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15
이번 여행은 어쩐지 우리답지 않게 너무 부지런하게 돌아다닌 느낌적 느낌.
오늘은 풀에서 그저 쉬기로 했다.
소란스러운 메인풀을 지나 구석진 곳에 자리한 풀로 가보니 몇 안 되는 선베드에는 커플로 보이는 남녀 두 명만 자리해 있어서 몹시 조용했다. 살갗에 햇빛이 닿는 것을 싫어하는 아시안답게 그늘로 선베드를 이동해 주고 가부키 마냥 선크림도 야무지게 발라준 후 드디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서양 사람들처럼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려 했으나 팔을 몇 번 휘젓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숨이 가빠온다. 6개월간 자유형, 배형, 평형, 접영 초급 과정을 배웠지만 수영장에서는 전혀 써먹을 수가 없다.
수영장 수영 알려 달라고요…
가장자리에 팔을 얹고 가쁜 숨을 안 그런 척 몰아쉬고 있으니 저 끝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여성분, 긴 다리를 휘적 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와 익스큐즈미를 건넸다. 의아하게 쳐다보자 새침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한 곳을 가리킨다. 손을 뻗기에는 멀고 수영하기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튜브 베드.
가져달라는 건가.
가까운 거리였기에 헤엄쳐 튜브를 잡고 건네어 주니 땡큐를 건네며 우아하게 튜브 베드에 드러눕는다.
어쩐지 기분 나쁜데?
잠시 무수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뒤로하고 선베드에 누워 책을 보려는데 가져온 아이패드가 너무 무겁다. 조카에게 빼앗긴 패드 미니가 그리웠지만 무릎을 세워 어찌 저찌 각도를 맞춰서 한 자 한 자 집중하려는데 패드 뒤로 보이는 풍경이 아주 어여쁘네?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바람에 흔들리는 바나나 잎과 야자수를 보다 보니 한참이 지난 것 같다. 흘깃 옆을 보니 J는 이미 킨들로 독서 삼매경. 킨들을 사야 하나 생각하며 고개를 드니 어쩐지 흘러가는 구름도 예쁜 것 같네? 잠깐 시선을 준 것 같은데 또 한참이 지났다.
정말 정신 차리고 독서를 해볼까 했는데 이제는 눈꺼풀이 무겁다.
그래. 한참 자고 읽지 뭐…
발리에 있는 3주 동안 읽으려던 책 목록은 20권이 넘었지만 완독은 1권밖에 못한 건 풍경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