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집안일은 백수가 하기로 했습니다
01. 퇴사 후 본가로 돌아왔습니다
8월이 된지 일주일이 넘었고, 회사를 그만둔지 한달이 됐다. 모두가 나간 집은 조용하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나가고 나면, 나는 TV를 끈다. 엄마랑 외할머니는 자주 보지도 않을 TV를 켜두곤 하는데, 나는 신경이 쓰여 꺼버린다. 그럼 집안 소리가 난다. 집에서는 예상외로 많은 소리가 난다.
불규칙적인 간격으로 우우우웅하는 알 수 없는 기계음. 그리고 가끔 우연하게 쌓여있는 그릇이나, 욕실 서랍에 쌓아둔 물건들이 이따금씩 움직이며 내는 고요함에 균열을 내는 소리.
이런 소리를 들으며 쇼파에 누워있다보면 해가 뜬다. 해가 점점 하늘의 중앙으로 오면 왜인지 모르겠으나, 매미와 풀벌레 소리가 점점 커진다. 바깥에서 침투해오는 소리에 집이 내는 소리는 묻힌다. 더 이상 균열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일어난다.
우선, 일하러 나간 사람들이 아침을 먹을 때 쓴 컵, 그릇을 씻어낸다. 후에 청소기를 돌린다. 자취방에서 살때는 청소기 돌리는게 일도 아니었는데 방 곳곳 돌리는 건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다. 각 방마다 콘센트에 코드를 꽂아주지 않으려 눈치껏 코드 길이를 늘인다. 결국 코드와의 눈치 싸움에 지고, 길이의 한계에 마주쳐 팽팽해진 선에 걸려 넘어지거나, 코드가 뽑히기도 한다. 청소기를 매일 돌려도 수상하게 바닥에는 항상 빨이들일게 있다. 엄마가 내가 학생 때 머리 묶으라고 짜증내는 시간이 딱 이시간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 먼지, 그리고 가끔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바닥에서 나온다. 삔, 단추, 주머니에서 나온 것들 혹은 의자에서 떨어진 부품이나, 내가 가진 아이패드 거치대에서 떨어진 나사. 정말 알 수 없었던 가방 끈 끝에 달린 플라스틱까지. 이런 것들은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장 TV장 위나 주방 테이블 구석에 놓인다. 이상하게도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것들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기조 못하고, 그곳에 며칠 놓이다 벼러진다. 있는 줄도 몰랐던,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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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집이란 냄새와 소리로 기억됐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냄새와 소리는 이렇다. 오전 7시 30분, 전기밥솥에 김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축축한 쌀냄새가 방문 틈으로 밀고 들어오면 눈이 떠졌다. 그럼 곧바로 방문을 연다. 나는 거실에 틀어진 뉴스를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채널로 바꿔두고 보다 주방에 서 있는 엄마의 재촉에 못이겨 화장실로 간다. 오전 8시, 씻고 덜 마른 머리를 수건에 대강 감싸고 식탁에 앉으면 뜨끈한 밥과 아침을 먹기 싫어하는 나를 위해 국이 있다.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금방 씻고 나온 나의 샴푸 냄새가 났다. 그래도 옷에 남은 국 냄새는 숨길 수 없다. 특히 국이 어젯밤 먹고 남은 된장찌개일수록 냄새는 숨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몸에서 향이 나야한다는 강박이 없을 때이다. 지금이었다면, 몸에 수상한 냄새가 나진 않는지, 내가 좋아하는 혹은 맡았을 때 나를 떠올려줬으면 하는 향이 났으면 하며 신경 썼겠지만 말이다. 그 시절 우리는 등교길에 서로의 아침밥 냄새를 맡곤 했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친구들이랑 자주 신나게 놀고, 가끔은 싸워서 씩씩거리며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오후 4시 집의 소리는 고요하다. 하지만 섬유유연제 냄새가 가득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집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는 변했다. 오전 6시, 어떤 소리도 나지 않고 내가 깰까 티비 소리도 1로 맞춰두어 방에선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방문 앞에서 노크를 3번 하고는 눈을 뜨지 못하는 내 입에 오미자차를 타서 넣어주곤 했다. 그럼 나는 시큼한 맛에 억지로 눈을 떴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잤으니 잠이 깨지 않는 건 당연했다. 나는 거의 감긴 눈으로 더듬더듬 화장실로 간다. 와중에 핸드폰은 꼭 챙겨서 말이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샤워를 한다. 머리를 말리고, 향이 좋은 헤어오일과 로션을 챙겨 바른다. 그러고 교복을 입고 나오면 식탁에는 아침을 먹기 싫어하는 나를 위한 건강한 스무디가 놓여있다. 바나나, 우유, 그 외에 당시 건강에 좋다는 이름 모를 것들이 가끔 들어가있었다. “맛이 왜이래?” 하며 묻는 나에게 “요즘 오디가 그렇게 건강에 좋대”하는 대답을 해주던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한채 현관문을 나선다. 야자시간 이후, 매일 독서실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온 집안의 불은 꺼져있고 켜진 TV 빛만 밝게 빛난다. 집에는 TV 속, 일어난지 얼마 안되어 퉁퉁 부은 연예인들이 웃는 소리가 가득하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쇼파에서 선잠을 자던 엄마가 급하게 일어나는 소리도 들린다. 나는 곧바로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가방을 놓는다. 엄마가 TV를 끄는 소리가 난다.
몇년이 지난 후 지금에서야 나는 이제 고등학교 시절 시절 집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의 이유를 알게 됐다. 집에 있던 엄마의 하루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