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내리는 비가 반갑다. 비가 넉넉히 내려주면, 앞으로 며칠은 텃밭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비가 오는 간격만 적당하다면, 일부러 내가 나서서 물을 줄 필요도 없다.
비가 오고 며칠이 지나 땅이 바짝 말라 있으면, 마당의 수도꼭지를 틀고 호스를 잡고 텃밭에 물을 뿌렸다. 텃밭에 물을 뿌리는 원칙이 있다. 넉넉하게 줄 것. 땅이 조금 젖는 정도로 주면 안 된다. 질척하게, 물이 곳곳에 잠깐 고이다 스며들 정도로 주어야 한다. 뿌리가 뻗은 땅 속까지 물이 스며들려면 그렇게 주어야 한다. 넓진 않아도 넉넉하게 만든 텃밭에 물을 주는 일은,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는 작업이다. 오전 출근 시간에 쫓겨 서둘러 잠깐 물을 뿌리는 일은, 흙 속 수분의 증발을 잠시 지연시킬 뿐이다. 그래도, 잠시라도 텃밭에 물을 휙 뿌리고 나면 작물들의 표정은 조금 달라진다. 대책 없이 시들고 말라가던 것들이 그나마 생기를 유지한 채 기운을 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비를 만나면, 텃밭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이 열심을 다해 물을 뿌리는 것과, 잠깐이라도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은 정말 다르다. 전자가 작물들이 시들지 않고 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정성이라면, 후자는 키를 쑥쑥 키우고 불쑥 솟아나듯 싹을 내며, 생생한 꽃과 열매를 맺게 하는 성장촉진제 같다. 같은 물 주기에 이런 차이를 느끼다 보면, 인간인 나로서는 서운함과 질투가 생긴다. 질투를 느끼다가도, 내가 물을 주는 방식과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현상에 다른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지속적이고 리듬 있게 이파리를 두드리는 물방울이 작물들을 자극하는 것일까? 너른 땅 골고루, 은근하고 지속적으로 땅을 적시는 빗물이 뿌리를 자극하는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자연의 현상과 땅에 뿌리내린 생명 사이에서 제삼자가 되어버린 나는, 잠시 그런 고민들을 이어가다 이내 포기한다. 내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알게 된 들 나는 저들 사이에서 영원한 삼자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자연은 아직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고, 인간은 여전히 무지하다.
첫 열매들이 열리고 커져간다. 고추는 꽃이 피더니 곳곳에서 첫 열매들이 초록으로 매달리고, 가지도 진보랏빛 열매가 매달려 커지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다발로 열린 토마토들은 이제 붉게 익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열매 맺는 시기가 좀 더딘가 싶어 계산해보니 모종을 심은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과 비교해보면 조금 늦은 것도 사실이다. 모종들의 성장도 조금 더딘 듯하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모종을 심을 시기인 4월에 유난히 많이 보이던 흰나비, 노랑나비들이 올해엔 5월이 끝나갈 즈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낮에는 더웠지만, 일교차가 커서 해가 지면 조금 추위를 느끼는 정도였다. 6월이 되어도 생각보다 부쩍 더워지지 않았다. 5월이면 온 동네를 낮고 짙게 흐르던 해무도 올해는 없었다.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력 3월이 되면 추위 피해 없이 안전하게 모종을 심어도 된다는 지식만 가지고 해마다 모종을 심는다. 올해도 그렇게 심어 모종이 추위에 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텃밭의 분위기가 작년과는 좀 다르다. 뭔가 은근하게 더디고 느린 느낌이 있다. 이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 때문에 겪는 비정상적인 변화인지, 아니면 음력이나 양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어떤 주기적 흐름 같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그런 변화 안에서 속수무책일 뿐이라는 점이다. 수동적이자 제삼자적 존재로 주어진 상황에 할 수 있는 소소한 대처만이 가능하다. 흰나비 노랑나비들도 본능의 감각으로 제가 다니기 좋을 시기를 찾아 팔랑거리는데, 자연의 감각을 잃어버린 인간은 어째서 작년 같지 않은가 노심초사만 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는 반문의 여지가 없다. 진료실에 앉아, 환자의 당장의 아픈 곳, 빠른 시간 안에 고쳐야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의사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환자는 편안한 마음을 얻어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선다. 그것이 진료실에 앉아 있는 의사들의 보람이다. 그러나 만성적인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달라진다. 만성으로 돌아선 지병, 노화로 인해 안게 되는 문제들을 현대의학은 나름의 방법으로 고민하고 관리한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과하거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약물이나 기타 여러 치료법을 도입한다. 그렇게 꾸준하게 관리를 받은 환자의 모습은 어떤 경우엔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의학적 관리를 받아 활기와 건강을 회복했다기보다는, 임시방편으로 구멍을 메우고 다급하게 축대를 쌓아 버티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인체의 자연스러운 병태생리와 노화과정에 인간의 개입이 조화롭지 않아 보인다. 끊임없이 인간의 질병과 노화를 연구하고 치료방법을 모색하는 과정 위에 수많은 연구와 현재의 의료인들이 있다. 그러나, 역시 인간은 스스로의 자연성 앞에서도 결국 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작은 자괴감에 빠진다. 이성적 인간은 이렇게 모든 자연 앞에서 여전히 무지하고 무력한 존재이다.
비가 서서히 그쳐 간다. 바람이 뒤섞인 비 개인 후의 눅눅함이 걷어지면, 다시 내리는 햇살 아래에서 텃밭은 한 층 더 키가 자라 있을 것이다. 내가 목적하는 작물이든 잡초들이든, 넉넉하게 내린 비의 축복을 다 같이 누릴 것이다. 나는 당분간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느긋함을 누린다. 잠깐 텃밭을 바라보고, 이제 서서히 거둘 것이 있나 둘러보고, 키가 너무 자란 잡초는 뽑아주면서 다음 비를 기다릴 것이다. 점점 따가워지는 햇볕 아래, 텃밭의 생기는 싱그럽고 가득할 것이다. 마음을 쓰다가도, 마음이 편안하게 놓이는 종종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