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집안일은 백수가 하기로 했습니다
02. 엄마가 나보다 먼저 취직했습니다
눈을 떴다. 창문에서 들어운 주황색 햇빛이 내가 누워있는 쇼파를 위로 앉았다. 나는 뒤척이며 그 빛을 피해보려다 일어난다. 거실장 위 시계를 보니 6시였다. 슬슬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우유가 있어 입 안 대고 마셨다. 우유가 입에 닿자마자 뱉어버렸다. 우유갑 위 유통기한을 보니, 상한 우유다. 나는 어지러진 주방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핸드폰을 찾아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대기음이 몇번 울리지도 못하고 끊겼다. 그 후, 빈 집에 ‘띵’ 하는 문자 소리가 났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통화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문자 메시지 기록을 위로 올려보면, ‘죄송합니다…’로 시작된 통화 거절 문자 뿐이다.
나는 한달 전 취업준비를 하기 위해 자취방을 정리하고, 엄마와 살던 본가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도 있겠다는 예상과 달리 나는 집에서 내내 엄마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나가는 것을 배웅하고, 저녁에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취직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엄마와 나는 자주 심심할 때 전화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대학 졸업 시험을 준비하면서, 엄마의 전화가 줄어들었다. 뭐하냐고 물으니, 그냥 심심풀이로 문화센터를 다니기로 했다나. 재밌겠네하며 가볍게 넘겼던 엄마의 문화센터 수강은 계속되었다. 엄마의 수강은 단순히 듣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3급, 2급 자격증을 따기 시작하더니, 엄마는 문화센터 강사가 되었다. 졸업 후 본가로 돌아와 취업을 준비하던 나보다 엄마가 먼저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상한 우유를 버리고 엄마한테 어디냐고 물었다.
‘어디야?’
‘곧 끝나’
나는 곧이어 온 엄마의 답장을 믿지 않는다. 엄마의 ‘곧’은 1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답장하지 않자, 이어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뭐 사갈까?’
하지만 나는 이번주 내내 저녁에 외부 음식을 먹어서 질린 상태였다.
‘아니, 내가 요리해둘게. 빨리 와’
인터넷에서 본 돼지고기 무조림을 만들어보고 싶어져 냉장고를 열었다. 돼지고기는 엊그제 찌개를 먹다가 남은 거라 괜찮고, 무는 표면이 말라들어갔지만 마른 부분을 잘라내면 되니까. 요리하는 소리만 주방에 울려퍼졌다. 무와 돼지고기를 넣고, 간장을 넣었다. 굴소스 뚜껑을 따는데 뚜껑 위 숫자가 보였다.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굴소스였다. 어제는 유통기한이 지난 마요네즈를 모르고 넣은 요리를 먹었다가 다 버렸다. 짜증이 치밀었다. 엄마한테 굴소스 사와달라고 문자하고 불을 껐다.
엄마가 일을 시작한 이후로 묘하게 모든게 어긋났다. 예전 같지 않은 엄마와 나의 사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진 주방의 그릇 배열, 화장실 서랍장에 항상 있었으나 없어진 여분의 칫솔과 치약. 가장 크게 어긋난 건 엄마의 부재였다. 엄마는 항상 집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굴소스를 사온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와서 굴소스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더니 깜빡했다며 새 굴소스를 나한테 줬다. 옷 갈아입으러 들어간 엄마를 보지 않고, 배가 고파 요리를 마저 했다. 요리를 담아내고도 엄마가 다 씻고 나오길 기다렸다.
엄마가 나와 식탁에 앉으며 같이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그럼 그제서야 나도 젓가락을 움직인다. 집에 혼자 있게 된 이후로, 같이 먹을 수 있으면 되도록 같이 먹으려고 한다. 혼자서 하는 식사는 같이 하는 식사보다 못하단 생각을 자주 한다. 엄마는 오늘 강의에 있었던 이야기를 이것저것 이야기해준다. 오늘 강의는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무언갈 만드는 수업이라는 이야기, 학생이 가져온 과제가 특이했다는 이야기…하루종일 집에 있었던 나는 새로울 것이 없어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이것저것 묻는다. 엄마는 대답해주기도 하고, 말하기 복잡하거나 어려운 이야기면 ‘음’하는 소리를 내며 말을 돌리기도 한다.
“엄마, 나 오늘…”
엄마에게 전화가 다시 울린다. 아까 하고 온 수업 관련된 전화인 모양이다. 엄마는 ‘미안, 나중에’ 하며 그 전화를 받고 식탁에서 일어난다.
나는 이렇게 종종 지금 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지금 내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내가 자주 하는 말버릇이었다. “나중에”, “내가 알아서할게”하며 이야기를 끝내는 버릇이 있었다. 엄마에게 더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내 식의 표현이기도 했고, 그냥 피곤해서 귀찮아서 그런 적도 있었다.
나중에, 라는 말 뒤로 엄마는 얼마나 많은 결정을 혼자 내려왔고, 고민들을 삼켜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항상 내가 힘들거나 할말이 있으면 그자리에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엄마는 엄마의 시간을 인생이라는 은행에서 최대한 당겨서 나를 위해 써준거였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내가 나를 위해 엄마의 시간을 빌려쓴 것만큼, 아니, 그것에 29년 이자를 더한만큼, 아니 그보다 더 써야할 타이밍이었다. 나중에, 라는 엄마의 말 뒤로 내 걱정과 고민들을 미뤄두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