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을 심고 나면 이제 시작이라는 기분과 함께 잠시 마음을 쉬게 된다. 겨우내 잡초를 거두고 땅을 뒤집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지지대를 세우는 일련의 작업을 마치고 가지는 잠시의 휴식이다. 몸을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과정은 일단락 되고, 이제부터는 소소한 움직임만큼 세세한 신경을 써야 한다. 모종은 계획한 대로 잘 심었고, 고추와 가지 모종 옆으로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그리고 노끈으로 묶어주었다. 며칠 후 작은 비가 한 차례 내렸다.
걱정했던 바람은 불지 않았다. 작년에는 모종을 심자마자 태풍급 바람이 불어 고생을 했었다. 그래서 지주대와 묶어주기를 미리 서두른 것인데, 올해는 고요하다 싶을 만큼 바람이 없었다. 대신, 비가 내리지 않았다. 뿌리가 잘 자리잡으려면 비가 좀 더 와줘야 할텐데, 하늘은 청명하고 맑기만 했다. 일하러 나가기 억울하고 여행 온 사람들은 신이 날 만큼 맑은 하늘이 이어졌다. 나는 이틀에 한 번, 아침 일찍 마당으로 나가 호스를 들고 텃밭에 물을 뿌렸다. 사람이 뿌려주는 물은 잠깐이라도 내리는 비에 비하면 임시방편의 수준이다. 열심히 물을 뿌려 땅을 넉넉히 적셔주면 모종들이 시들지는 않는 정도다. 비가 내리면, 모종들은 이파리를 한껏 펼치고 키를 높인다. 모종 주변의 잡초들도 덩달아 자란다. 사람의 힘과 자연의 현상은 텃밭에 물을 주는 사소한 일에서도 차이가 크다. 물을 주러 나가는 시간은 아침 6시 정도였다. 그간 해는 무척 길어져서, 아침 6시의 볕은 마당에 가득했다. 텃밭에 물을 주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대신, 아침시간의 독서는 줄었다는 문제가 생겼다.
열심히 물을 준 덕에 모종들은 천천히 자리를 잘 잡아갔다. 한낮에는 볕이 뜨거워서 수분은 금방 사라졌다. 비닐이나 잡초 등으로 하는 멀칭이 없으니 말라버린 텃밭 땅 색은 더욱 황량해 보였다. 맨땅에서 모종들이 천천히 자리를 잡아갈 때, 구석진 자리 비닐멀칭을 해 준 자리에 심은 수박, 참외, 물외는 모습이 달랐다. 색이 좀 더 짙고, 줄기와 이파리가 좀 더 크고 굵어졌다. 같은 날 심은 모종인데 멀칭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그랬다.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소신대로 땅에 비닐을 쓰지 않고, 멀칭을 하더라도 주변의 잡초를 거두어 덮어주는 정도로 관리하자고, 그렇게 이제까지 텃밭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주변의 멀칭한 밭들을 보고 실험적으로 구석에 작업한 멀칭의 결과를 보고 있자니, 유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땅의 수분을 유지하고 온도를 올리며 잡초까지 관리된다. 초기에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한 시즌 내내 몸이 편할 수 있고 수확도 더 많아진다. 결론은 간단하지만 고집이 발목을 잡는다. 어차피 올해는 멀칭은 불가능하다. 옆에 무성하게 피다가 서서히 생기를 잃어가는 캐모마일을 뽑고나면, 그것으로 멀칭을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원칙과 고집은 멀칭에서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초기 병충해 방제 문제에서도 그랬다. 여리고 약한 모종들을 심고나면, 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진딧물부터 시작해 노린재까지.. 나중에는 풍뎅이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어떤 때에는 모종에 맛을 들인 참새들까지 와서 뜯어먹었다. 모종에 벌레들이 매달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이녀석들에게 간식거리를 제공하려고 모종을 심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농약을 쓰지 말자는 고집으로 방제에 좋다는 여러 레시피들을 찾아 그대로 만들어 뿌려주었다. 결론은 그때 뿐이거나 효과가 없었다. 농약사에서 추천하는 저독성 농약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권장하는 농도보다 좀 더 약하게 해서 모종을 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뿌려주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벌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기간이 좀 더 길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벌레들이 다시 모이는 간격이 조금 길어지는 정도의 효과 뿐이었다. 올해는 농약의 농도를 조금 더 올려서 넉넉히 뿌려주었다. 심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모종 몇몇은 벌써 이파리에 구멍이 나 있었고, 덩굴모종에는 노린재 몇 마리가 붙어 있었다. 농약을 물주듯 넉넉히 뿌려 방제했다. 비가 오지 않으니 방제효과는 조금 더 오래 지속됐다. 모종들은 물이 부족해서 힘들었어도, 제 몸에 들러붙는 벌레들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우리 텃밭에는 다른 곤충보다도 톱날노린재가 무척 많다. 어디서 대기했다가 작정하고 달려든다 싶을 정도로 다른 녀석없이 이 녀석들만 우글거린다. 방제를 해 줘도 죽지 않고 잠시 피했다가 다시 나타나는지, 날이 더워지고 모종이 자랄수록 톱날노린재의 숫자도 점점 불어난다. 녀석들의 먹이는 주로 덩굴작물이다. 오이 호박 수박 참외.. 덩굴로 자랄 모종에는 어김없이 줄기를 따라 붙어있다. 나중에 고추가 자라서 꽃을 피우고 고추를 맺기 시작하면 고추 줄기에도 새까맣게 들러붙을 것이다. 이 녀석들로 덩굴들이 힘들어한다. 가만히 놔 두면 호박의 경우에는 줄기에 상처가 생겨 말라버리고 이파리가 쪼그라든다. 방제할 때면 유심히 살펴 보이는 대로 약을 뿌리고, 텃밭을 살피러 들어가 보이면 줄기에서 열심히 떼어준다. 톱날노린재를 다룰 때엔 조금 괴롭다. 노린재들이라 냄새가 조금 역하다. 거슬리는 냄새를 참아가며 열심히 떼어줘도, 이 녀석들은 다시 줄기에 붙을 것이라 생각하면 약간의 짜증이 생긴다. 이래서 모종을 심고 가꾸는 일은 큰 힘은 들지 않아도, 소소한 움직임과 잦은 마음씀이 필요한 일이다.
욕심을 조금 내려두고 시작한 올해의 텃밭은 어느 해 보다도 안정적으로 시작되었다. 모종들은 자리를 잘 잡아주었다. 그래도 힘들어하는 녀석이 몇 있어서, 말라버린 고추 모종 하나를 다시 심어주었다. 색이 예쁜 자주색 오팔바질은 잘 자리잡는 듯 하더니 어느날 두 개 중 하나가 이파리가 모두 뜯기고 말라버렸다. 옆의 하나는 바로 다음날 같은 모습이 되어 줄기의 곁순만 남아버렸다. 내가 일하러 나간 사이 한낮의 참새들의 테러가 의심되었지만,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었다. 말라버린 하나는 뽑아주고, 곁순이라도 남은 녀석은 물을 넉넉히 주고 관찰하는 중이다. 뽑은 자리에는 스위트바질 하나를 다시 심었다.
비가 오지 않는 2주를 세세하게 살피고 물을 주면서 보냈다. 자리잡은 녀석들은 모양새가 달랐다. 줄기색이 짙어지고 조금 굵어졌다. 그리고 키도 자랐다. 줄기와 이파리 사이에서는 곁순들이 나오고 있었다. 토마토는 곁순이 꽤 자라버린 녀석도 있었다. 나는 가위를 들고 곁순을 따 주었다. 호박과 오이는 밑둥의 꽃순을 따 주었다. 묶은 노끈을 자란 키 높이만큼 올려 다시 묶어주고 구석진 자리의 덩굴들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톱날노린재들을 떼어주었다. 무척 더운 날들이었다. 텃밭 맨땅에서는 명아주들이 올라오고 바랭이들이 흙을 거머쥐고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주말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얼마나 올 지 알 수 없지만, 제발 넉넉하게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지만, 비가 오고나면 본격적인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잡초들은 심은 작물들의 키를 추월하여 텃밭을 뒤덮어버릴 것이다. 벌써부터 허리와 종아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한다. 캐모마일을 거두어주고, 고구마 심을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작업을 언제 할 지, 병원일정을 고려해서 날을 잡아야 한다. 시간이 나야 가능한 그런 작업들은, 비가 오든 안 오든 상관없이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