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텃밭일기 : 5월 8일

by 전영웅

5월이 시작되었지만, 며칠간 날은 서늘했다. 텃밭은 모종심을 준비가 끝나 있었지만, 모종을 심어도 될까 싶은 날들이었다. 어린이날이 다가왔다. 병원은 휴진이어서 하루를 쉬지만, 집에는 이제 어린이가 없었다. 날은 화창했고, 더워졌다. 이제는 모종을 심어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드는 날이었다.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4월이 지났으니, 푸르른 5월의 하늘을 믿기로 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을 정리하고 텃밭을 살핀 다음, 집 근처의 모종집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모종을 구하러 장날에 맞춰 오일장에 가거나, 구제주 시내에 있는 모종파는 꽃집으로 다녔었다. 몇년 전부터 자전거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일주도로 길가에서 모종을 파는 집이 생겼다. 원래는 뻥튀기를 파는 집이었는데, 봄이면 조그맣게 모종을 가져다 놓고 팔더니 사람이 많아지자 아예 본격적으로 모종을 들이기 시작했다. 나야 반가웠다. 모종을 사러 멀리까지 일부러 가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주인내외는 수시로 들어와 이거 몇개 저거 몇 개 하며 달라는 사람들을 상대하며 바쁜 모습이 보였다. 나는 말없이 가위 하나를 들고, 내가 원하는 모종판에 적힌 가격을 가늠하며, 원하는 갯수 만큼 잘라서 한 구석에 모았다. 나중에 계산해 달라고 하면 박스에 차곡차곡 담으면서 주인이 계산만 하면 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저 사람은 뭐하는 건가’ 싶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주인 아주머니는 마지막에 계산해달라는 내 주문에 무척 달가워했다. 박스에 모종을 다 담고나서 계산을 마친 아주머니는 ‘원하는 모종 있으면 몇 개 더 가져가라’며 가위를 다시 쥐어주셨다.

88E1D817-59C4-4A86-B7A4-6B173DC618BA.heic

모종 가격도 많이 올랐다. 해마다 20-30퍼센트씩 가격이 오르는 느낌이다. 매운고추는 몇 년 전 7개 한 줄에 천원이었다. 지금은 한 줄에 2천원이다. 가지도 7개 한 줄당 얼마하던 것이, 지금은 3개 2천원을 부른다. 토마토 역시 7개 한 줄당 2천원 하던 것이 서너 개에 그 정도 가격이다. 물론 모종의 종류와 작물별 품종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매년 심는 같은 모종을 비교해보면, 모종가격만큼 가파르게 오르는 품목도 없는 느낌이다. 작은 텃밭이지만, 몇 년 전에는 모종을 담은 종이박스 두 상자 가득 3만원 안팎에서 구입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같은 양이면 오만원 정도를 생각해야 한다.


올해는 심는 모종의 종류와 갯수를 줄이기로 했다. 병원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만큼, 텃밭에 신경을 쓸 여유가 줄었기 때문이다. 모종을 심다보면 일말의 욕심과 남을 모종에 신경이 쓰여, 심는 모종의 간격이 좁아진다. 자연히 밀식하게 되고, 성장이 좋지 않게 된다. 해마다 그랬다. 올해는 최대한 간격을 넓혀 심는데 신경을 쓰고, 새로운 모종보다는 기존에 심어서 경험이 있는 종류들로만 심기로 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모종을 구입하니 종이박스 하나에 모종이 전부 담겼다. 많이 소박해진 기분이 들었다. 맵지 않은 고추와 청양고추, 일본가지와 일본물외, 대추방울 토마토, 애호박과 오이, 참외와 망고수박, 깻잎과 상추, 그리고 미니단호박을 구입했다. 고추는 기존에 심던 작물이라 수량만 줄였다. 일본가지는 2년 정도 길러보니 윤기가 좋고 병충해에 강하며 추위에도 강해서 늦가을까지 가지를 열었다. 그래서 일반가지보다 선호하게 되었다. 토마토는 아무리 잘 키워도 방제를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풍뎅이들의 먹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방울토마토 종류 중 색이 어둡고 진한 품종을 심어야 사람이 먹을 게 생겼다. 토마토는 해마다 품종이 다양했다. 그래서, 품종을 고를 때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서 고르게 된다. 올해는 대추방울 토마토로 결정했다.

C0CC9E63-5921-4685-A56C-E5AE9B544F75.heic

일본물외와 망고수박은 고르다보니 처음 고르게 되는 녀석들이었다. 물외는 사실 우리 텃밭에서 잘 열리지 않는데도 해마다 고르게 되는 모종이다. 올해는 일본물외가 나왔길래 주인에게 물어보니, 쓴맛이 덜하다고 했다. 한 번 심어보자 싶은 마음에 골랐다. 망고수박은 맛이 좀 다르려나 싶어 골라봤는데, 작년에 애플수박을 심어 두세번 쏠쏠한 재미와 맛을 즐긴 기억이 나서, 비슷하겠거니 하는 마음에 골랐다. 호박은 애호박으로만 골랐다. 늙은호박과 토종호박을 심어 본 경험으로는, 줄기가 텃밭을 뒤덮으면서 무거운 호박이 매달리니 작물들을 죄다 짓눌렀다. 게다가 양이 너무 많아서 처치곤란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올해는 애호박만 하기로 다짐을 했으나, 아내는 미니단호박 모종에 마음을 뺏겨서 두 개를 추가로 들이게 되었다.


모종을 구입하자마자 텃밭에 바로 심었다. 흙은 말라있었고, 당분간 비소식은 없었다. 심자마자 열심히 물을 주어야 했다. 여유있게 심자 다짐하니 종류별로 구분한 이랑에 빈 자리가 생겼다. 간격을 신경써서 넓게 두었는데도 그랬다. 올해 텃밭은 정말 단순 간략하게 가꾸기로 마음먹었구나, 스스로 생각해도 그 마음에 결기가 있었구나 싶었다. 결국 이랑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모종가게를 두 번 더 다녀와야 했다.


모종을 심는 일은 간단해서 금방 마무리되었다. 봄이 시작되고 텃밭을 준비했던 과정을 생각하면, 모종심는 일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 해 텃밭의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씨앗을 뿌리고 그냥 기다릴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화창하다 못해 더위가 느껴지는 한낮의 강렬한 볕에 심자마자 잎이 쳐지는 녀석들이 보였다. 나는 호스를 끌어다 물을 넉넉하게 뿌려주었다. 물을 싫어하는 마당견 라이녀석은 내가 호스를 들기만 해도 자기가 피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가서 꼬리를 내리고 눈치를 본다.


어린이날이 지난 주말에는 마침 오일장날이었다. 모종가게에는 작년에 있던 바질모종이 올해에는 없었다. 예전에는 3월에 상토를 포트에 담아 바질 씨를 심어 발아를 시켜 심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모종을 구입해서 심을 생각이었는데, 바질이 없으니 때마침 장날이라 바질을 구하러 장에 들렀다. 오일장 한켠 모종을 파는 집에도 모종의 종류는 점점 많아졌다. 특히 허브종류가 많아졌는데 올해엔 스위트 바질 뿐만 아니라 오팔 바질도 팔고 있었다. 그 외 고수, 이탈리안파슬리, 루꼴라 등등의 식재료 허브종류가 많이 있었다. 관심이 갔으나 필요한 것만 구입하기로 다짐했다. 스위트 바질과 오팔 바질을 구입하고 버터크런치 상추를 구입했다. 마당 한 켠이 민트와 잡풀들로만 무성한 빈자리가 생각나서 3년생 모과나무도 한 그루 구입했다.

65CAE1C2-6651-41E5-AA70-E34D010CE858.heic

집에 돌아와서는 생각해 두었던 자리에 바질을 심었다. 이랑 끝 자투리 공간에 상추도 심었다. 미리 세워둔 지지대 아래 토마토와 호박과 오이 모종을 지지대와 그물에 묶어주었다. 다른 작물들은 작은 지지대를 가져와서 모종 옆으로 꽂아 세우고 끈으로 묶어주었다. 작은 모종이라 묶어주기가 너무 이른 것 같긴 하지만, 제주의 바람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불어닥칠지 알 수 없다. 바람에 꺾이고 지치거나 잎이 타지 않도록, 미리 묶어주는 것이 속이 편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묶어주기를 마치고 물을 넉넉히 준 다음, 저독성 살충제를 모종마다 뿌려주었다. 모종을 심고 난 후 초반에 방제를 해 주지 않으면, 온갖 곤충들의 먹이가 될 뿐이다.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자라기 시작할 때 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관리가 필요하다. 민트로 뒤덮인 덤불자리를 삽과 골갱이로 치우고 땅을 판 뒤, 구입해 온 모과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한 주, 하루의 마당과 텃밭일을 마무리했다.


비어있던 텃밭은 이제 모종들로 가득했다. 마음은 든든했지만, 앞으로 신경 써주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번잡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 번잡함과 신경이 나를 살아있게 하고, 생각과 마음이 쳐지지 않게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올해에도, 내가 나로 설 수 있게 기댈 수 있는 지지대를 마음에 단단히 세웠다. 해가 기울고 일을 더 할 수 없는 어두움이 찾아왔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고, 다시 마당으로 나와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을 폈다. 5월의 주말저녁은 밖에서 충분히 즐겨둬야 한다.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셨다. 마음은 충만했고, 몸은 기분좋게 노곤해졌다.

keyword
이전 04화2022년의 텃밭일기 :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