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목단화가 활짝 피었다. 아니, 좀 이른것 아닌가 싶게 활짝 핀 목단화가 꽃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고 있었다. 마당 곳곳에 핀 봄꽃 중 하나였고, 수많은 꽃나무 중 그저 라이의 집 옆에서 다소곳하게 자리한 꽃이었다. 동쪽의 아침햇살에 하얀 꽃잎에 약간의 윤기가 배어 반짝였다. 꽃과 동시에 피어난 새 이파리들이 꽃을 덮으려는 듯 무성해졌다. 출근 전, 꽃 위로 쏟아지는 아침 볕을 가리지 않으려고 비켜서서, 잠시 목단화를 내려다 보았다. 옆으로는 타임과 오레가노가 낮게 퍼져 있었고, 사과나무가 새 순을 열심히 피어내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목단화를 심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특징없이 잡다한 유실수와 꽃들이 너무 많이 심어진 마당이었다. 거기에 무얼 더 심으시려고 하시나, 나는 속에서 귀찮음이 올라왔다. 몇년 전 어느 봄날 저녁, 퇴근을 하니 오일장에서 사 왔다는 목단화 모종 하나가 마당에 놓여 있었다. 별 수 없이 삽을 들고 목단화를 심을 자리를 찾았다. 꽃이라 아무 곳에나 심을 수도 없었다. 마당에 나오면 잘 보이는 자리에 심어야 했다. 제주라서, 마당을 관통하는 거친 바람을 덜 타는 자리여야 했다. 하지만, 귀찮음의 원인이기도 했던 그것, 심을 자리가 없이 마당은 나무와 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지 못해 찾은 자리가 돌담 앞, 사과나무와 라이의 집 사이 작은 공간이었다. 나는 미리 심어진 타임덤불이 다치지 않게 삽으로 조금 제껴주고, 흙을 적당히 파서 목단화를 심었다. 물을 넉넉히 주고, 타임덤불과 잡초들이 목단화를 잠식하지 않도록 돌보아주니, 목단화는 심은 그 해부터 꽃을 피웠다. 장인어른은 만족해 하셨다.
목단화는 자리를 잡더니 해마다 가지를 키웠다. 해마다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일도 물론이었다. 크고 화사한 꽃이 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장인어른을 떠올렸다. 목단화가 피었는데, 제주로 내려오셨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4번의 꽃을 피울 때, 장인어른은 제주에 계시기도 했고, 서울에 계시기도 했다. 제주에서 봄이면 즐길 수 있는 정경과 활동을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해지시며 건강도 나빠지셨다. 거기에, 코로나 판데믹은 건강이 좋지 못한 노인의 발을 묶어버렸다. 백신 접종하시고, 병원에서 검사결과가 나쁘지 않다는 판정만 받으시면 조심해서 내려오시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유도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의사사위 입장에서 만일의 위험을 감내하시라는 그런 권유는 쉽게 내비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작년과 올해, 목단화는 보고싶어하는 이 없이, 홀로 꽃을 피우고 지는 중이다.
뒤뜰의 두릅나무들에 순이 올랐다. 앞뜰 텃밭 구석과 뒤뜰에 심어진 두릅나무에서, 봄이 되자 순들이 올라왔다. 반가운 마음은 나무줄기에 촘촘히 선 가시도 무릅쓰게 한다. 조심히 줄기를 당겨서 순을 꺾었다. 개원 전인 작년까지는 수시로 순을 살펴 먹기 좋게 자란 녀석들을 골라 꺾었다. 올해는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으니, 쉬는 주말에 몰아서 순을 꺾었다. 그러니, 이미 웃자란 것들과 적당한 것들이 뒤섞여 꺾은 순을 모아놓은 모양새가 좋지 않고 무성했다. 다시 먹을만한 줄기를 고르고 억세어진 것들은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했다. 볕이 좋은 일요일 오후, 친구들을 불러 두릅을 삶아 초장에 찍어먹었다.
두릅나무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심은 것들이었다. 봄날의 제주를 만끽하시던 몇 년 전, 고사리를 꺾으러 다녀오시던 손에는 작은 두릅나무들이 들어있는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거 심으면 집에서 두릅도 따 먹고, 나무가 거치니 경계수로도 좋지 않을까?’ 집을 지은 지 일 년이 조금 지났을까 싶은 때였으니, 아마도 5-6년 전이었을 것 같다. 장인의 제안에 나도 그럴듯한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하루 정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배수로에 접한 뒤뜰 가장자리에 나란히 나무를 심었다. 사위가 수긍하고 나무를 심는 모습을 본 장인어른은 나무를 좀 더 해와야겠다 싶으셨는지, 며칠 후 고사리를 꺾으러 다녀오는 길에 두릅나무를 더 구해오셨다. ‘아.. 이제 더 심을 곳도 없는데..’ 싶은 마음이었지만 차마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어 텃밭 가장자리 구석에 나무를 촘촘히 심었다.
매년 봄이면 두릅을 집에서 구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두릅 자체는 집에 심으면 안되는 나무였다. 여름이면, 가시를 세운 줄기와 잎들이 주변을 숲으로 만들었다. 별 생각없이 지났다가는 가시에 긁히고 찔렸다. 두릅은 뿌리줄기로 퍼지는 녀석이었다. 주변 땅에서 두릅줄기들이 조용히 순을 내면 이내 줄기는 굵어져 나무가 되려 하고 있었다. 뒤늦게 모습을 발견한 나는 경악했다. 이거 관리하지 않으면 마당이 두릅으로 망가질 판이었다. 삽과 골갱이를 들고 작업에 나섰지만, 두릅의 잔가시들은 작업을 어렵게 했다. 나는 수시로 가시에 손이 찔리고 긁히며 땅에서 올라오는 두릅 순들을 걷어내었다. 숲이 된 뒤뜰의 두릅은 줄기를 잘라주었다. 하지만, 조건이 좋은지 두릅들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쑥쑥 자랐고, 땅에서는 뿌리줄기들이 뻗어 곳곳에서 순을 내었다. 마치 먹었으면 노동을 하라는 듯, 두릅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장인에 대한 원망도 살짝 올랐다. 그렇다고 나무들을 베어버릴 수도 없었다. 실망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올해 두릅을 따다가 보니, 뒤뜰의 높게 자란 두릅들의 반이 죽어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순이 난 녀석들은 사람 손이 오기 전에 얼른 억세어질 기세로 잎을 펴고 있는데, 대여섯의 굵직한 녀석들은 순을 내지 않고 그대로 말라있었다. 나의 노동을 요구하던 녀석들, 장인의 기대를 품게 했던 녀석들이 그렇게 말라죽었다. 힘들게 했던 녀석들인데도 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쉬움 때문에 가만 둘 수도 없었다. 나는 창고에서 톱을 가져와 죽은 녀석들의 밑둥을 잘랐다. 굵직한 둥치를 자르는 일도 힘든 노동이었다. 생각대로, 녀석들의 둥치 속은 말라있었다. 힘겹게 잘라내고 난 공간은 허전해졌다. 바람은 좀 더 거칠게 이 공간을 지날 것이고, 해마다 새순을 내는 루꼴라와 고수는 거칠어진 바람에 더욱 억세어질 것이다.
죽은 두릅들을 베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아 다행이랄까.. 장인은 건강문제로 올해 봄 제주에 오시지 못했다. 목단화도 애정하는 주인없이 꽃을 피웠고, 두릅은 제철의 별미를 즐기시는 분의 입맛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했다. 작년에도 코로나 판데믹으로 오시지 못했다. 작년에는 거둔 두릅을 양이 작아도 신문지에 사서 상자에 담아 맛이라도 보시라고 서울로 보내드렸다. 건강문제가 좀 더 깊어진 올해엔 드시는 일도 좀 더 조심스러워져서, 두릅을 보내드리지도 못했다. 코로나 판데믹이 끝나간다.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자유로이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장인의 몸은 현대의학의 도움이 좀 더 필요해졌다. 도움을 받은 몸의 건강이 좀 더 안정되면, 두 분은 제주에 오셔서 철마다 다채로운 우리집 마당을 즐기실 것이다. 내년 봄에 더욱 화사하게 필 목단화에 미소짓고, 죽어 밑둥만 남은 두릅에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차분하시길 기도한다.
텃밭의 땅을 뒤집었다. 놀이터같은 작은 땅을 굳이 뒤집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땅은 뒤집지 않아도 작물재배에는 아무 문제 없다는 어느 농업기술자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땅 뒤집기는 매해 봄이면 의례처럼 하는 나의 노동이다. 과학도 경험도 필요하지 않은, 의식을 위한 노동이랄까.. 그렇게 반나절의 시간을 들여 텃밭을 뒤집으면 곳곳에서 장수지네들이 기어나오고, 지렁이들이 요동을 치며, 굼벵이들이 발굴된다. 잠시 쉬려고 텃밭을 나오면, 주변에 있던 참새들이 벌레들을 먹으려는지, 아니면 숨어있던 풀씨들을 먹으려는지, 땅이 뒤집힌 텃밭으로 모조리 내려와 흙 위에서 까불듯 맴돈다. 그 모습에 라이는 약이 바짝 올라서 어쩔 줄을 모른다. 마당 주변으로 공간을 점령한 참새들의 약올림에, 라이는 매번 달려들지만 언제나 잡지는 못한다. 바람이 아직은 차가웠다. 바람이 덜 타는 티트리와 감나무 사이 그늘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맥주를 두고는 땅뒤집기 중간중간 쉬어가며 마셨다. 일요일 오후 햇살에, 털갈이를 시작한 라이녀석의 털이 빛을 내며 날렸다. 텃밭을 다 뒤집고 남은 완두와 이탈리안 파슬리를 언제쯤 거둘 것인가 가늠했다. 모종을 다음주면 심어도 될까 싶을만큼 날은 따뜻했지만, 4월의 날씨는 믿을 것이 못된다.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일요일 오후의 남은 햇볕을 맥주와 함께 즐겼다. 쉴 수 있는 날들이 좀 더 소중해진다. 봄의 쉬는 날은 마당일의 노동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