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의 텃밭일기 : 6월 5일

by 전영웅

비가 오지 않았다. 온다던 비는 내리지 않았다. 지난 주말, 나는 비를 기다리며 비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서둘렀고 언제쯤 비가 오려나 비를 기다렸다. 주말 내내 비는 오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면 비가 와 있겠지.. 오지 않았다. 망할 기상청.. 월요일 아침부터 짜증을 한 가득 안고 마당호스를 들고 텃밭에 물을 뿌렸다. 알고보니 비는 내렸었다. 섬의 동쪽을 중심으로 내렸고, 내가 사는 북서쪽 동네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비가 내가 사는 동네를 피해 간 것이다. 짜증이 더 일었다. 그렇지만 그건 단지 나만의 짜증일 뿐, 자연은 현상 그대로 일어났을 뿐이다. 이 섬의 날씨는 알 수 없다. 예보를 아무리 주시해도, 실제 벌어지는 날씨는 직접 겪어야 알 수 있다. 동서남북과 산 속의 날씨가 제각각인 곳이 이 섬이다.


내가 의사라는 본업에만 집중했다면, 날씨같은 것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 자연현상일 것이다. 단지 출퇴근하는 도로 위에서, 진료를 하다가 문득 바라본 창밖 풍경에서,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구나 정도의 감흥으로 넘기는 정도의 일이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추가를 하자면, 비오는 날이니까 밭에서 일하던 할망들 오늘은 물리치료받으러 병원에 많이 오시겠네.. 생각하는 정도의 변화가 있다. 나의 본업은 대체로, 날씨와 무관하다. 과거 수술방을 오가던 시절의 사정은 이보다 더했다. 동트고 해 맑던 아침에 수술방을 들어가 일을 마치고 나오면 비오는 어둔 밤이 되어 있었다. 비가 오면 잠시 난간에서 비를 구경하다 들어가서 끝모를 수술에 비개인 새벽을 맞이하곤 했다. 나는 대체로 날씨를 감상하는 정도의 자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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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가꾸고 텃밭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비는 상당히 중요하다. 그만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 집에 머무는 동안은 온 몸의 감각이 텃밭으로 향한 듯한 느낌이다. 아침 볕이 창문 블라인드 틈으로 강하게 들어오는 어느날,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달아난 잠 뒤로 누운채로 독서등을 켜고 책을 읽었을 것이다. 부스스한 눈으로 마당에 나가면, 맑은 새소리와, 나를 보고 몸을 일으키는 마당의 라이녀석과, 흙먼지가 일듯 말라버린 텃밭이 나를 맞이한다. 마당 수도꼭지를 열고, 호스를 들고 텃밭으로 들어가 물을 뿌린다. 동쪽을 바라보고 물을 뿌리면 마주보고 쏟아지는 물에 하얀 물보라가 펼쳐진다. 먼지로 깃털이 지저분해진 참새나 직박구리가 물보라 끄트머리 즈음에 앉아 몸을 씻기도 한다. 그런 정겨운 풍경도 잠시 뿐이고, 이렇게 물을 틀어대면 상수도세는 대체 얼마인가 하는 푸념이 생긴다. 주변의 밭에는 농업용수가 공급되지만, 주택지인 우리집은 순전히 상수도로 텃밭에 물을 줘야 했다.


물을 주는 방법이나 정도에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일단 물은 식물에 직수하면 안된다. 흙이 다 파이고 식물에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각도를 높여 비처럼 물이 흩뿌려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흙이 충분히 적셔지도록 물을 주는데, 단지 젖는 정도로는 안된다. 흙이 물을 충분히 머금어서, 고랑에 물이 흘러 약간 고이는 정도로 주어야 한다. 그렇게 주려면 농업용수도 아닌 상수도로 얼마나 주어야 하며, 어느 시간만큼 물을 뿌리고 있어야 할 지 난감해진다. 출근 전 잠시의 시간에 주는 물은 그만큼 부족하다. 그래서 자주 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마당의 나무와 허브들에게도 돌아가며 물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 일주일에 비 한두번은 정말 반갑고 소중하다. 텃밭과 나무들도 반갑고, 내 마음도 얼마간은 편안해진다. 게다가 사람이 주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텃밭은 반응은 정말 다르다. 사람이 주는 물에 텃밭은 버틴다는 느낌이지만, 내리는 비에 텃밭은 자라고 풍성해진다. 심지어 싹만 겨우 내던 잡초들이 하루 내린 비에 모종의 키 반 이상을 따라잡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조금 서운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신경쓰고 몸을 움직였는데, 잠깐 내린 비에 인간의 노력 이상의 반응을 보인다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 앞에 미약한 존재라는 그 당연하고 지극한 사실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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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는 2주를 그렇게 버텨냈다. 기상청에 짜증을 내며 물을 주고, 그렇게 이틀엔 한 번씩을 물을 주며 버텼다. 순을 잘못 잘라 시들어가는 호박 옆에 새 모종을 심었는데, 땅은 가물고 날은 점점 더워져서 같이 시들해져 가는 것을 간신히 지켜냈다. 날이 더워지니 덩굴줄기에 들러붙는 톱날노린재들도 성화였다. 물을 주고, 노린재들을 걷어내고, 물을 주면 같이 생기를 발산하는 저 작은 잡초들이 여름이면 내 인내심을 시험하겠지 걱정을 미리 했다. 날은 한여름의 문턱처럼 더워져서, 모종가게엔 육지에서 들였다는 고구마 모종을 팔고 있었다. 오후 휴진인 날에 들러 만 원에 한 단을 사서 집으로 와, 양동이에 물을 담고 담궈두었다. 텃밭 한쪽의 무성했던 캐모마일을 땀흘려가며 모두 거둬내고 고구마 심을 빈자리를 만들었다. 비료를 살짝 뿌리고 얕은 이랑과 고랑을 만든 뒤 물을 뿌려두었다. 다음날 퇴근 후 해가 있는 시간에 얼른 고구마를 심었다. 물을 넉넉히 뿌리고 마무리했지만, 인간의 노력은 여전히 미약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물을 주었지만, 뜨거운 하루를 보낸 저녁의 고구마 순들은 모두 시들어 있었다. 고구마는 줄기로 심으니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지만, 마음이 졸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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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를 심으며 텃밭 구석을 살피니 곳곳에 두릅 순이 땅에서 솟고 있었고, 망초와 쑥이 키 싸움을 하듯 쑥쑥 자라고 있었다. 넓게 퍼지라고 둔 딸기덤불은 듬성하게 퍼진 채 곳곳에서 딸기를 맺고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새들과 풍뎅이들에 헌납된 상태였다. 올해는 살구가 많이 열렸다. 알은 크지 않지만 이제 곧 특유의 살구색으로 익어갈 것이다. 그 옆의 앵두는 작년보다 많이 열리지 않았지만 아주 빨갛게 잘 익어 있었다. 봉투를 하나 가져와 앵두를 땄다. 블루베리도 알이 많이 열렸다. 하지만 그물망을 해 두지 않으면 직박구리나 참새들이 먼저 먹어버릴 것이다. 기대되는 것은 이제 12년이 되었나 하는 마당의 블루베리이다. 해마다 꽃이 피는듯 마는 듯 하더니 올해는 꽃이 만발했고 열매도 올망졸망하게 많이 맺었다. 이 나무에의 기대는 라이녀석 때문이다. 라이가 바로 옆으로 다니고 있으니 새들이 여유롭게 나무 위로 앉질 못한다. 올해는 블루베리 맛을 좀 넉넉하게 볼 수 있을 것인가. 올해 텃밭에서의 첫 소출도 있었다. 상추와 레드치커리가 먹기 좋을 정도로 넉넉하게 자라서 거두어서 고기를 구웠다. 마당에서 고기를 구우면 좋겠지만, 이제 마당에는 점점 바람이 많아지고 있었다. 주말마다 마당에서 저녁을 먹을까 싶다가도 바람이 조금 세다 싶으면 자연스레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확실히, 마당을 즐기기 좋은 시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덥고 습하며, 바람이 부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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