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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Oct 27. 2024

도시는 결을 공유한다: 나는 사실 OO한 적이 있어

보스턴(3)

그녀는 숙소 앞에서 길 헤메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보스턴에 도착했다. 아름답게 정돈된 풍경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처음 오는 나라, 처음 온 도시의 교통 시스템이 낯설어 환승역에서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 때 아시안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간 건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그는 일을 마치고 친구와 퇴근 중이었다. 구글맵 화면을 보여주며 도움을 청하자 함께 있던 친구를 먼저 보낸 뒤 직접 버스정류장으로 동행해 준다. 횡단보도 앞에서 그가 자신은 여기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며, 내게 학회에 참석하러 왔냐고 묻는다. 보스턴이 워낙 하버드나 MIT, 보스턴 대학으로 유명하니 관련하여 방문하는 사람도 많은 편이므로 자연스러운 질문인 것 같다. 나는 작가이고 새 책을 만들러 왔다고 하며 명함을 건넸다. 신호가 바뀌고 우리는 웃으며 길을 건넜다. 그녀의 친절이 나에게서 그에게로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해 있는 하이 호스텔이었다. 미국 여행 경비가 워낙 기본적으로 높고, 환율이 너무 비쌀 때 가는 거라 부담스러워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한 뒤 예약한 곳이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단 한 번도 호스텔에 숙박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야 몰라도 지금은 더 나이를 먹었는데, 과연 괜찮을까? 다행히 미국 내에서 유명한 체인 브랜드라는 점, 특히 보스턴 지점은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이 걱정을 달래 줬다.


익숙함이 친절과 만날 때에는 시너지를 일으킨다. 그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름 모를 아시안계 직장인과의 고마운 순간을 만들었다. 여기서 태어나 자란 사람인지, 혹은 고향이 먼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 지금의 우리를 구축한 '아는 문화'조금이라도 겹칠 것이라는 기대는 안심이 된다.


버스가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며 눈에 익은 스타일의 간판이 간간이 섞여 보이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내려야 할 정류장 직전 마지막 코너를 돌고 있을 때 호스텔의 간판이 보였고, 그 아래 서 있는 한 사람을 알 수 있었다.


걸어가며 천천히 가까워지자 우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만나자마자 나에게 주려고 한 선물들을 손에 쥐어 주었다. 체크인 한 뒤 커다란 캐리어를 배정받은 자리의 캐비넷에 넣는 동안 그녀가 기다린다. 18시간이나 비행해서 얼굴 상태가 엉망이라는 내게 그녀는 당연하지, 괜찮아요. 한국어로 위로를 건넸다.

  

도시의 모든 것이 내게는 처음이었지만 원래 능숙하게 아는 사람마냥 그녀를 따라 이리저리 서브웨이를 환승했다. 함께 도착한 바닷가의 길거리에서는 이따금 처음 맡는 냄새가 났는데 그게 마리화나 냄새라고 그녀가 가르쳐 줬다.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는 덧붙이며 익숙한 표정으로 골목을 가로지른다. 푸른 바다를 끼고 고급 호텔과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이 즐비한데도 그런 구간이 이따금 있어, 비로소 미국이구나 싶었다.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의외로 주변 사람들 중에서 보스턴에서 태어났거나, 자랐거나, 혹은 업무로 다녀온 이들이 있음을 알았다. 모 재단의 학예사로 일하는 분은 보스턴에서 미술사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단골 서점의 점장님은 어느 작가님의 강의 일정으로 동행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이 곳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많다는 것 또한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이미 내 곁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잘 가꿔진 보스턴의 해안에 놓인 인도를 따라 그녀가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동안, 그녀 또한 보스턴에서 몇 년간 공부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그려오던 그림의 팔레트와 같은 색을 한 이 도시가 이어준 인연에는, 우리가 서로 모르던 시간에 공유하는 비슷한 결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근사한 조명이 드리운 레스토랑에는 볼캡을 거꾸로 쓰고 조던을 신은 남자와 드레스가 아름다운 커플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옆테이블엔 어린 여자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모임을 한다. 메뉴를 추천하는 그녀의 어깨 너머 언젠가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화면 속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 시간 내가 주인공인 내 삶의 실재였다. 그 순간이 서사의 절정이 아니라 어떤 평화로운 저녁으로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그 일상 아닌 일상이 가능했던 건 역시 그녀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익숙함이 테이블 위에서 나누어 먹는 따뜻한 식전빵처럼, 내게 따뜻한 온도로 닿았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를 하고, 밤이 내린 해안가를 다시 또 걸었다. 편안하게 대화하면서 내가 옛날에 했던 일들, 때로는 편치 않은 기억까지 담담하게 말할 수 있었다. 왠지 몰라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전혀 고생하지 않으며 우아하게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상상하지만, 내 인생에도 남들이 그러하듯 우여곡절이 있다. 다사다난했던 시간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는 그 감각이 나 자신에게는 항상 살아있다. 그래서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됐다.


쉽게 주어지는 행복은 없다.

영원도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영원’을,

함께 하는 사람과 진심을 담아 공유하고 싶다.


진심과, 진실을 담아서.


진정한 친구의 틀을 짜면 안 돼. 영원한 친구 그런 건 없어.
지금 이 시간의 나에게 다정한 사람들과 잘 지내면 돼.
영원이 없으니까 더욱 순간을 소중히 하는거야.
우리의 긴 삶에서 서로 타임라인의 구간이 맞닿은 순간들을 소중히 하자.

난 그걸 순간의 영원이라고 불러.



(이 글은 SNS에서 발행일 현재 33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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