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코 앞인 삼춘기 초딩의 영혼 체인지 SF어드벤처
#1. ♬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라디오) 오늘 날씨는 서울 낮 기온 16도까지 오르겠습니다. 미세먼지는 보통이고…"
"(쾅쾅쾅) 해리야, 봉해리!! 아침이야 어서 일어나 학교 가야지"
오늘도 엄마는 문을 두드리며 나를 깨운다. 아침마다 엄마가 알람으로 틀어놓은 라디오가 시끄럽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소리는 다 소음이다. 아빠는 내 발을 주물러주면서 다정하게 깨워주는데 엄마는 왜 꼭 저렇게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면서 화를 낼까? 엄마는 자꾸 화를 내서 이름에도 '화'가 있나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일어나보니 엄마는 주방에서 뭔가를 만드느라 부산스럽다. 머리에는 수건을 두르고 아직 잠옷을 입고 있다. 엄마가 옷을 아직 안 갈아 입었다는 건 내게 5분 정도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봉해리, 얼른 아침 먹고 옷 입어야지!! 8시 10분에 일어나서 책을 읽으면 어떻게 하니? 30분에는 나가야하는데, 초등학교 4학년이면 먼저 해야할 일이 뭔지 알아야지!"
<구스범스>의 다음 내용을 읽어야 학교 가서 동준이랑 태현이랑 얘기할 수 있는데 엄마는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도 모른다.
"아들~~ 엄마가 <구스범스> 같은 거 읽지말라고 했지! 그리고 엄마가 말을 하면 네, 아니요, 지금 할께요, 나중에 할께요 이렇게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엄마가 답답하잖아"
나는 생각이 많아서 대답이 늦는 것 뿐인데...그리고 대답도 하기 전에 엄마가 다음 질문을 하니까 말을 못하는 것 뿐인데...
"휴...얼른 아침 먹어”
저 한숨, 우리 엄마는 늘 한숨을 쉰다. 가슴이 답답해서라는데, 나는 엄마가 한숨 쉬는 게 싫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하고 식탁에 앉았다. 입맛이 없어서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먹고 나왔다. 아침 메뉴가 라면이라면 3분 만에 다 먹을텐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맛없는 밥만 차려준다. 아빠는 가끔 주말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주는데 엄마는 절대 아침에 라면을 안 끓여준다. 아침에 라면 먹는 게 뭐 어때서? 엄마도 라면 좋아하면서! 엄마 회식 하고 밤 늦게 들어온 날, 나 몰래 부엌에서 컵라면 먹은 거, 사실 내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주는 거다. 창문 열고 먹어도 다음날 금방 알 수 있다. 흠... 라면 생각하다 보니 또 먹고싶다.
나는 이 세상에서 라면이 제일 맛있다. 8살 때 처음 라면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일년 365일 라면만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일본의 스모 선수들은 하루종일 라면을 10개도 넘게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귀가 솔깃했다. 이후 한동안 내 꿈은 스모 선수였다. 그런데 스모 선수는 팔이 너무 뚱뚱해서 똥꼬를 자기 손으로 닦을 수 없기 때문에 큰 일 보고 나서는 항상 비데를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이 닦아줘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꿈을 접었다. 라면도 좋지만 내 똥꼬를 다른 사람이 닦는다는 건 진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어휴 내 똥꼬는 내가 닦고 살자.
라면 생각을 하다보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학교 바로 앞 아파트라서 5분 거리지만 놀이터를 가로질러 갈까, 자전거 거치대 쪽으로 갈까 고민이 된다. 얼마 전 시장에서 산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가고 싶은데 예전에 고무신 때문에 발 뒤꿈치가 다 까진 걸 보고 엄마가 뺏어버렸다. 크록스보다 역사가 깊은 코리안 젤리 슈즈 고무신이 신고 벗을 때 얼마나 편한데, 엄마의 잔소리에 할 수 없이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학교 신발장을 보니까 우리 반에 나 포함 거의 10명 정도 남자애들이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 다 비슷비슷해서 실내화 갈아 신을 때 헷갈린다. 나만의 고무신 생각이 간절하다. 친구들과 다른 나만의 개성인데 엄마는 진짜 내 맘도 모르고! 조금 화가 나려고 한다. 옷 안에 엄마 몰래 걸고 나온 목걸이를 만지니까 마음이 가라앉는다.
오늘은 학교 갈 때 팔찌와 목걸이를 엄마한테 안 들켰다. 조개 껍질 목걸이와 나무 구슬로 만든 팔찌. 할머니가 오래 다니던 절의 스님에게 받았다면서 얼마전 내게 주셨다. 목걸이와 팔찌를 하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가끔 방에 나 혼자 있을 때 머리가 쭈뼛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집안 욕실에서도 혼자 샤워할 때나 볼 일을 볼 때 오싹한 생각이 나서 문을 조금 열어 놓는다. 문을 열어 놓으면 냄새도 잘 빠지고 일석이조다. 다만 엄마의 잔소리는 부록처럼 따라온다.
“해리봉!! 화장실에서 볼 일 볼 때 제발 문 좀 닫아~~!!”
엄마는 내가 <괴수대백과>나 <구스범스>, <요괴대사전> 이런. 책들을 많이 읽어서 그렇다며 책을 뺏어버렸다.
“살다보면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울 때가 많단다”
맹세코 괴물 책을 읽어서 겁이 많은 게 아니다. 유달리 상상력이 풍부해서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무서움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목걸이와 팔찌를 한 다음부터는 무서운 생각이 안 든다. 뭔가 신비한 힘이 감싸주고 지켜주는 것 같다.
복도를 지나며 이따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뭘 하고 놀 것인지 고민 했다. 나는 쉬는 시간이 제일 좋다. 어제는 교실에서 네 발로 기어다니며 <동물의 왕국> 놀이를 했는데, 나는 웰시코기 강아지 역할이었다. 말티즈 역할을 한 경준이가 내 엉덩이 쪽에 가까이 왔을 때 딱 맞춰서 방구를 ‘뽝!’ 꼈더니 친구들이 정말 배꼽 빠지도록 웃었다. (물론 엄마는 바지 무릎 까매진다고 잔소리를 했다) 오늘도 친구들이랑 동물 놀이 해야지. 교실 문을 열어보니 아, 교실에 벌써 선생님이 와계신다!
오늘은 특별활동 시간에 선생님이 영화 <원더>를 보여주셨다. 얼굴에 장애가 있어서 헬멧을 쓰고 다니는 10살 '어기' 이야기인데,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친구들이 '어기'를 자꾸 피해서 마음이 아팠다. 어기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멋진 상상을 떠올리면 내가 있는 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면서 헬맷을 다시 썼다. 헬맷을 쓰고 우주인이 된 것처럼 상상하면서 힘든 상황을 멋지게 극복하는 어기.
어기의 헬맷은 뭔가 <알라딘>에 나오는 마법의 양탄자 같다. 헬맷을 쓰면 어디든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곳으로 데려다주니까. 단, 어기의 헬맷은 쟈스민 공주와 함께 못 쓴다는 게 단점이다. 그래도 영화가 끝날 무렵에 어기가 헬맷을 벗고 진정한 친구 들을 사귀는 걸 보고 왠지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영화에서 어기가 친구랑 친해진 결정적 계기는 같이 PC 게임을 하면서부터다. 사실 나도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인 크래프트 게임을 한다. 흠흠)
나에게 행복한 곳은 어디일까? 헬맷이 내 손안에 있거나 마법의 양탄자가 내 눈 앞에 있으면 난 어디로 데려다 달라고 말할까? 딱 한번만 결정할 수 있다면 어디를 골라야하지? 고민이다.
아무리 행복한 곳이라도 혼자인 건 쓸쓸하다. 이불 덮고.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밖에 나와서 중앙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 때 훨씬 더 즐겁다. 이따 학교 끝나면 중놀에서 친구들하고 방탈출 게임 해야겠다. (참고로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방탈출 놀이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술래인 친구가 눈 감고 놀이터 위에 있는 친구들 중 한 명을 잡으면 게임이 끝난다.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잡히지 않으려고 피하고 매달리는 게 스릴 넘친다)
머릿속이 온통 놀 궁리로 가득 찼다. 이게 바로 어린이의 특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