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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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텃밭일기 : 0316

by 전영웅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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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이 시작되고 나는 바로 무 부터 뽑았다.  겨울을 난 월동무는 보약이라는 말도 있더라.  먹어보니 달고 아삭했다.  지인들에게 조금 나눠주고, 아내는 남은 무로 동치미를 담갔다.  쪽파는 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당장 뽑기엔 아담해서, 먹을게 그리 없을 것 같았다.  지인에게 씨앗을 받아 심었던 일본무는 크기가 월동무의 두 배 가까이 자랐다.  자주색 가까운 붉은 색이 돌아 동치미 비슷한 피클을 만들었는데, 국물 색이 자색이 되면서 예뻤다.  한 병을 따로 담아, 씨앗을 주셨던 지인에게 드렸다.  


  나무 줄기들을 잘라주었다.  여전히 자르는 시기나 방식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텃밭을 가리거나, 너무 높게 자라거나, 퍼진 줄기의 안쪽으로 방향없이 자라거나, 너무 밀도가 높은 줄기들을 잘라냈다.  줄기들을 잘라내다보면, 기대가 되는 나무가 있고 거추장스러운 나무들도 보인다.  작년엔 좀 쉬었으니 올해는 살구와 앵두가 많이 열리려나 하는 기대.  무화과를 좀 더 낮고 굵게 키우면 양은 적어도 무화과가 좀 더 맛있고 크게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가시 때문에 다루기도 힘든데, 키까지 점점 커지는 두릅을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고민..  일단 두릅은 거두고 나서 생각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은 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여기저기 줄기를 올리는 강한 번식력 때문에도 번거롭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3월이다.  2월도 너무 추웠고, 3월의 봄 역시 2월의 추위 여파인지 더딘 느낌이었다.  비바람이 스산했다.  높게만 자란 유칼립투스가 바람에 휘청이는 모습을 보며 잘라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칼립투스가 아니었다.  비바람이 좀 세다 싶던 밤을 보낸 어느날 아침, 높고 풍성하게 자란 올리브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뿌리부분이 꺾이며 라이의 집을 살짝 스치고, 바로 옆의 모과나무를 덮치며 쓰러졌다.  작년 가을에 올리브를 엄청나게 매달았던 나무였다.  이 집에 이사온 지 얼마 안되어 3년생 나무를 심었으니 십 년을 조금 넘긴 수령이었다.  쓰러진 광경을 보는 순간, 당황스럽고 안타까웠다.  태풍에 담벼락이 무너지며 놀란 기억이 있던 라이는, 나무가 쓰러지며 화장실터를 가려버리니 아침부터 난감한 표정이었다.  거대한 둥치와 무성한 줄기들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지만, 별 수 없지 않나.. 톱 하나 들고 시간나는 대로 잘라야지 싶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며칠 후 일찍 퇴근한 목요일 오후에 톱을 들고 중간 굵기의 줄기들을 잘라내어 마당에 쌓았다.  주말에는 아직 땅 속에 박힌 남은 뿌리와 굵은 둥치를 잘라야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동네 친구가 전동톱을 빌려주었다.  일은 역시 장비빨이라는 진리를 다시한 번 깨달을 수 있었던 경험.  두세시간 예상을 했던 작업이 20분 만에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나는 미리 잘라두었던 줄기들의 잔가지를 치고, 땔감용으로 모두 정리할 수 있었고, 남은 시간에는 남쪽 경계의 로즈마리 덤불을 전정할 수 있었다.  톱을 든 김에, 위태롭게 보이던 유칼립투스의 윗줄기를 쳐주었고, 그늘진 곳에서 별다른 수확없이 자리만 차지하던 자두나무를 베어냈다.  모두 땔감용으로 정리해서 필로티 그늘아래 쌓아 말려두었다.  잘라낸 올리브 밑둥은 결도 밀도로 꽤 좋아서 손질하면 적어도 찻잔같은 용구로 만들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때마침 우드카빙을 연습하는 지인이 몇 개 좀 가져가고 싶다 해서 건네주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그 커다랗던 올리브나무가 사라지니 라이의 집을 중심으로 마당의 한 자리가 휑해졌다.  허전함이 컸지만, 그만큼 개방감도 생겼다.  사실 텃밭에는 좋은 일이다.  남쪽의 3층 집이 온종일 그늘을 만드는데,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오후에는 크고 무성했던 올리브나무가 이어서 그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제는 텃밭이 오후의 햇볕도 잘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가까이 심어 올리브나무에 억눌리던 월계수 나무가 신이 났다.  경쟁자가 사라졌다.  비죽비죽 나온 줄기들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다.  모과나무도 잘 살아남았다.  올리브나무에 역시 억눌려있다가 자기 쪽으로 쓰러지며 덮쳐졌는데, 줄기 하나가 꺾이는 사고 외에는 멀쩡했다.  올리브나무를 치워주고 꺾인 가지를 전정해주었더니 금세 안정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고 또는 불행은 누군가의 다행이자 기회일 수 있음을, 인간사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도 배우는 기분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3월도 춥다.  4월부터 더울거란 예보가 있었는데, 아직 4월은 아니니 이 예보에 무어라 말을 붙이긴 어렵다.  하지만, 꽃샘추위도 없을거란 예보는 틀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날은 비가 그치고 점점 추워지며 며칠간 꽃샘추위가 있을거라고 한다.  일단 와야 봄을 느낄 수 있고, 특히 제주의 날씨는 일단 겪어야 알 수 있다.  2월에 이어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 3월은 기후변화에 따른 추위가 남긴 긴 꼬리가 아닌가 싶다.  그 미련에 한 달도 넘게 전에 심은 완두가 이제야 싹을 올렸는데, 활짝 펴지 못하고 서서히 순만 올리는 중이다.  슬슬 거두어야겠다 싶던 쪽파는 물을 잔뜩 머금은 모습으로 서서히 줄기를 키웠다.  좀 더 두었다 뽑아도 괜찮을 듯 싶은 모습이다.  양파는 이제 서서히 밑둥을 키우는 중이다.  루꼴라는 한 두개가 꽃대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고수는 여전히 추운지, 먹기 딱 좋은 크기로 잘 버티는 중이다.  아직 꽃대 소식이 없다.  그런 와중에 아스파라거스가 땅 속에서 순을 서너개 올렸다.  신기했다.  처음 키워보는 아스파라거스인데, 순이 이렇게 올라오는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걸 끊어서 먹어야 하나 싶어지는 것이다.  설명을 듣기로는 3년생부터 수확을 한다는데, 이제 일 년이 되어가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순을 끊어서 먹든 아니면 그냥 두어 키우든, 경험으로 익히게 되는 앎은 기쁘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아직도 쌀쌀하다.  기대하던 봄은 여전히 느리다.  정국은 어수선하고, 남들은 정국의 타개를 위해 광장에 모이는 주말에, 마당 검질이나 매고 정리나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살짝 민망해진다.  산다는 건 일종의 부채를 짊어지는 일인가보다.  좋든 싫든, 깨닫거나 모른채 지내거나..  마음은 그러한데, 눈은 계속 마당의 무언가가 보인다.  어서 겨우내 말라버린 덤불들을 잘라 정리하고, 구입한 화로에 불을 붙여 나무들을 태워야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말이 바빠지는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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