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48. 20190927

by 전영웅

엄마가 아침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엄마는 밤새 선잠을 청하며 하늘을 날았고, 너는 그곳에서 다시 혼자가 되어 잠을 잤다. 아빠 역시, 제주에서 한동안 그러했듯 혼자 잠을 자고 일어나 우리 가족들의 어젯밤을 되뇌었다. 엄마는 서울 할아버지 집으로 갔을 것이고, 너는 학교에 가고 아빠는 여느 때와 같이 책을 읽다가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쓴다.


영상통화에서 본 너의 담담함은 아마도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주변 사람들의 눈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마음 한 켠에 생기는 허전함과 허탈을 조금 짐작할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그 아무렇지 않음이 너도 이제 자라면서 조금씩 준비해야 하는 성장의 한 과정임을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는 집에서 빨리 나오고 싶었다. 물론 너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집 밖의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가출을 실행할 만한 깜냥도 없었다. 그래도 좀 이르게 집을 나왔다 생각하는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야간자습을 하느라 집에 가면 밤 11시였고, 아침은 7시 전에 집에서 나오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3년 내내 기숙사 생활을 했다. 집에는 아빠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집에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크기로 마음을 허전하게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오전에 잠깐 집에 와서 아직 잠들어 있는 가족들 깨지 않게 좀 더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은 거실 밖에 없었다. 편하게 머무를 수 없다는 기분은 마음을 조금 불안하게 했다. 사실 아빠에게 어릴 적 집은, 그런 공간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길지만, 이른 집 밖 생활은 아빠의 마음을 둘 곳 없이 만들었다. 전주 할아버지 댁에 가면 아파트 거실 한가운데 창가로 널찍한 원목 책상이 하나 있다. 그게, 아빠 고등학생 때, 대학생이 되고 하면 거기서 공부하라고 할아버지가 사 주신 책상이다. 그런데, 그 책상에 앉아했던 유일한 일은, 수능시험을 치른 다음날 했던 가채점이다.


네가 한 학기 더 그곳에서 공부하겠다 할 때, 아빠는 긍정 반 걱정 반이었다. 아빠의 어릴 적 생각이 나서였다. 네가 집에 발을 붙이고 마음을 둔다면 안정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텐데 생각했다. 동시에, 너의 공부문제로 가족이 상의를 한 만큼 너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기에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젠 아빠도 너를 먼 곳에 오래 놓아두고는 조금 힘들 것 같다. 초점이 네가 아닌 아빠가 되어서 조금 미안하다만, 떨어져 지내는 건 당분간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네가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고 생활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네가 일단은 집으로 와서 원점에서 다시 고민을 해야 한다 아빠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너의 이번 학기 홀로 생활은 너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너 역시 너의 마음이 집에 머물며 안정과 평온을 느끼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혼자 있는 기간을 잘 지내길 바란다. 물론, 너는 지금껏 혼자 있었던 시간을 경험했고, 앞으로도 잘 해내리라고 본다. 외삼촌네 가족들의 생활을 존중하고 규칙을 따르고 너의 할 일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지금의 네 복잡한 감정과 느낌들이, 시간이 흘러 너의 자산이 될 것임을 생각해라. 그리고, 충분히 느끼되 밖으로 쉽게 내어 놓지 말아라. 네가 거기서 해야 할 일들을 성실하게 해 내어라. 풍요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공부와 성찰이 없는 경험은 사람을 종잇장처럼 가볍게 만든다. 너에게 주어진 경험과 과제들은 너에게 적절한 것들이다. 다만, 그것을 혼자 머물며 해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버거울 뿐이다. 네가 무사히, 그리고 몸과 마음이 훌쩍 자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을 아빠는 상상하고 기다린다. 몸은 혼자 있지만, 너와 함께하는 가족들이 너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되돌아보아라.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너는 적절한 시간을 보내고 마음 쉴 곳으로 돌아와 있을 것이다. 함께, 지금의 시간을 즐기며 기다려보자. 건강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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