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집안일은 백수가 하기로 했습니다
04. 잘 안 풀리는 내 인생에 복수하는 법
눈을 뜨자마자, 바깥에서 들리는 새 풀소리가 좋았다. 본가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 났다. 처음 상경했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도 자는 귀가 어두운 편이라 새로운 장소에서도 쉽게 잠들곤 했다. 하지만, 처음 내 자취방이 생겼을 때 매 저녁마다 잘 수가 없어 괴로웠다. 잠에 들기 위해 불을 끄고, 누워도 바깥에서 계속 들리던 차 소리 때문이다. 원래 살던 본가에서 밤 10시에 바깥에서 들려야 할 소리는 풀소리 정도인데 말이다. 유난이라면 유난으로 볼 수 있겠지만, 나는 본가에 내려와 창 밖에서 나는 소리를 녹음해 갔다. 그러곤 자기 전 그걸 들으며 잠에 들곤 했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새소리를 들어 내가 본가에 돌아왔구나 하는 감각이 일깨워졌다. 그런 날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다. 어떤 일이 생겨도 필연적인 사건을 위한 일이겠거니 하면서 뭐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넘치는 날 말이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나가기 직전, 에어팟의 배터리가 떨어졌다는 걸 알아챘다. 평소였으면 득달같이 20%라도 충전하고 나갔겠지만, 맨 귀로 나갔다. 맨 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지금의 내겐 에어팟이 익숙했다.
오늘 유독 백팩을 메고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때문인지 길을 묻는 사람이 많았다. 아마, 오늘따라 에어팟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에어팟이 생긴 이래로 나는 에어팟을 항상 착용해 왔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옆 사람의 대화소리가 커서 신경 쓰이거나 집에 있을 때에도, 집 앞 도로를 달리지 못해 화가 난 차주가 내는 클락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일과 일의 사이에 틈이 지루해서, 일어나서 활기차게 집안일을 해보려고, 자기 전 조용한 분위기를 내보려고 등 수많은 착용해야 할 이유들 속에서 착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맨 귀 상태가 더 낯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들 속에서 왜 끼려고 했었는지 목적은 잊은 채로 에어팟이라는 수단만이 남아버렸다.
도로에는 분명 클락션 소리, 사람들의 점심 메뉴 정하는 목소리, 바람에 나뭇잎들끼리 부딪히는 소리도 있었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테이크 아웃 커피 잔 속 얼음이 내는 소리, 옷들이 사부작 닿으며 내는 소리. 나는 어떤 소리를 집중하기 위해 이 많은 소리들을 놓치고 있었을까. 아마 길을 물어보는 이 소리도 놓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다가와 길을 묻는 중년 여성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려주려 했다.
참 이상한 건 나도 길을 잘 모른단 점이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 찾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문제는 어플이 다 잘 되어 있어서인지 다들 장소를 정할 때 약도를 첨부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플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더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어 길거리의 나 같은 젊은 사람에게 길을 더 자주 묻게 된 것 같다.
장소를 듣고 검색한 뒤, 뜬 지도를 보니 아득해졌다. 큰 건물이 없는 골목에 위치한 곳이었다. 여기서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해도, 최소 5 문장은 이야기해야 목적지에 다를 수 있는 곳이었다. 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을 보니 잘 설명해 줄 자신이 없어졌다. 데려다줄 순 있을 것 같았다.
“저 운동삼아 걸어가는 길이었는데, 그냥 데려다 드릴게요. 제가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걸어가는 길에 내가 너무 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시던 여성분은 중간 정도 오자, 정말 내가 아니었으면 길을 절대 못 찾았을 것 같다고 하며 감사의 인사를 해주셨다. 길은 큰길로 가서 돌아가는 방법과, 골목을 타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골목을 타고 들어가는 방법으로 안내했는데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혹시 큰길이 더 빨랐던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걷다가 눈치를 보며 여성 분께
“저 때문에 더 헤매신 거면 어떡하죠?”라는 말을 뱉었다.
내 흔들리는 눈빛에 단호하게 여성분이 말씀하셨다.
“아가씨, 아가씨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예요. 헤맸는지 안 헤맸는지가 뭐가 중요해. 왔잖아요.”
많은 일들이 이유들 속에서 목적을 잊은 채로 수단만 남아버리기도 한다. 내가 일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많았다. 돈을 벌고 싶어서, 내가 원하던 일이라서, 그 일이 가진 특수성이 좋아서. 근데 일을 하는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행복하려고 한 일이었는데, 그냥 취업준비라는 수단만 남아버렸다. 그래서 그 이유와 목적은 잊은 채 취업준비만이 내 안에 남아버렸다.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 에어팟이 끼워진 상태처럼 살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노이즈 캔슬링’한 채로 넘겼으며 내가 듣고 싶은 음악만 들었다. 계획되지 않은 작은 소리에도 내 마음의 고요에 돌을 던질까 무서워 ‘주변음 허용’ 상태로 들은 체 만 체하였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에게 남은 건 없었다. ‘나’라도 남을 줄 알았는데, 혼자 남겨잔 나에게는 예민함만 남았다.
길을 헤맨 건 사실 그 여성분이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 집에 가는 길이 명확해졌다. 항상 가던 길임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나는 길을 잘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데려다줄 자신이 있으면 데려다줄 결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근데 길을 모른다는 이유로 걸음을 떼어보지도 않았던 것 아닐까?
그렇게 걸음도 떼어보지 않은 채 살았더니, 인생에서 나에게 닭가슴살만 주어진 느낌이다. 가끔 먹으면 먹을만하고, 건강에도 좋다며 먹을 수 있겠지만 매일 먹으면 퍽퍽하고, 맛없어서 차라리 굶고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런 자기 연민은 내 취향이 아니다. 괜찮다! 내 앞에 놓인 닭가슴살도 잘 조리해서 닭날개랑 닭다리살 먹는 기분으로 맛있게 먹어야지. 내가 닭가슴살만 주면 질려서 굶을 줄 알았지! 아니, 야무지게 음식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며 보란 듯이 맛있게 먹어야지.
이게 바로 내가 안 풀리는 인생에 복수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