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리드를 기억하시나요
'그대와 공원에서 상그리아를 마시고 동물원을 구경하고,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날이 내게는 완벽한 하루예요...'
우연한 소식
루 리드. 싱어송 라이터이자 록의 전설, 루 리드( Lewis Allan "Lou" Reed). 거기서 그렇게 그를 다시 마주할 줄은 몰랐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파워 하우스 아레나 서점. 지하철에서 내려 덤보(DUMBO) 굴뚝 밑을 지나면 바로 그 책방이 나왔다. 맨해튼 다리로 가는 길이라서 자연스럽게 들어갔는데, 갑자기 루 리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십수 년 전, 뉴욕이나 센트럴 파크를 그저 미국이라는 나라에 있는 장소 정도로만 생각하고 말던 시절이지만, 듣고 또 듣고 음미하고 또 음미하던 그 노래_퍼펙트 데이(Perfect day).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시를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듯한, 잔잔히 묘하게 빠져드는 음색으로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록커의 나이 든 얼굴이 표지인 책이 서점 중앙에 소개돼 있었다. 얼마 전에 출간된 루 리드의 평전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언제 접했던가. 그의 일생을 다룬 책 앞에서 나는 그가 말년에 간이식을 받았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루 리드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멀더가 전혀 뜻밖의 얘기를 한다. 루 리드가 사망하기 얼마 전에 간이식을 받았는데, 그 병원이 지금 홍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홍은 환자 루 리드를 치료하기 위해 병실에 들어가기도 했다는 것. 20년을 만나도 각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멀더도 홍도 내가 루 리드의 팬이라는 것을 이날 처음 알았다. 한 번도 루리드를 대화의 주제로 올려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트레인 스포팅』으로부터
90년대 영국 영화 <트레인 스포팅> ,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는 것을 관찰하는 취미라는 제목만큼이나 별난, 별나다 못해 완전 맛이 간 미친 청춘들이 나온다. 주인공 렌턴(이완 맥그리거)이 마약 성분이 든 담배를 피우다 심정지가 오기 일보 직전에 응급실로 실려가 겨우 호흡이 돌아오는 그 위험 천만한 상황에 차분한 배경음악이 흐른다. 기타를 적당히 퉁기며 잔잔한 멜로디를 넣고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젊은 날의 방황이 아닌, 삶을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있는 청년 랜턴에게 조용히 조언하는 듯하다. 그 노래가 퍼펙트 데이 (Perfectday)였다. 나중에 가사의 내용을 알고는 약간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미친 호기심으로 약물 흡입을 시도하다 쇼크 상태로 죽기 일보 직전 의식이 돌아온 놈의 이 순간이 완벽한 날이라고? 그렇게 죽는 것이 완벽한 하루라고? 장면과 배경 음악이 완전한 아이러니, 이율배반적인데 감정적으로는 어쩌면 그렇게도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던가. 연기하는 배우, 배경 음악의 음색, 그 장면에 루 리드의 음악을 넣은 감독까지 이 모두 천재라는 강력한 인상을 준 작품이다.
센트럴 파크 공원에서의 하루
나는 그 영화 배경 음악으로 루 리드의 음색에 반하여 앨범을 구입했다. 그가 그 유명한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멤버였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록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알고 있었던 이유는 그 앨범 재킷이 유명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바나나 그림이 그려진, 일명 바나나 앨범. 루 리드의 앨범 트랜스포머(Transformer) 이미 1972년에 발매되어 정점을 찍은 음악인데, 1995년에 영화 <트레인 스포팅>으로 인해 다시 한번 (나 같은) 대중의 주목을 받은 셈이었다. 그가 벨벳언더그라운드의 멤버였을 때 부른 노래가 페일 블루 아이(Pale Blue eyes)였고, 나는 당시 루 리드의 음색에 빠져 들어 살았다.
사랑하는 연인과 공원에서 보낸 하루에서 영감을 받은 루 리드는, 하루의 위안이 고스란히 스며든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가사는 평범하다. 퍼펙트 데이 노랫말에 나오는 그 동물원이 있는 공원. 그 공원이 바로 센트럴 파크였다. 태생적으로 예민한 기질에 알코올과 마약으로 심신을 시달리게 했던 루 리드.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면서 살아야 했던 루 리드, 어쩌면 그의 하루하루는 불안정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이렇게 가끔 완벽하게 편안한 하루가 있어서 살아갔던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브루클린 토박이_루 리드
비로소 나는 잊고 지낸 몇 가지가 더 생각났다. 폴 오스터의 시나리오를 기반한 영화 <스모크>는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블루 인 더 페이스 (blue in the face). 뭐랄까. 스모크를 찍은 영화팀이 아직 스모크의 세계에 더 머물고 싶어서 만든 것 같다. 송강호의 생활 연기에 버금가는 아니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배우 하비 케이틀 Harvey Keitel)이 연기한, 오기의 담배가게를 중심으로 뉴욕의 브루클린이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다. 놀랍게도 이 영화에 첫 장면부터 루 리드가 나온다. 퍼펙트 데이를 부른 날로부터 다시 20년은 지난 시점인 90년대 중반에 록 그룹의 전형적인 이미지. 어깨까지 오는 장발에 잠자리 안경을 낀 채 담배를 피우며 역시 대사인 듯 자신의 이야기인 듯 다시 한번 나직이 읊조린다.
당시 영화 <스모크 2>에 루 리드를 출현시킨 이유에 대해 작가 폴 오스터는, 루 리드의 신랄한 감수성, 인생에 아이러니에 대한 그의 인식 때문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브루클린 토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쩐지 예전 우리나라 읍내인 듯한 브루클린의 정서가 나와 잘 맞는다는 느낌이 여전히 든다. 어찌 되었든, 그가 어떤 기질을 가졌던 평판이 어떠했던 상관없이, 그저 평범하게 보낸 하루의 인상을 노랫말로 적고 거기에 딱 들어맞는 멜로디를 붙이고 타고난 음색으로 완성시킨 퍼펙트 데이 (Perfect Day)는 그의 이름과 더불어 전설로 남았다.
https://namu.wiki/w/Perfect%20 Day
https://namu.wiki/w/Pale%20 Blue%20 Eyes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608839.html#csidxdc089f0c362d521a8ea0ed8de448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