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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Sep 16. 2024

일러스트레이터의 뉴욕 여행기

My American Dreams Come True Story

Prologue


나의 뉴욕여행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한참 생각했다. 내가 뉴욕에 가고 싶어한 건 꽤 오래된 일로, 기억하기만도 벌써 몇 년 전. 그 사이에 코비드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전세계의 발걸음이 멈췄고, 나 또한 작은 방 안에 누워 멀어지는 뉴욕의 꿈을 서서히 내려놓고 있었다.


어쨌든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 일상으로 돌아온 2024년 3월, 서울 서촌에서 열렸던 단체전 <첫사랑은 흐려지기에 아름답다>에 구작과 함께 신작 <New York City, American Dream (2024)>을 냈다. 2월에 그리기 시작해서 작품 설치 직전 겨우 완성한 이 그림에도 짧은 사연이 있다. 이 작품의 베이스는 훨씬 오래 전에 작업했던 동일한 제목의 작은 그림으로, 원래 A4 사이즈에 파스텔과 색연필을 이용해 구성되었다.


그림의 초안을 그린 뒤 작업도구로 추가한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을 덧입혀 마무리된 본래의 작업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어느 날 끝났다. 당시 작업을 SNS에 올릴 땐 우리가 잃어버린 뉴욕이라는 낭만을 생각했다. Do You remember American Dream?이라는 문장을 덧붙힌 편집본에 담긴 마음이 그랬다.



앞서의 그림 두 점으로 이미 소개가 됐겠지만 나의 직업은 작가다. 주요 작업에 포커스를 맞춰 조금 더 정확히 말해야 할 때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얘기한다. 본격적인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하게 된 처음엔 에디토리얼 작업 즉 잡지나 신문 위주로 비주얼을 기획하여 만들어냈고, 현재는 오리지널 개인작품들과 출판 단행본으로 무대를 옮기고 있는 중이다.

직업 특성 상, 뉴욕이 동경의 도시가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 듯 하다. 에디토리얼 분야에서 더 뉴요커<The NewYorker>매거진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은 작가가 꿈꿀 수 있는 가장 멋진 성과 중 하나다. 뉴욕타임스의 깊이있는 그래픽들도 그렇다. 무엇보다 뉴욕은 앤디 워홀, 에드워드 호퍼,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꿈을 펼친 곳이기에 예술하는 사람의 아메리칸 드림이 거기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내 작업은 주로 사람들이 있는 풍경을 담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과 경험하고 싶은 것이 뒤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한 장의 그림에 기억과 희망을 모두 담기 때문인지, <아메리칸 드림>의 2024년 버전을 전시했을 때 어느 관객분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현실을 현실보다 더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그림이에요. 실제로 있었던 순간이지만 꿈 같아요.”


뉴욕은 서울에서 무척 먼 곳에 있다. 세계지도를 대강 봐도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하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어지간한 계기가 없으면 뉴욕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그림에 담는 미래 시점은 언젠가 그것이 이뤄지길 바라며, 나의 현실이 될 거라 믿으며 채워넣는 풍경이고, 그래서 두 점의 뉴욕 그림 또한 그 마음을 터치에 하나하나 담아냈다. 올해 초 새로 그린 뉴욕 그림은 원래의 소품과 같고도 다른 면이 여러가지 있다. 전체적인 구도는 같지만 그동안 관심사와 포커스가 넓어지고 시간이 변화하면서 반영된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것이 그림의 중앙 아래, 군중 속에서 홀로 눈에 띄는 남자의 뒷모습이다.


이 인물의 모델은 내가 지금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요즘엔 덕질이란 말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한 번 더 소개하자면 ‘최애’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보이그룹에 속하여 미국 활동을 한 적이 있고, 그룹이 낸 앨범 명이나 공연했던 콘서트홀도 그림 안에 포함되어 있다(팬분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스터에그처럼 넣어 두었다).


전시회가 끝난 뒤의 봄, 그의 솔로 월드 투어 스케줄이 공개됐을 때 리스트에서 뉴욕이라는 글자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역시 너무나도 먼 도시여서 공연을 보러 그 곳까지 간다는 게 내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설상가상 다니던 회사를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면서 뉴욕행은 잠시 바랬던 꿈처럼 남을 뻔 했을 때. 작가로서 어떤 중요한 계약-아직 대외비여서 밝힐 수 없지만, 혹시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그 때 쯤엔 어떤 프로젝트인지 알려져 있을 것이다-을 하게 되면서 극적으로 미국행이 성사됐다. 책을 위한 리서치에 뉴욕이 포함되며 ‘작가로서 뉴욕에 가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려 넣었던 뒷모습, 그리고 그 오른쪽 사람들 사이에 캔버스를 들고 있는 나의 모습까지, 그 풍경이 현실이 되어 지금 이렇게 미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게 됐다는 사실이-적어 내려가면서도 새삼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이다.


8월의 어느 날, 나는 내 그림 안에 서 있었다.


 *2018년 9월, 그러니까 6년 전 뉴욕에 가는 날을 상상하며 그렸던 이 스케치는 올해 8월의 내 모습과 똑 닮아있다. 이 그림 속의 나는 이번에 머물렀던 뉴욕 친구네 집 앞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는 나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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