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갔다. 그곳에 가면 편하니까. 중국에 온 지 1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아는 중국어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중국 미용실로 갔다. 말을 못하면 어떤가? 바디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어디서 그런 용감한 정신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용실에 온 나를 직원은 반겨주었다. 환영의 인사를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 나는 알아 듣지 못했다. 일단 몸짓으로 자리로 앉으라 하기에 앉았다. 또 중국어로 내게 물었다. 아마도 '머리를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하고 물었던 것 같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손짓으로 엄지와 검지를 살짝 벌려서 머리를 조금만 잘라달라는 (다듬어 달라는) 의사 표현을 했다. 미용사의 표정은 이제 무언가를 확실하게 이해한 듯 밝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미용사의 가위가 나의 앞머리를 댕강하고 자르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태는 벌어지고 말았다. 머리를 짧게 잘라 달라고 이해했나 보다. 사정없이 잘려져간 앞머리. 그 높이에 맞추어 머리가 전체적으로 잘려졌다. 완전 중국 현지인이 된 듯, 스타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스타일이었다. 미용사는 이발을 마치고, 헤어 스타일이 괜찮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중국어를 하지 못하니 'OK'라고 말할 수 밖에. 숙소에 돌아오고 나니 나의 헤어스타일을 보자마자 모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보아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주말에 중국어 과외를 해주는 학원에 찾아갔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안되는 중국어로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해당 시나리오를 중국어로 알려달라고 하여서 MP3로 녹음을 했다.


"미용사: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머리를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나: 옆머리른 조금 짧게, 잘라시고, 나머지는 조금만 다듬어 주세요"





이런식으로 미용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녹음하여 계속 연습하고 반복했다. 한달이 지난 후, 다시 그 미용실을 찾아갔고, 부족한 발음이었지만, 이제 사람다운 모습으로 이발에 성공했다. 그런식으로 중국어를 많이 배웠다. 1:1 과외를 받으면 선생님보다 내가 더 말을 많이 했다. 평소에 궁금하거나 수업받다가 생각나는 상황들이 있으면 질문을 하고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게 언어 능력 향상에 더 맞다. 말을 많이 듣고 하고 써야지 느는 것인데, 듣기만 해서는 완벽하게 내것이 되지 않는다.



 중국어가 아직 유창하지 못하고 현지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이동시에는 택시를 타는 일이 많았다. 나중에는 버스를 타고 다녔고, 이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다녔다. 택시를 타다 보면 중국인 운전사가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돌아간다.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호구(?) 고객을 만난 셈이다. 지역 지리도 잘 알지 못했을때는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자주 다니는 길인데 엉뚱한 길로 가면 이길이 지름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향에 대한 중국어를 또 열심히 익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사가 엉뚱한 길로 가려하면 그 내용을 중국어로 상세히 말하지는 못해도 직진, 후진 , 왼쪽, 오른쪽을 말하며 억울하게 비용을 더 지불 하는 일은 방지하게 되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복귀할때는 건물 이름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한동안은 조선 족 직원이 적어준 회사 주소 종이를 가지고 다녔다. 내가 중국어로 발음한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러한 경우에는 쪽지를 보여주며 이곳으로 가달라고 했다. 쪽지에 적힌 중국어를 보고 나면, 나의 발음이 이상해서 못알 들었다며, 이렇게 해야 알아 듣는다고 발음을 해주곤 했다. 그렇게 생활속에서 부딪히며 조금씩 중국어를 익혀 갔다.


 중국어를 하나도 알고 못하고 오긴 왔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다 보니 다 방법이 있었다. 그러한 정신을 많이 배운 것 같다. 두렵고 떨리더라도 일단 발을 떼고 나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돌아가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



 만약 당신이 낯선 환경, 그리고 해외에 체류 및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아니면 갈등하고 있다면 일단 무조건 떠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힘들고 ,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지만 인생이 더욱 다이나믹해지고 자신이 단단해 지리라고 의심없이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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