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제나 Sep 27. 2023

03. 행복을 x, y 그래프로 그린다면?

03. 행복을 x, y 그래프로 그린다면?


나는 직장을 그만두자 굉장히 우울했다. 자취방에서 나가는 일이 거의 없고, 주변 사람들과 연락하는 빈도도 줄었다. 30살이란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은 점점 늘어나고, 직장동료는 직장을 다니는 동안 기한제 베스트프렌드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그때 같은 건물에 살던 새롬이를 만났다. 


3년 전, 괜찮은 신축 오피스텔을 알아봐 이사를 간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 새롬이도 타이밍이 맞아 같은 건물로 이사를 온 것이다. 나는 15층, 새롬이는 14층. 새롬이가 이 건물에 살게 되며 자주 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사 올 타이밍이 맞았다고, 인생의 타이밍이 맞지는 않았다. 나는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며 너무 바빠졌고, 새롬이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며 바빠졌다. 누군가가 상대방의 시간에 맞춰주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의외의 순간에 자주 마주쳤다. 내가 너무 힘들어 울며 건물을 들어설 때, 새롬이가 나오기도 하고, 새롬이가 전화로 누군가와 큰 소리로 다툴 때 내가 그걸 듣기도 하는. 누군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공유했다. 아니, 공유되었다.


퇴사 후 다시 만난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우울해서 집 밖에 나가지 않자 계속해서 쓰레기가 쌓였고, 와중에 재활용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재활용 쓰레기를 잔뜩 쌓아놓기만 하고 배출하지 못한 채로 신발장 앞 복도가 좁아진 날. 재활용 쓰레기를 양손 가득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슬아슬하게 얹어있던 페트병이 떨어졌다. 되는 일이 없다 생각하며, 페트병을 주우려다 결국 모든 재활용 쓰레기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바닥에 쪼그려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하필 이럴 때 누군가 타려고 엘리베이터가 열렸고, 나는 탈 사람을 위해 문 앞 쓰레기들을 내쪽으로 끌어오며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그때 새롬이가 탄 거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쓰레기를 주었고, 나의 몰골을 보고도 새롬이는 웃으며 카페에 가자고 말했다. 새롬이의 연락을 잘 받지 않은 나로서 이런 모습을 들켜버린 게 당황스러웠다. 나는 슬리퍼에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새롬이는 청바지에 티셔츠로 가볍게 입었음에도 내 차림이 너무 초라해 미안했다. 


“나 이 차림인데 괜찮으면 가자.”


옷을 갈아입는다고 내가 더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았고, 새롬이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의 읽지 않음 표시가 떠있는 걸 아는 내가 또 새롬이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도 미안했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 새롬이의 근황을 물었다. 새롬이는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이다. 우리가 친한 게 신기할 정도로 우린 좀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그 차이를 좁혀가는 질문을 자주 하곤 했다.


나는 행복에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행복의 개념에 대해 살면서 자주 의문을 가져왔다. 아니, 사는 동안 평생 의문을 지속해 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애인처럼 “언제 행복해?” “지금도 행복해?” “살면서 어느 정도의 행복감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 하며 묻곤 했다.


X, y축이 있는 이차함수 그래프로 행복감을 표시했을 때(x축은 시간, y축은 행복감과 우울감), 그리고 어떻게 표시할 수 있을 것 같은지 생각해 봤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항상 -10 정도의 우울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기쁠 때는 10의 행복감을 느끼고, 슬플 때는 -100의 우울감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 그래프의 주기는 굉장히 가쁘다.


어렸을 때는 항상 즐거워 보이는 친구를 보면 친구처럼 그러지 못한 내가 비교되어 우울하기도 하고, 괜히 밉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나를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냥, 궁금했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건지.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생각보다 저마다 다른, 다양한 그래프가 그려졌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 0 정도의 행복감과 기쁠 때 10의 행복감, 슬플 때 -10의 우울감으로 살아간다는 친구.

특별한 일이 없을 때 10 정도의 행복감과 기쁠 때 100의 행복감, 슬플 때 -100의 우울감으로 살아간다는 친구.


그중 새롬이는 특별한 일이 없을 때 10 정도의 행복감과 기쁠 때 50의 행복감, 슬플 때 -10의 우울감으로 살아간다는 친구였다. 내 우울 그래프를 듣고 새롬이는 공감을 잘해서 그렇다며, 감정 소모가 심해서 힘들겠다고 걱정을 해주는 친구였다. 그런 타인을 향한 배려가 몸에 베여있는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나 그만뒀어.”


새롬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인지 눈을 피하면 안 될 것 같아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쳐다본 것 같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들렸다.


“잘했어. 난 혜영이를 정말 좋아하지만, 그 회사를 다니는 혜영이는 별로였어.”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러면서도 잘한 결정이라는 사실에 울며 새롬이에게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롬이는 울어줬다.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던 나, 모든 일에 짜증을 내던 나를 용서해 줬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 세상 모든 걸 싫어하고 뾰족하게 대하던 내가 원래 알던 내가 아니라 그 회사를 다니는 내가 정말 싫었다고 말해줬다.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 고민에 본가에 들어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준 것도 새롬이다. 엄마라면, 아무 이야기하지 않아도 날 이해해 줄 거라고 안심시켜 줬다.


사실, 새롬이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친구들에게 물을 때도 내가 가장 궁금했던 건 엄마의 행복이었다. 엄마는 행복해? 나는 아이를 가지는 행복에 대해 꽤 비관적인 편이라 엄마한테 물어보지 못했다. 사랑하지만, 자식을 가진다는 건 내가 느껴야 할 책임감에 대해 압박감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렇게 본가에 자취방을 정리하고 들어간 날, 정말 아무 일도 없듯이. 다시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이 소파에 누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새롬이 결혼한대.”

“근데 엄마는 행복해?”


엄마한테 이제야 물었다. 


“응”


엄마는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나를 낳아서 행복하다고 말해줬다. 이건 세상에 내가 나를 증명하고자 노력했던 성취나 결과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라고 말이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꽤 자주, 나는 엄마의 인생에 방해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생각한 나의 인생에서 엄마가 꿈을 가진 건 지금이 처음이 아니었다. 10살에 꽃집, 14살에 편의점, 18살에 엄마가 가려고 했던 친구들과의 여행까지. 엄마가 무언갈 하려고 하면 주변사람들의 반응도, 엄마도 “그럼 혜영이는 어쩌고?” “그럼 혜영이는 어쩌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의 사소한 결정의 큰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엄마가 행복하다면 다행이야.”

이전 03화 02. 엄마가 나보다 먼저 취직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