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텃밭일기 : 4월 17일

by 전영웅

이제는 반복이 되어 익숙해진 말, 올해는 예년보다 빠른 것 같다는 말들.. 올해도 여지없이 익숙했고, 익숙한 만큼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제비가 벌써 돌아와 작년에 지었던 집을 수리하고 짝을 지었다. 밤이면 주차장 천정 구석의 집에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봄날씨의 변덕 역시 올해에도 반복되어서, 어느날 밤은 많이 쌀쌀하다 싶었는데 제비 두 마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집을 지키고 있었다. 모종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친한 친구는 돌아다니다가 본 모종가게에 모종들이 많이 나와 있더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진료실 창 밖의 벚나무에는 진작 꽃이 떨어졌고, 꽃비가 날리자마자 초록으로 가지들이 뒤덮이고 있었다. 지금 노지에 모종을 심어도 될려나 싶어 달력을 봤더니 음력 3월은 시작된 지 한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아직 텃밭은 모종을 심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4월 봄날의 변덕을 아직 조심해야 했다. 봄날의 날씨는 믿을 수 없는 그것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봄은, 변덕을 덜 느낀다 싶을 만큼 많이 더워졌다.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주말이 왔다. 일요일 점심 즈음에 나는 필로티 공간에 캠핑의자와 테이블을 펴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라디오를 틀었다. 오전 내내 심심해하던 라이 녀석은 내가 마당으로 나와 무언가를 하니까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들어댔다. 아마 뭔가 먹을 걸 줄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에겐 오늘도 마무리해야 할 작업이 있었고, 작업을 하는 와중에 라이녀석에게 집중할 여유는 없었다. 라이녀석은 물을 싫어한다. 그래서 목욕도 하지 않는다. 마당견이라 목욕이 그리 필요하지는 않지만, 저 털의 꼬질꼬질함은 볼 때마다 난감하다. 여름이면 한 번 정도는 억지로 붙잡고 목욕을 시키는데, 정말 힘든 숙제다. 봄날의 라이는 털갈이를 앞두고 있어 더욱 꼬질해 보인다. 그럼에도, 녀석의 관심을 외면할 수 없어 나는 리드줄을 꺼내 녀석을 테이블 옆으로 데려와 기둥에 묶어 놓았다. 먹을 것에 대한 녀석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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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업은 텃밭 주변과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의 잡초 정리다. 마당 남쪽으로는 수령 10년을 넘긴 블루베리 나무가 하나 있다. 그 옆으로 텃밭 남쪽구석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겨우내 지나가지도 않고 손도 대지 않았더니 길이 사라졌다. 남쪽 앞집이 3층이라 내내 그늘이기도 해서, 그 자리에 심었던 귤나무 두 그루가 볕을 그리워하다 죽기도 했다. 뭘 해도 쉽지 않은 자리여서 아쉬움이 컸는지, 몸도 잘 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뭐라도 심어볼까 해서 재작년 비파나무를 심었는데, 비파는 생각보다 그늘에서 잘 견뎌주었다. 잘 자라지는 못해도, 싹을 내고 뿌리를 단단히 박아서 그늘진 자리를 삭막하지 않게 만들었다.


손대려는 자리의 입구는 라이가 소변을 보고 종종 대변도 보는 자리였다. 그래서, 잡초들이 튼실하고 건강해보였다. 가차없이 뿌리채 뽑아내고 들어가면 레몬밤과 스피아민트가 겨우내 뿌리줄기를 뻗고 그 위로 싹을 내어 길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레몬밤과 민트류는 검질을 맬때 땅 속을 좀 더 신경써서 뿌리줄기까지 걷어내야 한다. 작은 잡초들과 담 아래 음침해 보이는 양치식물과 쑥을 뿌리까지 걷어내 진입로를 복구했다. 그렇게 길을 만들어 들어가면, 텃밭의 남쪽 가장자리와 구석이 나오는데, 그 곳은 3년전 딸기 모종을 심고, 그 전에 방풍씨앗을 뿌린 자리였다. 무화과 나무 세 그루가 자리를 잡았고, 살구나무 하나가 있으며, 그 사이로 두릅나무가 멋없고 길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딸기 모종은 줄기싹을 내어 퍼지더니 일정 면적을 자신들의 서식지로 만들었다. 방풍은 나무들의 밑둥을 감싸며 무성하게 자라고 퍼졌다. 딸기들은 조심스레 놓아두고, 방풍은 제멋대로 퍼진 싹과 줄기들을 뽑아내어 담벼락 구석자리로 한정시켰다. 딸기꽃이 피고 있었다. 5월이 되면 풍뎅이들과 개미들과의 전쟁을 치른 후, 겨우 먹을 딸기 몇 개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건져낸 딸기도 작고 볼품없을 것이 뻔하지만, 익어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 그리고 노지에서 자란 딸기의 강렬한 향에 기대가 생긴다. 딸기 사이사이의 살갈퀴들과 돼지풀 싹과 비름과 망초들을 뽑아주었다. 뿌리로 아무렇게나 번지는 두릅싹들을 삽으로 잘라 거두어내었다. 가시가 있는 녀석들이라 귀찮고 조심스럽다. 살구나무 아래로 퍼진 잡초들도 대략 거두고 자리에서 나왔다.


두어 시간의 작업 끝에 한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셨다. 라이가 뭐 주는거 없나 기대에 찬 눈빛으로 다가왔다가 내가 몸을 쓰다듬어주자 기분좋다며 헥헥거리고는 더 쓰다듬어 달라고 몸을 의자에 붙였다. 털은 꼬질꼬질한 녀석이 만져주는 것은 좋아해서 계속 쓰다듬으라며 몸을 붙이고 손을 핥는다. 이제 막 잎이 피기 시작한 감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봄 햇살이 싱그러웠다. 아마 이 느낌좋은 햇살도 얼마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밖에 있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은 금방 더워질 것이고, 바람은 좀 더 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말에 맞춰 좋은 날을 만나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다시 일어나 집 입구 진입로로 향했다. 이번엔 골갱이만으로는 안된다. 삽을 같이 가지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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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 담벼락 아래로는 몇 년 전 타임과 라벤더를 일정간격으로 심었다. 담벼락 아래 구석을 아담하고 예쁘게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바램 뿐이었다. 타임은 그늘진 구석에서 자리잡느라 힘들어했고, 라벤더는 기운 좋은 잡초처럼 줄기를 곳곳으로 뻗어댔다. 결국 그늘이라는 점과 차가 수시로 다니는 자리여서 견디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타임은 간신히 자리를 잡더니 예쁘지는 않아도 아담하게 공간을 채웠다. 향이 좋은 타임 사이로는 잡초들이 자리를 메꾸었다. 망초류, 비름과 바랭이류의 잡초들이 무섭게 자리를 차지하더니 쑥과 살갈퀴들이 합세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민들레가 곳곳에서 풀씨를 날렸고, 뿌리가 단단하고 깊어 잘 제거되지 않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초들도 곳곳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삽은 이 녀석들 때문에 필요했다. 골갱이로는 잘 뽑히지도 않거니와 이파리만 쑥 빠지고 뿌리와 새순만 남아버렸다. 삽을 바로 옆 땅에 박은 뒤 들어올려서 뿌리를 제거해야 했다. 그럼에도 남은 뿌리에서는, 다시 싹이 올라와 가을이나 다음해에 자신의 굳건한 생명력을 과시하곤 했다. 어차피 끝나지 않는 잡초와의 전쟁이었다. 나는 곳곳의 녀석들을 삽으로 퍼낸 뒤에, 골갱이를 들고 쪼그려 앉아 거두어 낼 수 있거나, 모양이 비죽히 솟은 잡초들을 뽑아내는 형식으로 진입로를 정리했다. 타임 덤불에서 볕에 따듯해진 공기를 타고 향이 전해졌다.


늦은 오후가 되고 그늘이 넓어졌다. 캠핑의자와 테이블을 정리해 창고에 넣고나니 밤을 준비하는 제비들이 분주하게 날고 있었다. 라이를 다시 제자리에 묶어두고 나는 마당에 잠시 서 있었다. 해가 남은 마당과 텃밭은 아직도 내 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3월에 검질을 두어 번 매었던 마당은 다시 잡초들이 낮게 깔리면서 내 노력을 비웃고 있었다. 지난주 검질을 맨 텃밭에는 거둔 채 그대로 둔 잡초덤불이 누렇게 말라있었고, 사이사이로 둔 고수가 줄기를 높게 올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아까 작업했던 남쪽 구석자리와 사이, 좁지 않은 공간으로 캐모마일이 부쩍 자라 덤불을 만들었다. 꽃이 제법 피었다. 진입로의 검질을 매는 동안, 아내는 캐모마일 꽃을 거두었다. 말려서 차로 마시겠다고 했다. 채반에 담긴 캐모마일꽃이 잠깐의 볕에 조금 시들었어도 향과 색이 좋았다. 채반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텃밭 땅을 뒤집고, 모종심을 시기를 가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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