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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Oct 18. 2024

브롱스의 식물원에서

20년 전 한국에 오게 된 이유

     미국은 2월 셋째 주 월요일이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 공휴일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날이란다. 도착한 지 5일째이나 여전히 시차는 적응 중인 데다, 전날 밤에 침대 프레임을 타고 가는 작은 벌레를 발견하는 바람에 잠 거의 못  날이었다. 은 지 백 년이 넘은 아파트 벌레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내가 머문 방에는 멀더의 짝_ S.H가 키우는 식물 화분에 사는 애들일 수도 있겠다. 옛날 미국 드라마 <X 파일>에서 멀더의 파트너는 스컬리(Scully)였다. 멀더는 우리가 최이순에게 붙여준 별명인데, 현실의 반려자에게 별명을 붙이기도 그렇고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 그냥 홍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중국계 이민자 집안의 후손이니 한국에 있는 홍(洪)씨와 한자가 같은 수도 있겠지만, 영어로는 Hong 아니고 Horng로 표기해서 한국어의 홍!처럼 발음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한국인처럼 다혈 기질을 보이는 멀더와는 달리, 홍은 차분하고 온화하다. 직업은 의사인데 침착한 성격에 예술적 기질이 다분하여 취미로 도자기를 굽는다. 취미라고 하지만 집안 곳곳에 홍이 만들어 놓은 도자기는 이미 보통의 솜씨를 넘은 듯하다. 개인 갤러리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멀더가 아침에 커피를 내려 홍이 만든 커피잔에 주곤 했다. 도시적 이미지가 강한 뉴욕에서, 인사동 스타일의 커피잔을 받아 드는 아침마다 인지부조화까지는 아니라도 어떤 이미지의 충돌을 경험했다.


내가 머문 방의 화분

   바람이 불고 추운 날씨였으나 희한하게 하늘은 계속 파란색을 띠었다. 식물원의 핵심은 온실이니 괞찮겠다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나는 서울식물원도 겨울에 처음 가보았는데 여기서도 그렇게 되었다. 브롱스는 맨해튼 옆에 붙어있고 특히 내가 머물렸던 북쪽에서는 버스로 이동이 가능했다. 브롱스 식물원 가는 길거리는 서울 거리와 비슷해 보였다. 빌딩인 주인이고 사람이 객인 듯한 맨해튼 중심부와 달리, 차도가 시원스럽게 넓고 1층 상점들이 나란히 있는 거리는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 같다. 다른 점이라면 스페인어로 된 간판이 많이 보인다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브롱스로 들어오는 버스의 승객들도 라틴계 사람들이 많았다. 현지인 멀더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현재 브롱스 지역은 도미니카계 사람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미국은 지역마다 이주의 서사가 다른 데다 구성원의 정착 역사도  다르다. 궁금한 것이 많이 생기는 나라다.

    뉴욕 보태니컬 가든 New York Botanical Garden (NYBG) 식물원의 면적은 100 헥타르(ha) 즉, 30만 평이란다. '축구장 몇 배의 크기다'로 설명하자면 대략 축구장 150개 정도의 크기란다. (참고로 서울 식물원은 50ha /국립 수목원은 102ha) 역시나 나는 뉴욕 시민의 손님, 게스트 패스로 입장하고, 밖에서는 몰랐는데 온실에 들어가니 정말 사람이 가득 있었다.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겨울의 끝, 따뜻한 온실에서 열대의 식물을 보면 휴식하는 휴일은 괞찮은 선택이다.

    파란 하늘 아래 화이트에 가까운 온실. 건물 자체로도 멋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다는 온실은 영국의 로열 식물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역사가 영국의 청교도가 발을 디디면서 시작된 연유일까, 어지간한 명칭은 거의 영국에서 비롯된 듯하다.

    녹지 않은 눈이 바람에 날려 눈이 내리는 듯한 날씨에 30만 평을 대강이라고 돌아보려면 트램은 필수다. 멀더가 찾기 전에 나는 메인 트램의 위치를 사진으로 저장해 두었다. 식물원에 푹 빠져 있던 홍은 걸어서라도 다 보려는 듯이 했지만, 식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멀더는 트램을 놓칠까 봐 노심초사하며 미리부터 대기하였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이 건물은 식물원 내 도서관과 갤러리 그리고 교육관으로 사용한단다. 식물원과 달리 휴일이라 닫아 놓아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건물 앞에 청록색 동상이 눈에 띈다.

    '생명의 연못'혹은 '생명의 샘'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동상은 바다의 님프 (sea nymphs), 해마(seahorses), 체리브(cherubs) 등의 드라마틱한 모습이란다.




     드라마틱하다는 푸른 동상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사방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기분상으로 연말연시의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는 듯도 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이번 겨울의 끝을 뉴욕 브롱스에서 보내는구나 이런 감상에 잠시 빠져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영어가 들린다.  ' 땅이 넓은 나라라서 그런지 식물원도 무지하게 크구나' 그런 말투였다. (Everything is Bigger in America...) 천천히 걷고 있는 우리를 앞질러 가시면서 하는 이야기다. 미국에 대한 느낌은 만국공통 같구나. 내가 그 얘기바로 전에 혼자 중얼 거린말이다. 뭐 딱히 볼 것이 많지 않고 땅만 넓구나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브롱스 식물원까지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나는 멀더에게 처음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다시 물어봤다. 20년 전에 처음 한국어 수업을 할 때 영어로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하다. 막상 멀더가 살고 있는 미국땅에 가보니 한국이 멀기는 먼 곳이다.  새삼스럽게 다시 들어보고 싶었다. 멀더가 한 이야기는 나의 기억과는 거리가 있었다. 어렸을 적에 친구의 아버지가 미국에 있는 한국언론사에 다니셨단다. 그래서 그때부터 한국을 알았고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단다. 멀더가 처음에 근무한 서울의 영자신문사는 그렇게 왔었다는 이야기다. 아... 그렇구나... LA에서 대학을 다닐 때 박물관에서 본 한국의 이미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단다. 세월이 20년쯤 흘렀으면 서로의 기억을 다시 가려내서 맞춰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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