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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변인 Jul 14. 2016

응급실에 간 아내

간호사 12년 차 그녀가 응급실에 갔다.

아내가 응급실에 갔다. 일요일 오전, 평소 같으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할 아내가 이상하게 조용하다. 

뭐하고 있나... 방문을 여니 아내가 침대 위에 엎어져 있었다.


여보... 배가 너무 아파......
 


아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여보! 많이 아파?! 빨리 응급실로 가자!



스마트폰으로 집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차로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아내의 할머니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암 가족력이 있을 텐데 혹시 암은 아닌지, 지난주에 다른 병원에서 위장 내시경을 처음 했는데 그때 대장은 깨끗하다고 한 반면 위는 조직검사를 하기로 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아직 듣지 못했는데 혹시나 그게 문제일지, 아니면 다른 문제일지...


12년 차 현직 간호사가 처음으로 환자가 되어 응급실로 들어갔다.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했던 그녀가 지금은 환자의 입장이 되어 의사 앞에 앉았다. 간호사라면 환자들을 챙기는 것처럼 자신의 몸도 잘 챙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일주일 전에야 반칠십을 살면서 위장 내시경을 처음 해봤고 아직까지 건강검진 한번 받지 않은 '병원 가기를 무서워하는 사람' 이었다.


채혈, 엑스레이 및 질의응답이 이어진 끝에 아내는 아마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일종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마도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결혼 후 캥거루 부부로 시부모와 같이 사는 스트레스가 전직 12년 차 자취인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이 글을 보는 예비 신혼부부들이 있다면 절대로 캥거루 부부 하지 마라!) 거기다 2세를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얼마 전부터 한약을 먹으면서도 계속 언제 아이가 들어설지 신경 쓰는 눈치였다. 응급실에서 잠시 링거를 맞은 아내는 곧 상태가 나아졌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내의 위 내시경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날. 접수를 하고 간호사의 호출을 기다리는데 혹시 이상이 있으면 어쩌나 고민된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한쪽에 고객들을 위해 마련된 혈압계가 보인다. 그래! 나도 혈압이나 한번 재봐야겠다. 긴장해서 혈압, 맥박이 조금 높게 나올 것 같은데...

푸슉푸슉 슈풍슈풍 혈압계가 내 팔뚝을 조여 온다.


110/78


지극히 정상이다. 다행이다.


김XX님!


간호사가 아내 이름을 부른다. 아내와 같이 결과를 듣기 위해 들어갔다.


김XX 님 대장도 매우 깨끗하고 위에는 상처만 조금 있고
검사 결과는 아주 좋습니다.


지극히 정상이다. 다행이다.

그럼  아내의 지난번 통증과 응급실행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의사에게 지난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잠시 모니터에 검사 결과를 보며 아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의사는 몸에 다른 이상은 없고 아마도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요인일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마디로 지랄병인 거군요?


앉아있던 의사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묻는다.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 분이죠?


남편입니다.


-남편으로 보이긴 했는데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하시길래...


아 네......


결국 심리적 긴장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처방받는 것으로 나와 아내의 병원 투어는 끝나는 것 같았다.


일주일 후, 저녁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를 마중 나갔다. 역에서 걸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이 초췌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지난번처럼 다시 배가 아파서 견디질 못하겠단다. 집을 코앞에 두고 벤치에서 잠시 앉아서 쉬웠다 가자던 그녀. 눕더니 일어날 기운도 없는 모양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다간 밤사이 일이 생겨도 크게 생길 것 같아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2주 전 향했던 병원 응급실에 찾아갔다. 이주만에 다시 찾아온 응급실 단골손님이라며 접수대와 응급실 간호사들이 반겨준다.

응급실 전담 의사와의 상담, 또다시 이어지는 비슷한 답변, 진정 수액을 맞고 퇴원하는 일상의 반복.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말을 건다.


여보, 나 조금 더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아.
내 몸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다음날 그녀는 응급실을 찾았던 병원에서 복부 CT촬영을 마쳤다.


엑스레이 정상

위 내시경 정상

대장 내시경 정상

혈액 검사 큰 이상 없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시나 했던 복부 CT촬영 결과도 아무 이상 없다는 결과를 들었다.

대장에 똥이 조금(많이) 차 있을 뿐 다른 이상 소견은 전혀 없다는 의사의 말.


결국 아내의 병명은 심리적 '지랄병'으로 최종 판정을 받았다.

혹시나 몰라 그간 먹고 있던 한약도 끊었다. 아내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약 1년간의 캥거루 부부 생활을 마감하고 신도림에 원룸을 구해 나가 살기로 하였다.


원룸을 계약하고 얼마 후 집사람의 지랄병은 완치되었고 독립 후 살림살이를 사려는 움직임으로 지름병을 얻었다.  이것은 새로운 병으로 예전 병을 제압하는 이병제병(以病)이 이런 것이겠지...


인간의 정신이 얼마큼 육체를 지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를 미루어 짐작컨대 생각보다 정신은 인간의 많은 부분을 지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줄 요약.


1. 마음을 곱게 쓰자.

2. 캥거루 부부는 하지 말자.

3. 지랄병은 지름병으로 무찌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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