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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nc 블랑 Oct 27. 2024

보스턴, 처음입니다만 아는 도시입니다

보스턴(2)


보스턴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촬영하는 이다. 사진에 개성이 가득해 처음 올라온 글을 본 순간부터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순간을 포착하는 감성이나 프레임이 독특했다. 그 계정은 기업의 공식계정같은 것이 아니라 취미를 위한 이었지만, 대번에 어딘가 이런 쪽의 크리에이티브 일을 하는 사람일 거라고 확신할 만큼 자신만의 컬러가 있고, A컷의 셀렉에 분명한 기준이 있었다. 비슷한 일이나 취미를 가진 나의 친구들에게 그녀의 사진들을 보여 줬을 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정도로.

그러다 보스턴에 가기 직전 그녀 계정에 하버드 사진이 올라와 먼저 그 곳에 도착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무작정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Hi, This is Muse. Do you stay in Boston? I’m going to there too! And I really like your photographs.

 

금방 그녀의 답장이 왔다. 영어로 피드백을 준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며, 너무 고맙고 기쁘다는 말과 감동의 이모티콘이 가득한 메시지였다.


내가 케이팝을 사랑하는 10여 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케이팝이 많은 나라에 알려지며 다양한 글로벌 팬덤이 성장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나는 그 나날 사이 셀 수 없는 친구들을 사귀었다. 나와 처음 알게 된 사람이 혹시 외국팬인지, 그렇다면 영어로 소통해야지. 이것이 친구의 의향을 배려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스스로는 이렇게 해 온 지 너무 오래되어서 따뜻함을 야기하는 행동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녀 덕분에 자각하게 되어 나 또한 첫인사부터 고맙고 행복해졌다.


그 인사를 시작으로 나와 그녀는 금방 친해졌다. 우리는 좋아하는 취향이 같은 아시안 여성이며, 둘 다 외향적이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진실하다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어서 공통점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유대감과 비슷한 톤앤매너를 공유할 때 사람은 금방 친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비행기 편명, 도착시간, 보스턴의 숙소를 모두 공유했다.



입국심사를 받게 된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이전에 여권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이유로 끝없이 질문을 받다 결국 오피스에 들어갔다. 작가 명함을 챙겨온 게 신분의 안정성(?)을 그나마 증명해줘서 다행이었다. 공항을 들어갈 때 연락중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는데, 배낭여행자들이 서로의 집을 숙소로 제공해주는 ‘카우치서핑’ 앱으로 연결된, 한국을 좋아하는 인도계 뉴요커 포토그래퍼 친구다. 휴대폰 화면을 본 심사부스 직원이 데이트를 하러 가냐고 물었다. -젊은 유색인종 여성들이 미국에 들어올 때 불법체류가 목적일까봐 특히 까다롭단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것도 그런 류의 유도인가 싶었지만 아직도 진실은 모른다. 아무튼 나는 여차하면 왓츠앱 통화버튼이라도 누를 기세로 긴장했고, 아마도 그래서 비싼 블루투스 이어폰 내용물을 오피스에 놓고 온 걸 추정이나마 하게 된 건 이미 보스턴으로 향하는 환승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현재 시점으로 말하자면 공항에서 아직도 리포트를 보내주지 않았다. 역시 미국다워서 놀랍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숙소 앞에 와 있겠다는 그녀가 있었기에 괜찮았다. 그녀는 입국심사 때문에 당황한 나를 달래 주었다. 그렇게 애써 추스리며 보스턴까지 세 시간여를 더 비행한 뒤 보니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녁을 함께 먹겠냐며 추천 식당을 골라 목록을 공유하고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해 달라며, 어떤 곳이 좋겠냐고 묻는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식당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 도시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지만, 아는 사람은 있었다. 어느 도시에 친구가 있다면 그 곳은 친구가 있는 곳이고, 친구의 도시는 내가 아는 도시가 된다. 그리하여 도착하기도 전에 보스턴은 이미 ‘아는 도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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