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과 가을사이 나와 남편은 양손에 이민백과 배낭을 메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육군 최초로 학비와 물가가 비싼 뉴욕대학원으로 위탁을 받았다.
어렸고 젊었던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컸던 것 같다. 첫 학기 학업의 부담감이 컸지만 장학금과 한국 육군의 지원을 받는 우리는, 장학금을 개인의 비용으로 써도 된다는 지침 덕분에, 1학기가 마친 후 미국 서부와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글로벌금융위기로 달러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받는 월급을 달러로 환전하면 반도 안되는 가격이라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인 이민자 부모 밑에서 자라는 2세들의 미술레슨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곤 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고 여러 나라가 혼합된 화려함과 자연의 풍요로움이 공존한 뉴욕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매력적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