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50. 20191008

by 전영웅

Term Break를 혼자 보내고 있는 너에게 미안하구나. 혼자서 할 게 없음이 미안한 것이 아니고, 편안하게 혼자 있을 수 있게 해 주지 못해서 그렇다. 너는 혼자 있는 시간에 게임이나 실컷 했으면 하겠지만, 제주에 있는 엄마 아빠도 그렇고 외삼촌도 그렇고, 너의 그런 모습을 가만 두지는 않을 것이다. 외삼촌이나 외숙모의 입장에서는 너를 혼자 방치할 수도 없는 입장일 것이다. 네가 혼자 있기 가장 좋은 공간은 제주의 집일 텐데 말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너와 네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긴 시간일지 아빠는 알 것 같다. 물론, 아빠도 혼자 있는 너의 시간이, 네가 학교에 가는 날보다 더 신경 쓰이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중요하다. 그리고, 너는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해지는 시기에 다가가고 있다. 혼자서 원하는 것을 하고 환경을 만들어 즐기는 일은 네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닫거나 구성해가는 과정이다. 물론, 그 시간을 게임으로 채워버릴게 뻔한 지금의 너는 아빠가 생각하는 홀로 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겠지. 그런데,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게임으로 채워버리면 좀 어때? 하는 생각도 한다. 그건, 네 나이 때의 아빠 친구들이 종종 만화책으로 하루를 채우곤 하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런 심취에 지쳐서 읽던 만화책을 때려치우고 다른 것을 찾았다. 너도 그럴 것이기 때문에, 사실 아빠는 너의 게임 심취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눈치를 좀 가지고 상황을 살피면서 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 역시 중요하다. 네가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제주에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다. 네 공간은 서울 할머니께서 애지중지하시며 깔끔하게 정리해주셨지. 그 공간에 요즘 변화가 생겼는데, 네 방에서 조용히 자리하던 산세베리아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웠다. 꽃망울에 물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물방울 같은 것이 맺혀 호기심에 맛을 보았는데 무척 달더구나. 꽃에서는 조금 싸구려인듯한 향수 냄새가 났다. 꽃 색깔은 하얗고 살랑거리는 듯한 술이 많았다.


말이 조금 옆으로 샜는데, 어쨌든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다행이자 복 받은 입장이다. 그 안에서 네가 맘 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고 누릴 수 있다는 건, 너를 좀 더 분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조용히 원하는 음악을 듣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때로는 하루 종일 누워서 게임을 하고 동영상을 보다가 잠들고 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편안해지는 모습이다. 그런 것들을 맘 편히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시기 역시 너의 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너의 공간은 제주에서 산세베리아 꽃향기로 조금은 허전하게 채워지고 있고, 너는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불편하게 보내고 있음이 안타깝다. 아빠가 조금 많이 미안해지고 있다.


주말에는 제주 친구들이 서울에 가서 불꽃축제를 보고 왔다. 친하게 지내는 두 집 동생들의 가족이 모여서 함께 서울여행 겸 불꽃축제를 직접 구경하고 오는 모습이 부러웠다. 물론, 아빠는 주말 내내 해야 할 일이 있어 가지 않은 것이지만, 네가 있었다면 함께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엄마 아빠도, 친구들도 네가 없음에 많이 아쉬웠다. 매 순간 네가 없음을 제주 친구들과 가족들이 아쉬워한다. 아빠도, 저녁식사를 집에서 제대로 하는 주말이면, 아빠 옆의 네 자리가 비어있음이 유난하게 느껴진다. 아쉽고 서운하고 그렇다.


여기는 가을이다. 오늘 아침은 좀 춥더구나. 일어나면 거실에 올라와 책부터 읽는 날들인데, 추우니까 오늘 아침은 좀 힘들었다. 그곳은 연중 에어컨 없이는 힘든 곳이니 춥다는 말이 잘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돌아오면 급작스런 추위에 힘들어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너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term break 잘 보내고, 잘 지내다가 제주에서 보자. 많이 추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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