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54. 20191108

by 전영웅

네가 바라던 노트북을 주문했다. 과정은 지난했지.. 다시 말하지만, 네가 공부하고 일상을 활용하는 데 노트북이 필요할 거라는 점에 아빠는 적극 동의한다. 다만, 너의 시기가 노트북이 꼭 필요한 시기인가라는 점과, 네가 노트북이라는 도구를 충동이나 사사로운 욕심에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빠는 아직도 이런 의문들이 조금 남아 있다. 그럼에도 선뜻 수락한 것은, 네가 아빠가 요구한 숙제들을 잘해 주었고, 동시에 너를 믿기 때문이다.


글쓰기, 프레젠테이션, 자료 찾기와 그 외 네가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해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도구는 노트북이 제일 합당하다. 아빠는 너에게 어째서 노트북이 필요한가를 물었을 때, 이런 이야기들을 할 것이라 생각했고 너는 그대로 답을 했다. 통상적인 답이지만 통상적인 만큼 보편화된 도구란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보편화라는 말의 안에는 네게 정말 필요로 하는 공부 외에도, 흥미나 재미로만 다루다 함정처럼 빠져버리는 분야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과 게임 동영상, 그리고 의미 없이 돌아다니는 글과 사진들에의 탐닉이 있지. 언제나 의식하고 경계해야만 적절한 선 안에서 그것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엄마는 너의 그런 모습을 못 참아하고 아빠를 괴롭힌다. 아빠가 적절한 방패가 되어주어서 지금 그런 것들을 그나마 즐길 수 있음을 너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해서 아빠는 조금 고민했었다. 그림만 놓고 보자면 어떤 시스템을 갖춰 주어야 할까.. 그래서, 웹툰을 연재하는 삼촌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까지 했다. 대단한 시스템을 바란다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고 적절한 구성으로, 종이가 아닌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의 가장 합리적 시작을 차려주고 싶었다. 거기에 네가 원하는 방식을 듣고 싶었다. 너는 이미 모델까지 정해서 아빠에게 제시했지. 중고 신티크를 알아보려고 했던 아빠는 이내 시도를 접고, 화면에 직접 터치하고 그리는 방식을 택한 너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네가 바라는 요건들을 충족시키려니 노트북 사양이 올라가고, 덩달아 가격도 올라갔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부분에서 노트북 사양은 껑충 뛸 수밖에 없었다. 결국 너와 상의해서 모델을 변경하고 주문한 노트북 역시, 아빠의 생각으로는 너의 첫 노트북 가격으로는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너에게는 노트북을 원하는 대로 잘 활용해야 한다는 숙제가 안겼다. 그리고, 노트북 가격의 30%는 너의 용돈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네가 이번에 노트북을 장만하면서 겪었던 번거로운 절차들은 앞으로 너에게 무언가가 필요할 때마다 거치게 할 것이다. 30%의 가격 부담도 계속 지울 생각이다. 아빠가 어째서 이렇게 너를 번거롭게 하는지는 아빠도 분명하게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그러나, 무언가를 원할 때에는, 그것이 네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상기시키고 습관처럼 의식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어쨌든, 너는 곧 제주에 돌아올 것이고, 제주에 오면 네가 원하던 노트북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너의 첫 노트북을 미리 축하한다. 노트북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기고 공부하길 바란다. 그리고, 제주에 돌아오게끔 부탁했던 아빠의 마음도 헤아려주길 바란다. 홀로 떨어져 있어 보는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너무 오래되면 관계를 망가뜨린다. 사람이 공부하고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을 많이 접하고 그것을 위해 각자의 바다를 헤엄치지만, 그러면서도 끝내 간직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가족 간의 관계는 혈연이라지만 이 역시 흔들리고 옅어지기 쉬운 관계여서, 관계의 밀도를 잘 유지하고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네가 헤엄치는 바다가 바뀌어야 할 수도 있고, 너는 아직 그렇게 되어도 적응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시기이다. 아빠의 이러한 단정을 용서하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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