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텃밭일기 04화

텃밭일기 #4, 20190607

by 전영웅

고구마를 심었다. 심는 일은 어렵지 않다. 순을 다발로 미리 사두어 뿌리가 살짝 자란 줄기를 물에 담가두었다. 줄기 다발을 꺼내 미리 준비한 텃밭 자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심었다. 호미로 땅을 적당한 깊이로 긁듯 판 뒤에 줄기를 넣고 흙을 덮었다. 사 온 줄기를 모두 심으려니 모종 간격이 좀 좁긴 했지만, 줄지어 가지런히 공간을 채운 고구마 순은 보기에 만족스러웠다. 모종을 심고 물을 넉넉히 뿌려 주었다. 토요일 늦은 오후, 기우는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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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텃밭에 여러 가지 작물들을 심어 보았다. 잘 되는 작물이 있었고, 잘 되지 않는 작물이 있었다. 사실 이런 구분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텃밭을 다루는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잘 안 되는 작물을 들자면, 주로 뿌리 부분을 활용하는 작물들이었다. 마늘, 감자, 무, 양파 등등의 작물들은 나의 텃밭에서 그리 잘 크지 못했다. 특히 마늘은 제대로 활용해 볼 수도 없을 만큼 작았다. 무는 겨울에 커진 것 그대로 하나 뽑아 매운탕에 썰어 넣고, 감자는 작아서 손은 좀 귀찮아도 껍질을 벗기거나 그대로 삶아 먹을 수 있었다. 양파도 작으면 작은 대로 겨울을 난 것을 창고에 두었다가 파스타 소스 만들 때, 하나 통째로 다져서 넣으면 그만이었다. 마늘은 그마저도 불가능할 정도였다. 뿌리채소는 우리 텃밭에서는 안되는구나 단념했었다.


2년 전엔가, 고추와 가지만 한 가득인 텃밭에 다른 걸 좀 심어보자고 아내가 제안했다. 고구마를 심어보자는 말에 나는 ‘뿌리채소는 잘 안 된다’고 미리 말해두고는 텃밭 한편에 고구마 순을 몇 개 구해서 심어보았다. 순은 이파리를 내면서 무성하게 뻗었지만, 나는 땅 속을 확인할 수 없으니 이파리만 많아지나 보다 했었다. 고구마 순이나 먹어야 하나 했다. 그런데, 초겨울이 가까운 어느 날 고구마 덤불을 걷어내며 땅을 파 보았더니 주먹만 한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었다. 횡재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 녀석까지 가세해서 열심히 고구마를 캐서 모았다. 10 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듯한 양이었다. 뿌리를 주로 사용하는 다른 작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잘 자라지 않는데, 고구마는 어째서 이리 잘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의문은 의문이고, 우리는 그때부터 해마다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를 심을 텃밭 자리도 좀 더 넓게 만들었다.


고구마는 해마다 제일 기대되는 작물이었다. 한 자리에 계속 심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 연작피해가 발생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그것도 기우였다. 해마다 고구마는 기대 이상으로 충실하고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었다. 세 평 남짓 될까 하는 자리에서 20 킬로그램 이상의 고구마가 나왔다. 반려견의 배설물과 잡초를 섞어 삭힌 퇴비를 뿌려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해마다 6월이면 고구마를 심어 11월 말에 수확하고, 그 자리에 양파를 심어 다음 해 5월에 수확했다. 한 자리에서 고구마는 너무 잘 자라는데, 양파는 그리 잘 자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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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 시간이 날 때마다 고랑 하나 또는 두 개씩, 잡초를 뽑았다. 쪼그리고 앉아서, 제주에서 골갱이로 부르는 날이 가느다란 호미를 들고 땅에 단단히 박은 뿌리까지 잡초들을 거두었다. 그렇게 두어 주를 작업하니 텃밭 전체의 잡초를 거둘 수 있었다. 마음은 든든했다. 그러나, 그것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지막 잡초를 뽑아내고 든든한 마음에 일어나 처음 시작한 자리를 보았더니, 벌써 줄기를 바짝 세우고 존재감을 발휘하는 잡초들이 보였다. 제주에서는 잡초들이 일 년 내내 자란다. 날이 더울 때는 조금만 방심해도 잡초들이 허리 높이로 자라 공간을 뒤덮는다. 작물들보다 빨리 그리고 무성하게 자라 작물들을 질식시킨다. 그런 녀석들을 수시로 제거해 주어야 하는 일은 마당이나 텃밭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필수 작업이다. 잔디마당이 예쁘던 집이 어느 날 콘크리트로 마당을 덮어버린다. 예전엔 그 변화에 경악했지만, 제주에서 텃밭이나 마당을 관리해보면 그 마음을 절절히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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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에 접어들자 앵두가 붉게 익었다. 앵두는 올해 유난하게 꽃이 피더니 열매도 많이 열었다. 살구는 아직 익지 않았다. 매실은 작년에 많이 열리더니 올해는 꽃도 열매도 많이 열리지 않았다. 해거름을 하는 듯했다. 주말 저녁 식사 거리로 고랑 어딘가에 숨어 자라는 고수 몇 뿌리를 캤다. 고수를 찾다 본 생강 심은 자리에서 생강순 하나가 덮어 둔 덤불 위로 고개를 내민 모습을 발견했다. 반가웠다. 생강과 고구마를 심은 자리와 마당 사이에 민트들이 덤불을 이루었다. 빼곡한 민트 줄기들을 네댓 개씩 잡아 뽑아냈다. 민트들을 다 뽑아내니 줄기만 남은 앙상한 귤나무가 드러났다. 지난해 비실거리던 녀석의 꽃을 전부 솎아주고 좀 쉬게 하면 다시 살아날까 했는데, 결국 명을 다했다. 죽은 녀석을 뿌리째 캐내야 한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 마당에서 죽어나간 귤나무가 녀석으로 4 그루째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마당에서 잘 되지 않는 것은 뿌리작물뿐만 아니라, 귤나무도 그러했다. 하나 남은 잎이 무성한 귤나무 한 그루가 좀 더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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